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

필자는 과학에서의 새로운 발견과 진보가 무수한 시행착오와 희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음을 경험으로도 잘 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는 것일까. 부산대학교 고(故) 고현철 교수님이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 ‘무뎌져 버린 민주주의의 인식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충격요법밖에 남지 않았으며 그 무게를 스스로 담당하겠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투신해 돌아가셨으니 못 견디게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도 ‘자유의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들과 압제자들의 피를 먹어야만 한다’고 한 토마스 제퍼슨의 말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통하는 것인가.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사람 목숨이 민주주의 제단의 제물이 돼야 한다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역사적 현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아프다. 나 스스로 죄인 된 심정으로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우리 사회와 대학의 민주주의를 돌아본다.

생명 현상의 핵심에 있는 진화라는 현상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이라 그 실체를 현재 진행형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믿기 힘들다고도 한다. 하지만 잘 보면, 보인다. 사회의 발전 또는 진화도 오래 걸리는 일이라 현재 진행형으로 느끼는 것이 아마 힘들 것이다. 하지만 잘 보면, 이 또한 보이는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을 들자면, 필자는 1980년 대학 1학년 때 ‘서울역 회군‘의 현장에서 역사가 영영 후퇴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고, 이른바 '녹화사업'의 대상자가 된 경험도 했고, 1987년 대학원생일 때 명동성당 앞에서 최루탄을 뒤집어쓰고 골목길로 도망치면서 민주주의는 어렵다고 몸으로 느꼈다.

그때, 뒷걸음질 치거나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다. 여러 사람이 행하는 작은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서 민주주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국의 민주주의는 놀랍게 달라졌다. 그 후 교수가 되어서 교육과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나 개인적으로 불이익을 당할까봐 마음을 졸이면서도 사회의 많은 문제를 마주 보며 때때로 시국선언 기자회견장으로 발길을 내디딜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서 함께 ‘잘 보고’ 배운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요즘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 대부분의 경험으로, 모든 법의 근간인 헌법이 현재진행형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학습되고 있는 현실이 눈앞에 있다. 인간 존엄성의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헌법이 멀찌감치 있는 줄만 알았더니 ‘명박산성’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이 몸에 와 닿았고, 집권당의 원내 대표가 씁쓸한 퇴장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1항을 몸으로 배웠다. 이제 헌법 제1조 1항, 2항을 배웠으니 걸음마 단계이지만,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같이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그럼 우리 대학에서는 어떤가? 이 또한 잘 보면 보일 것이다.

멋진 과학적 발견을 하기 위해서는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견디면서 내공을 쌓아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잘 본다’에 있다고 필자는 항상 주장한다. 있는 현상을 잘 보아야 그 기저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았던 진리도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회를,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도 똑같은 원리가 작동한다고 믿는다. 잘 보자. 눈 감지 말고 잘! 보자! 그런데 혼자서 잘 본다고, 잘 판단한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좌절할 수 있다. 더불어 같이 공명하면서 그 ‘잘 보는’ 힘을 키울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된다. “그래야 무뎌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각성이 되고 진정한 대학의 민주화, 나아가 사회의 민주화가 굳건해질 것이다 (고(故) 고현철 교수의 유언 중에서).” 우리 같이, 눈 부릅뜨고 ‘잘 보자!’ 그리하여 대학의 민주화를 현재진행형으로 느끼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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