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힙합뮤지션 제리케이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출신, 대기업에 「사직서」를 쓰고 돌아온 래퍼, 사회비판 가사를 쓰는 ‘마왕’ 혹은 ‘독설가’, 독보적인 리리시스트(lyricist). 힙합 뮤지션 제리케이(Jerry.k, 본명: 김진일)에 대해 말할 때 흔히 따라 나오는 수식어구다. 2004년 데뷔한 그는 줄곧 자신의 삶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치열하게 가사에 담아왔다. 그가 대학생과 래퍼, 직장인과 뮤지션 사이에서 고민하며 걸어온 길을 되짚고, 엠넷 <쇼 미 더 머니>가 래퍼가 되는 유일한 등용문처럼 여겨지는 지금의 힙합씬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내 영혼을 팔았던 거짓을 다 버리고
진짜 열정을 찾아서 - 「사직서」

그가 힙합을 접한 것은 중학교 때였다. 지누션과 조PD의 랩을 좋아해 노래방에서 무작정 따라하다 작곡에도 손을 대게 됐다. 첫사랑 실패 후 ‘감성이 폭발하는 시기’, 가사에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래퍼 MC메타의 강좌를 찾아갔다. ‘강의보다는 문화공동체에 가까웠던’ 이 수업의 멤버들과 함께 제리케이는 2004년 ‘소울컴퍼니’로 데뷔했다. 소울컴퍼니는 감성적이고 공감을 자아내는 음악으로 청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한국 힙합의 대표 레이블로 자리 잡았다. 그는 군대에서 보초를 서면서도 머릿속으로 가사를 쓰는 자신을 보면서 음악을 결코 쉽게 놓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Q: 소울컴퍼니, 2인조 그룹 로퀜스, 정규앨범 『마왕』 발매 등 래퍼로 활발히 활동하다가 2009년 대기업에 입사하고 2년 후 다시 뮤지션으로 돌아온 과정이 궁금하다.

A:『마왕』에 있는 노래들이 대중적으로 팔릴 만한 게 아니었어요.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음악으로 먹고 살 수는 없겠다. 음악을 하려면 ‘캐쉬카우’(cash cow)가 따로 있어야겠다고 해서 취업을 하기로 결심한 거죠.

회사에 들어가도 음악을 놓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평생 음악을 놓지 않는 게 꿈이다’라는 가사를 「사직서」에도 썼죠. 그래서 공연 있을 때마다 가고 작업도 했는데 회사를 다니다보니 음악을 점점 놓게 되더라고요. 회사 일이라는 게 워낙 바빠야죠. 이런 삶을 계속 살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마침 소울컴퍼니가 저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회사를 나오게 된 거죠.

 

일상적인 쿨함은 낭만을 죽였고
생존 논리가 윤리와 철학을 묻었어
- 「Stay Strong」

 

제리케이는 한국에서 통렬한 사회비판 가사를 쓰는 유일무이한 래퍼로 평가받는다. ‘불안해’를 외치며 청소년의 떨칠 수 없는 불안을 표현한 『마왕』에서부터 청년에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고 주문하는 『True-Self』, 청년 세대의 불안정한 삶을 녹여낸 『현실, 적』까지, 그는 사회를 향한 비판의 칼날을 꾸준히 벼려왔다. 특히 1집 타이틀곡인 「마왕」은 환경파괴와 인간의 탐욕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우리말 라임을 잘 살린 가사가 돋보이는 그의 대표작이다. “자연의 원칙을 다스리는 자본의 법칙을 따라가는 자멸의 몸짓/우주 시대를 여는 장면에 겹칠 곧 지구에게 써야만 할 작별의 편지/산성화되는 비와 사라져가는 빙하 또 셀 수 없는 과학자가 전하는 비관론.”

 

Q: 『마왕』부터 줄곧 청년 세대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A:『마왕』 때의 비판은 겉핥기였어요.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가사를 썼다고 생각해요. 『True-Self』에선 열심히 해서 자신을 증명하자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현실, 적』을 낼 때 한 얘기는 ‘네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어’였어요. 제가 기성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사자의 입장도 아닌 중간에 낀 위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채찍질할 수도 없고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가짜인 거죠. 그래서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다는 이야기에 가깝죠.

 

Q: 세월호 사건을 다룬 「Stay Strong」, 국정원 대선 개입을 비판한 「시국선언」 등 음악을 통해 사회이슈에 대해 비판을 제기해왔다. 이런 사회참여가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가?

A: 그냥 자기가 생각하고 느낀 바대로 표현하는 거죠. 지금 작업하는 앨범에서 사회참여를 다루는 곡이 있어요. ‘안 느꼈다면 할 수 없지만 분명히 느꼈는데 뭔가 두려워서 한발 빼고 있는 거면 비겁하다’는 거죠. 너무 화가 나는데 힙합을 한다는 사람이 그 정도의 강한 감정도 표현할 수 없다면 그 정도로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다는 걸로밖에 안 보이거든요.

 

TV프로 하나에 scene 전체가 들썩
누군간 화났어, ‘걔네들 다 진실한 체하고 있어’ - 「뺏어와」

 

Q: 최근 <쇼 미 더 머니4>를 둘러싼 여성 혐오 논란을 어떻게 보고 있나?

A: ‘힙합이 원래 그렇다’는 건 없어요. 7·80년대 흑인 커뮤니티의 사회적 맥락에서 삶을 음악에 녹여내다 보니 여성을 대하는 당시의 태도가 담겨왔던 거예요. 지금은 인종차별 발언 한마디에 대기업 임원도 날아가는 세상이에요. 변한 사회가 음악에 반영되는 게 당연한데 왜 힙합은 원래 그렇다고 방어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Live your life. 인생을 잘 살면 요즘이 어떤 세상인지 알게 되고 그런 변화가 자연스럽게 음악에 녹아들 거라고 생각해요.

 

Q: 미국 힙합이 총격전이 일어나고 마약 거래가 횡행하는 게토(ghetto), 이른바 ‘거리의 삶’에서 생겨났다고들 한다. 한국 힙합에 미국과 구분되는 정신이나 문화가 있을까?

A: 있어야 해요. 지금 래퍼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년이고 그들은 대체로 집에서 주는 용돈으로 살고 집에서 보내주는 학원에 다녔어요. 누구도 총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고 마약을 팔지 않았어요. 폈다면 담배나 좀 폈을까.(웃음) 그래서 『현실, 적』을 만들 때 한국의 ‘스트릿함’이라고 한다면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고 청년들이 느끼는 부조리에 대해 가사를 쓴 거예요.

 

Q: 힙합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 힙합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지?

A: 이대로라면 모두가 <쇼 미 더 머니>에 나가려고 목을 매는 상황이 될 거예요. 거기에 나가서 높은 순위에 올라야 래퍼로서 삶이 시작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장에서 밀려나겠죠. 오히려 궁금한 건 ‘<쇼 미 더 머니>가 없어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예요. 이 프로그램이 유일한 동아줄이라 생각하는 래퍼가 많아요. 그래서 생태계를 말하는 거예요. 충분한 시장이 형성되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들에 대중의 관심이나 파이가 돌아가야 해요.

 

제리케이가 이끄는 ‘데이즈 얼라이브 뮤직’은 <쇼 미 더 머니>를 보이콧하는 유일한 레이블이다. 그는 “<쇼 미 더 머니>에 나가지 않고도 성공한 사례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TV가 잠식한 한국 힙합에 그의 레이블이 새로운 길을 내고 래퍼들을 보다 자유롭게 하길 기대해본다.

 

사진: 유승의 기자 july2207s@snu.kr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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