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경영경제정책협동과정
김종립 박사과정

1666년 9월 런던 도심에서 큰불이 났다. 사흘간 지속된 불로 도시 전체의 2/3가 불타 1만3,200채의 집이 전소했고 7만여명이 집을 잃었다. 지금도 런던에 가면 런던 대화재를 기념하는 탑을 만날 수 있다. 이 기념탑은 왕립건축가 크리스토퍼 렌과 ‘훅의 법칙’으로 유명한 로버트 훅이 설계했다.

런던 대화재는 이 기념탑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목재로 된 집으로 인해 그 피해가 커졌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석재건축법을 제정하여, 이후 런던에서는 나무가 아닌 돌로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화재에 대응하기 위한 근대적 소방 조직이 생겼고, 피해를 상호부조하기 위한 화재보험이 생겼다. 런던 대화재는 시민들의 삶과 공동체를 더 안전하게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기억됐고, 이는 법과 제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반 기술로 지금까지 남았다.

우리는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세월호에는 구명벌이 실려 있었다. 구명정하고는 다른 물건으로 평상시에는 동그랗게 말려있다, 물에 빠져 일정 수압 이상을 받으면 저절로 뗏목처럼 펼쳐진다.

세월호에는 모두 46개의 구명벌이 실려 있었는데, 사고 당시 단 한 개만이 제대로 작동했다. 사고 이후 검찰은 이를 수사했고, 그 원인을 찾아냈다. 먼저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구명벌 하나를 점검하고 다시 원상태로 복구하는 데에는 하나당 100만원에서 300여만원의 비용이 든다. 만약 전체 점검하는 것이 2년에 한 번, 비용이 2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1년에 4,600만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업체는 이 돈을 아끼려 구명벌을 점검하지 않았고 검사 결과를 조작했다.

구명벌은 일상에서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구명벌의 구동부에 페인트가 여러 번 덧씌워져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보통 기계들은 습기로 인해 녹이 스는 것을 막으려고 페인트칠을 한다. 소금기가 가득한 습기가 날아다니는 배에 실린 구명벌도 페인트칠을 한다. 그렇지만 세월호에 실린 구명벌을 펼쳐 칠하는 대신, 배에 실린 그 상태에서 칠해서 구동해야 할 이음새가 페인트로 접착되었다. 그러니 오랜 시간 펼쳐지지 않고 페인트가 덧씌워진 구명벌의 이음새는 페인트로 견고히 접착되어 사고가 난 뒤에도 터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가 2014년 5월까지 밝혀진 바다. 그 뒤는 어떻게 됐을까? 사실 별일 없었다. 점검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처벌받았고, 면허가 취소되었다. 그리고 처벌을 받은 업체는 지난 3월 재허가를 신청했다.

그런데 처벌만으로 과연 문제가 해결된 걸까. 이런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기술적인 노력이 있었을까. 아쉽게도 난 이 구명벌에 관한 노력과 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9월 14일부터 진상조사 신청을 받아 사건 발생 500여일 만에야 실질적인 조사를 시작했을 뿐이다.

세월호 사건을 겪은 우리는 런던 대화재 때처럼 이 사회에 필요한 안전 의식과 안전을 성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그리고 이를 해결할 기술적 아이디어를 충분히 논의한 걸까. 과연 우리는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는 걸까.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