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맞춤형 모바일 플랫폼 ‘큐레이션 서비스’

지하철을 탄 대학생 A씨는 데이트 코스를 짜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맛집 추천 앱에 오늘의 목적지인 연남동을 입력한 후 제일 평이 좋은 곳을 골라 ‘예약하기’를 누른다. 연이어 그는 영화 추천 앱을 켜고 예상 별점이 가장 높은 영화를 점찍어 둔다. 화장품 추천 앱에서 호평 일색이던 화장품 선물까지 준비한 A씨는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이렇듯 당신보다 당신의 취향을 더 잘 아는 일명 ‘큐레이션 서비스’가 우리의 일상 속에 들어왔다.

 

 

내게 꼭 맞는 정보를 광석처럼 캐내다

 

큐레이션이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된 작품을 기획하는 ‘큐레이터’에서 파생된 단어로 기존에 있던 정보를 선별하거나 재편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지와 인포그래픽을 사용해 뉴스를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카드뉴스’ 같은 큐레이션 뉴스부터 전문가가 고른 뷰티 물품을 배송해주는 ‘미미박스’ 같은 큐레이션 커머스까지, 큐레이션은 넓은 범위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그 중 영화 추천 서비스인 ‘왓챠’와 맛집 추천 서비스 ‘망고플레이트’ 등 모바일 환경에서 애플리케이션(앱)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큐레이션 서비스’라 부른다.

초기 큐레이션 서비스는 에디터가 직접 개입해 정보를 선별했지만 요즘은 개인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빅데이터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광부들이 석탄을 캐듯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알짜배기 정보만을 골라낸다. 왓챠는 사용자가 영화에 매긴 별점들을 데이터 마이닝으로 분석하는 서비스다. SF 물에 높은 별점을 매기는 사람이 있다면, 왓챠는 그 경향성을 읽고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SF 영화를 그에게 노출한다. 큐레이션 서비스 이용자 채승희 씨(건설환경공학부·15)는 “취향 분석을 통해 자신이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파악해주기 때문에 이용자가 쉽게 영화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 마음을 훔쳐간 매력적인 서비스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의 자투리 시간을 만족스럽게 보내려는 사람들은 점점 ‘스낵컬처’를 추구하고 있다. 스낵컬처란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지 않고 간편하게 스낵처럼 문화를 소비하고자 하는 경향이다. 정보를 ‘떠먹여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는 그런 점에서 매력적이다. 김경호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떤 상황에 관해 내용과 맥락 그리고 사회에서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한 번에 정리해 제시해준다”고 큐레이션 서비스의 매력을 짚었다. '피키캐스트'(피키) 이용자 고동균 씨는 “피키에는 움짤로 올라오는 콘텐츠가 많아서 같은 내용도 더 쉽고 재밌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상업성을 배제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점도 사람들이 큐레이션 서비스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다. 포털이 이익집단의 광고로 뒤덮이자 사람들은 ‘낚시성’ 글에 피로를 느꼈고 상업적 이해가 섞이지 않은 정보를 찾게 됐다. 이에 화장품 추천 어플 ‘화해’와 ‘언니의 파우치’ 등 다수의 큐레이션 서비스 플랫폼은 대중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방식을 내세웠다. 서비스 사용자는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다른 소비자의 후기를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화해 사용자 서주희 씨(응용생물화학부·15)는 “화장품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광고만 나온다”며 “솔직한 후기를 듣고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화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관심을 요구하는 ‘트러블 메이커’

 

재밌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큐레이션 서비스가 수익을 올리는 주된 통로는 바로 사용자 수와 클릭 수다. 서비스 사용자에게 광고를 노출하거나, 데이터화된 사용자의 행동 방향을 분석한 정보를 다른 곳에 제공하며 돈을 벌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큐레이션 서비스는 주목받을 만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노출해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모으는 것에 주력한다.

이런 수익구조 때문에 큐레이션 서비스가 흥미 위주의 소비적인 콘텐츠의 확대를 야기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중이 쉽게 흥미를 느낄 만한 소비 지향적 분야에 콘텐츠가 치중되기 때문이다. 피키 이용자 이현우 씨는 “자투리 시간에 상식을 늘릴 수 있어 피키를 이용했는데 갈수록 뷰티, 연예 정보가 압도적으로 많아져서 몇 달 전에 앱을 지웠다”고 밝혔다.

더불어 일부 서비스는 손쉽게 이목을 끌 만한 외부 콘텐츠를 허락 없이 사용해 문제가 됐다. 대표적으로 피키에서는 작년 11월에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의 블로그 글을 무단 도용한 적이 있다. 피키 측이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해당 게시물을 지워 사건을 무마하려 해 논란이 더욱 커졌다. 이에 「슬로우 뉴스」 편집장 ‘민노씨’는 ‘도둑질을 권하고 원작자를 죽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세태에 맞춰 저작권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김평수 교수(한국외대 문화콘텐츠학과)는 “누군가의 정보를 무단으로 쓰는 서비스라고 큐레이션 서비스를 몰아세우기만 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출처를 분명히 밝히게 하거나 저작권자와 광고수익을 공유하는 상생의 공유경제 모델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탄탄한 콘텐츠로 살아남기

 

소모적인 콘텐츠 재생산과 자체 콘텐츠 부실로 인해 큐레이션 서비스 열풍은 살짝 주춤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큐레이션 서비스가 지속 가능한 서비스가 아니라 순간적인 허기만 채우는 ‘스낵’으로 전락했다는 우려 섞인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서비스는 자체적인 콘텐츠의 개발을 통해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꾀하고 있다. 본래 2차 가공만 하는 ‘편집자’의 자리에 머물렀던 것에서 한층 진화한 행보다. 피키의 경우 동영상 콘텐츠를 생산하는 ‘피키픽쳐스’와 라디오 콘텐츠를 제작하는 ‘온에어’를 꾸려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이외에 맛집 추천 앱 ‘포잉’은 ‘포잉 쿠킹클래스’ 같이 해당 서비스의 개성을 살린 이벤트를 진행한다.

뜨거운 감자였던 저작권 논란에 대해서도 각 큐레이션 서비스는 원저작자와 관계를 맺어 문제를 해결하고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왓챠를 비롯한 몇몇 서비스는 소셜 미디어에서 주목할 만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제작자 혹은 전문가와 접촉해 그들을 에디터로 영입하거나 창작물을 기고 받고 있다. 더불어 방송사 또는 기획사와 제휴를 맺어 콘텐츠를 수혈하는 시도도 있다. 피키의 경우 JTBC <마녀사냥>을 편집해 올리거나 이용자의 댓글을 MBC <세바퀴>에 내보내기도 한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큐레이션 서비스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맞춤식 정보를 제공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소비적인 콘텐츠로 연명할 수 있는 기한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평수 교수는 “앞으로의 큐레이션 서비스는 단순하게 온라인에 떠도는 정보의 가공편집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더욱 심도 있고 전문화된 정보를 서비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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