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청년들 두 번 울리는 ‘입영 전쟁’

1994년 발표돼 지금까지 애송되는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에는 머리를 깎고 훈련소로 떠나는 젊은 청춘들의 불안한 마음이 가사에 그대로 녹아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국방의 의무를 앞둔 대한의 남아들에겐 새로운 불안감이 더해졌다. 이른바 ‘입영 전쟁’이다.

군대,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간다

현재 누적된 입영 대기자는 5만2천명에 이른다. 내년에는 7만6천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원하는 시기에 군대를 못 가는 청년들이 이렇게 많다 보니 병무청 자유게시판에는 ‘군대 좀 보내달라’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느냐’는 민원 글이 빗발친다. 병무청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병무민원상담소’에도 불만을 호소하는 글이 매일같이 올라온다. 병무청 이현지 상담원은 “최근 들어 입영 적체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며 “의무복무 대상자뿐 아니라 부모님들께도 전화가 많이 와서 관련 민원전화가 하루에도 2~300통에 이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예전에는 7~8개월 기다렸다 군대에 가는 게 예사였다며 어차피 언젠가는 가야 하는 군대에 좀 늦게 가면 어떠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고용절벽에 서 있는 청년들의 입장은 다르다. 입대 지체로 인해 학업과 진로 계획이 엉망이 됐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모 전문대 휴학생인 김호섭 씨(21)는 전형적인 피해자다. 1년 가까이 입영대기 상태가 지속되면서 김 씨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지난해 바리스타학과 1학년을 마친 김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가면 손에 감각이 떨어진 채로 취업해야 하기 때문에 1학년이 끝나고 군대에 가려 했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그는 올해 1학기에 입영통지서를 받지 못했다. 9월에라도 복학을 할까 했지만 2학년 2학기에는 졸업 작품을 준비해야 해 2학년 1학기 내용을 배우지 않은 채 복학할 수도 없었다. 김 씨는 입대 지연으로 적어도 1년을 낭비하게 됐다. 김 씨는 “군대를 갔다 와서 복학하면 동기들은 다들 취업한 상태일텐데 친구들과 학교도 같이 못 다니고 학업도 사회 진출도 늦어지게 돼 걱정이 많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김 씨가 군대에 못 간 이유

입영 적체 현상은 공군·의경 혹은 영어 및 전공 능력을 살릴 수 있어 인기가 높은 카투사·모집병(특기병)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전산 추첨을 통해 선발되는 육군 일반병도 원하는 시기에 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의무복무 대상자가 육군 일반병으로 입영하는 제도는 크게 재학생 입영원 출원과 입영일자 본인선택 2가지다. 재학생 입영원 출원 제도를 통해 대학 재학생은 매년 1월부터 11월까지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입대할 수 있는 빈자리가 남은 달을 확인하고 가고 싶은 달을 선택해 지원할 수 있다. 육군이 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지만 2015년 9월 현재 이 제도를 통해 가장 빨리 군대에 갈 수 있는 달은 2017년 12월이다. 그전까지는 정원이 이미 다 차서 전부 마감됐다.

입영일자 본인선택제란 의무복무 대상자라면 누구나 매년 12월 중순에 그다음 해의 입대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한 해의 입영시기는 입영선호시기(2~5월)와 기타시기(6~12월)로 구분된다. 의무복무대상자가 전체시기 중에서 한 달을 골라 지원하면 군은 무작위 전산추첨을 통해 군대에 갈 대상자를 선정한다. 여기서 떨어지면 기타시기에서 골라 다시 지원할 수 있다. 또 떨어지면 공석이 생기거나 다음 모집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선호되는 특정 시기의 지원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선호시기인 3, 4월은 혹한과 무더위를 피해 신병 훈련을 받을 수 있는데다 21개월인 군 복무를 마치면 딱 2년만 휴학하고 복학할 수 있어 특히 인기가 많다. 김현진 씨(언어학과·14)는 “동기들 사이에 복학하기 편한 달에 군대를 입대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며 “실제로 복학하기 애매한 달에는 경쟁률이 비교적 낮다”고 말했다. 올해 입영선호시기의 경쟁률은 7.3대 1에 달했다. 김호섭 씨도 작년 12월에 첫 지원 당시 가장 인기가 높은 3월에 지원했다. 그는 “당시에는 군대 가기가 이렇게 힘든지 몰라서 별 고민 없이 3월에 지원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다른 달에 지원하는 게 나았을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하지만 기타시기라고 해도 쉽게 군대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 기타시기의 경쟁률은 2.6대 1이었다.

 

변덕스러운 국방정책, 입영 적체 불러와

입영 적체 현상이 심화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베이비붐이다. 90년대 초반에 출산율이 높아 군대에 가야 하는 청년들의 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입대한 남성은 27만4,292명이었지만 올해 입영 가능한 만 19세가 된 1995년생 남성은 37만6천여명으로 10만여명이 더 많다. 병무청 관계자는 “전쟁이 끝난 후 출생률이 크게 높아졌던 1955년부터 1963년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군대에 갈 시점이기 때문에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정권마다 바뀌는 국방부의 주먹구구식 병력운영에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국방부는 당시 67만명이던 상비 병력 규모를 50만명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듬해인 2006년엔 관련 내용이 담긴 ‘국방개혁 2020’을 법제화했다. 첨단화, 정보화되는 현대전의 흐름에 맞춰 병력을 줄이고 군사 장비 및 기술을 선진화하는 데 군 예산을 투자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도 반영됐다. 이후 국방개혁법에 따라 군복무기간이 30개월에서 21개월로 줄어들었고 육군 정원도 매년 4~5만명씩 감소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책 기조가 바뀌었다. 2009년 국방부는 병력 규모가 너무 줄어 전투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신장·체중 판정 기준인 체질량지수(BMI) 현역병 판정 하향선을 17에서 16으로 낮췄다. 예전 기준에서는 보충역인 4급에 해당했을 청년들도 3급으로 판정돼 훈련소에 갔다. 현역병이 늘어나는 만큼 2020년까지 시행하기로 했던 병력 규모를 50만명에서 51만 7,000명 수준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늘어나는 병력 공급을 수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기준 변경으로 인해 4급 판정자가 2008년 8,568명에서 2009년 5,401명으로 2009년 한 해에만 3천여명이 급감해 입영 대상자가 크게 늘었지만 정작 전체 병력 규모는 2020년까지 고작 1만여명 증가한다. 군대 수요는 계속 줄어드는데 병력 공급은 늘어나는 기형적인 현상을 국방부가 자초한 셈이다.

게다가 2010년 천안함 사태가 터지고, 북한이 연평도 포격 도발을 감행하면서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이 확산됐다. 병력을 감축하는 국방개혁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결국 국방부는 2012년 ‘국방개혁 기본계획 12-30’을 발표해 현역병 판정률을 더욱 높였다. 병력 수요 공급의 불균형은 더욱 가속화됐다. 실제로 1993년 현역병 판정률은 72%였으나 2013년에는 91%까지 올랐다.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대표는 “입영자원 부족으로 인한 군 전투력 약화를 우려한 국방부가 군 정원을 감축하자는 국방개혁의 흐름을 뒤집고 현역판정 기준을 완화해 현역병 판정률을 높였다”고 꼬집었다.

 

오락가락 현역 판정 기준, 이게 정말 해법일까?

입영 적체 현상에 대해 국방부와 병무청은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미봉책만 내놓고 있다. 병무청은 국방부가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다음 연도의 병력수급 인원을 1년 단위로만 통보하다 보니 장기적인 병무정책 로드맵을 통해 대책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육군 민원실 박지우 사무관은 “입영 결정은 병무청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입영 적체 현상은) 육군이 답변할 사안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입대 대기자들의 민원이 쏟아지자 국방부는 올해만 임시로 현역병 9,300명을 추가 입대시키겠다고 결정했다. 또 현역판정 기준을 다시 강화해 현역병으로 판정되는 자원을 줄이겠다고 나섰다. 예컨대 키 175cm인 징병 대상자가 지금까지는 몸무게가 107.2kg을 넘어야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101.1kg만 넘어도 4급 판정을 받게 된다. 아토피성 피부염 같은 질병 관련 현역판정 기준도 강화했다. 아토피성 피부염의 경우 전체표면의 30% 이상이어야 4급 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서 15%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4급 판정을 받는 것으로 변경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당장 지금의 문제야 해결될 수 있겠지만 언제 또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신인균 대표는 “소수의 병무 인력으로 간단하게 수치화할 수 있는 BMI를 이용해 현역병 판정률을 조절하겠다는 것은 업무의 편리성만 따진 임시방편”이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병역기피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역판정 기준이 강화돼 고의로 살을 찌우거나 빼서 병역을 면제받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강화된 현역판정 기준이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진데다 그 혜택의 수혜자가 사회적 약자계층보다는 부유층일 확률이 높다는 것도 문제다. 군 인권센터 김숙경 사무국장은 그 이유로 질병사유를 본인이 스스로 전부 입증해야 하는 현행 구조를 꼽았다. 그는 “질병을 입증하기 위해선 지속해서 병원에 다녀야 하고 복잡한 서류들이 필요하다”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빈곤층이 이를 증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2020년이 지나면 현역병 가용 자원이 오히려 부족해지지만 이에 대한 대책도 전무한 상태다. 병무청은 그때가 되면 다시 현역병 판정기준을 조절해 수요 공급을 맞추겠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신인균 대표는 “향후 4~5년 정도 지나면 상황이 역전되는데 국방부는 이에 대해서도 여전히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그때 다시 몸무게 몇kg 기준을 바꿔서 병력을 조절할 생각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락가락 하는 국방부 때문에 청춘이 낭비되고 있다.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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