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전공
김주람 석사과정

우리나라의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 해결돼야 할 시점에 정치권에서 자주 나오는 레토릭이 있다. “이제는 경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본래 정치적인 사안인 경우도 그렇고, 정치적 사안이 아니지만 정치적으로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멀리는 과거사, 가깝게는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에서도 주요 정치인사 입에서 ‘경제 살리기’의 레토릭은 빠짐없이 나왔다. 그들은 해당 사안은 이제 뒤로 하고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면, 경제를 위해 해당 사안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사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발언들이다. 경제문제가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은 오래전부터다. 또한 경제적 효율을 근거로 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저성장 시대에 들어섰고, 가혹한 사회적 구조조정을 몇 세대에 걸쳐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인들의 '경제' 발언은 그들 자리의 책임감에서 나온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발언들은 논란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수긍된다.

이 문제를 생각해보는 데 있어, 한나 아렌트의 정치와 경제의 구분이 유용하다. 아렌트는 경제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경제의 특징은 순환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 일해야 한다. 월급을 위해 오늘 출근해도 내일 또 출근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올해 경제가 성장해도, 내년에 또 성장해야 한다. 먹고 사는 것은 우리에게 원초적이지만 큰 기쁨을 선사하는 동시에, 우리가 노동력을 상실하기 전까지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반면에 정치의 특성은 직선적이라는 점이다. 개인은 정치적 행동이나 말을 통해 자신의 고유성을 드러내고, 자신만이 이 세계에 할 수 있는 기여를 하게 된다. 정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중요한 행위이지만, 때로는 잘못된 결과를 낳고 그 결과를 돌이키기 어렵다. 이때 아렌트는 처벌과 용서 중 적어도 하나는 선택해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잘못된 행위의 직선적 결과를 이 두 가지를 통해서만 멈출 수 있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의 구분이 옳다면,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나오는 ‘경제 살리기’ 레토릭은 단순히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직선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에, 해결 열쇠를 쥐고 있는 당사자들이 순환적 수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지난 문제들을 해결하여 새로운 시작을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의도가 우리 정치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아렌트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정의가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정치적 문제가 있을 때마다 “지금은 경제를 살려야 할 때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우리 정치공동체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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