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어교육과 신광순 강사

프랑스의 몽펠리에대학은 파리대학, 툴루즈대학과 함께 중세 대학교육의 발상지로 명성이 높다. 특히 서양의학의 발상지로 알려진 몽펠리에 의대는 대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와 프랑스 르네상스 시기의 소설가 라블레를 배출하기도 했는데, 지금도 교문 앞에는 모교 출신의 가장 저명한 의대교수인 라페로니(루이 15세 주치의)와 바르테즈(백과전서집필자)의 동상이 후배들을 지켜보고 있다. 의대 앞에는 프랑스 최초의 왕립식물원이 건립되고, 명의로 알려진 라블레의 흉상 뒤에는 “즐겁게 사시오”라는 그의 말이 새겨져있다. 몽펠리에 문과대학은 20세기의 저명한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인 폴 발레리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있다.

필자가 폴 발레리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입학한 파리 7대학은 지하철역 쥐시외(Jussieu) 바로 앞에 있다. 쥐시외는 식물학자 7명을 배출한 대단한 가문이다. 파리 7대학은 백과전서의 창시자인 디드로를 학교 이름으로 내세우고, 파리 6대학은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마리퀴리대학으로 불린다. 파리 7대학 뒤에는 식물원이 있는데, 그곳에는 “문체는 사람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계몽주의시대 박물학자 뷔퐁의 동상이 있다. 에콜(학교) 거리를 걷다보면, 소르본대학 앞에 르네상스시대의 지성인 몽테뉴의 동상이, 그리고 소르본광장에는 사회학의 창시자인 콩트의 석상이 보인다. 중세 최초의 대학인 소르본대학 도서관 옆에는 두 개의 석상이 학생을 맞이한다. 자연과학의 상징 파스퇴르, 낭만주의문학과 자유의 상징 빅토르 위고. 파스퇴르가 발견한 광견병 백신과 저온살균법은 인류에게 축복이었다. 위고의 작품 『노트르담의 꼽추』와 『레미제라블』은 소설, 연극, 영화, 뮤지컬로 끊임없이 재생되면서 사회정의를 일깨워준다. 이렇게 파리는 위인들의 조상으로 넘쳐난다.

한편 마로니에공원으로 불리는 서울대 동숭동캠퍼스에는 1929년 경성제국대학시절에 심은 마로니에가 아직도 남아있다. 당시 프랑스를 생각하며 마로니에를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6년 서울대를 방문한 프랑스 정치학자 레몽 아롱도 이 나무를 도서관과 학생회관 사이에 심었다. 유럽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이 나무는 특히 가로수로 자주 이용된다. 밤과 비슷한 열매를 맺는 이 나무는 잎이 일곱 개로 갈라져서 칠엽수로 불린다. 서울대학교가 1975년 관악으로 이전하면서 마로니에공원에는 동숭동캠퍼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서울대학교 유지 기념비가 청동상으로 남아있는데, 비둘기들만의 거처로 변신한 지 오래다.

관악캠퍼스에는 군사정권 시절에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친 박종철을 포함한 서울대 학생들의 추모비 12개가 건립되고, 이 추모비를 순례하는 ‘민주화의 길’이 있다. 4.19 추모비도 캠퍼스의 한곳에 모여 있다. 전 세계 대학캠퍼스 중에서 이렇게 추모비가 많은 곳은 서울대가 유일할 것이다. 이렇게 관악캠퍼스는 마치 파리의 유명한 묘지 페르라셰즈를 연상시킨다. 그곳에는 보불전쟁의 패전 후에 파리를 사수하려다가 몰살당한 사람들의 추모비와 자유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묘지가 있다.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 지성의 상징 소르본대학에는 빅토르 위고와 파스퇴르가 있는데, 한국 지성계를 상징하는 서울대에는 누가 있나? 3년 전 법대에 이준 열사의 상이 건립되면서 과거에만 존재했던 이준 열사는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고,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조국을 위하여 생명의 피가 돼야한다”는 열사의 글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자하연에는 이 근처에 살던 18~19세기 조선의 시서화 삼절 자하 신위의 조그만 동상이 외롭게 서있다. 자하의 시처럼 ‘용을 휘감게 하고 봉황을 기대게’ 한 위인들의 동상이 캠퍼스에 가득해서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날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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