한 하늘 아래 있건만
한 하늘 아래 있건만
  • 대학신문
  • 승인 2015.09.20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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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가족학과
   이순형 교수

국가가 자국민의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경우에 심각한 피해를 보는 것은 아동과 여성이다. 북한이 주민들에게 식량 배급을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굶주림에 지친 여성들이 국경을 넘었다. 아무런 도움이 없었던 여성들은 결혼을 못한 한족 남성들에게 신부로 팔려가 살았다. 탈북여성이 출산한 아이들은 모친이 불법체류자인 탓에 호적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한다고 한다. 탈북여성은 제삼국에 머무는 수년 동안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 통화를 하지 못해 가족의 생사를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이십여년 동안 북한 이탈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늘 잠자리가 편안하지 않았다. 악몽에 시달리는 기억을 되새겨 보면 그들의 불안과 고통이 잠시 전이되곤 했던 모양이다. 어제 만난 탈북여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올해 한국에 입국한 유치원 교사 출신 탈북여성은 부모와 남편이 모두 공산당원 출신이고 공직에 있는 등 비교적 유복한 편이었다. 결혼할 때 두 가정에서 절반씩 돈을 대서 주택사용권을 사줬다고 할 정도다.

이 여성은 1995년부터 식량 배급이 끊어지고 1998년 이후 주위에서 아사자가 속출해도 ‘당만 믿고 살라’는 부모의 가르침대로 옆도 보지 않고 살아왔다고 했다. 남편이 사고로 죽은 다음부터 장마당에 나가 온갖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온종일 장마당에 앉아서 물건을 팔았지만 어린 아들이 먹는 음식은 옥수수 가루로 만든 국수와 김치뿐이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당의 지원이 끊어진 까닭에 자주 학부모들이 돈을 내야 했기에 아들을 유치원에 보낼 수 없었다고 했다. 유치원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쌀값을 내야했고, 교실 수리 비용과 교재 비용도 내야 했다. 본인은 여러 해 동안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월급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유치원 교사를 하는 것은 집에 있다가는 막노동 동원에 끌려다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들에게 옥수수 국수만 매일 먹일 수밖에 없는 처지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아이를 친척에 맡겨놓고 국경을 넘었다. 어쩔 수 없이 한족 남자에게 팔려가 여러 해 동안 살다가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입국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이 탈북여성이 한국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돈을 벌어 북한에 보내 아들을 배불리 먹이고 교육하고 가족에 생활비를 보조하는 것이다. 수년 동안 연락이 끊어진 상태에서 아들이 살아 있는지, 아들 때문에 친척이 어려움을 겪지나 않았는지, 앓아누운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지를 걱정했다. 중국에서 감금 상태와 다를 바 없는 상태에서 체포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모질게 목숨을 유지해온 것은 아들과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이미 당과 국가에 아무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아요. 단지 원하는 것은 아들과 함께 살며 따뜻한 밥을 해주고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돕고 싶은 것뿐.” 어린 아들과 어머니가 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일까? 국민들에게 공포와 절망을 안기는 지도자와 그를 떠받들어 이득을 취하는 이기적 집단의 지배 구조에서 국민들은 생존권을 보장되지 못하는 동토(凍土)의 나라에서 희망이라곤 어머니와 아이를 이어주는 모성과 혈연의 밧줄에 매달리는 것뿐이다.

지금도 제3국을 떠도는 탈북여성 십만여 명과 그들이 출산한 아동 수만 명의 삶이 절박하지만 이에 대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타국의 내정문제로 간섭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 밝히고 있다. 한 하늘 아래 살면서 인권 침해와 가족 해체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참담함을 언제까지 강 건너 불처럼 바라보아야만 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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