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시 5편 - 한승훈(건축공학과 11)

<아무도 아닌>

 

예의에 맞지 않는 글들은 보기에 불편 안 하도록 아래로
버스는 승객 몰래 돌고 돌아 종점으로 도달했
읍니다

 

질척이는 타이어 자국에 떠오른 발자국이
남 일처럼 아침을 기억하는데
그 뜨거웠던 고기 덩이는 어디로 갔을까
사랑스러웠던 한 방울 눈물은
만남으로 미분된 관계가 우연히 잊혀질 때
중국집 앞 입니다

 

빗방울들은 몸을 던져 증명하고
창 안에선 작은 소란으로 변명하는데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검은 빛 자장면과
그곳에서 발견한 단무지 1/3

 

말한 것이 말하지 않은 것으로
그렇지 않은 것이 누구인 것으로
위염과 어리석은 고기조각이
소유욕과 헛구역질로
계산 끝에 남겨진 적분 상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다>

 

거뭇한 천장을 볼 때면 스치곤 했다
눈물보다 우선되는 기억이다
미열로 들뜬 비릿함이다
아버지는 발을 헛딛었고 어머니는 손을 놓쳤다
모두가 그것으로 가득 차 있다
어두운 기억엔 불쾌함이
천장엔 옅은 그림자가 남았다

 

-야
-사는게 행복하냐
-아니

 

늦었다
필요를 모르는 많은 것이 필요했기에
질문은 괴로움으로 돌아왔다
답하지 않으면 알지만
답하는 이는 혀를 잘린다
몸을 비집고 들어오는 이질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다

 

 

 

<3>

 

“술을 마시면 항상 그랬다. 한 덩이가 덜어져 나갔다”
"떨어진 덩어리는 주인을 몰랐다"
"항상 그랬다"
엄마가 아빠가 누나가 말했다
철수가 영희가 이치로가 말했다
원정이가 민국이가 슬기가 말했다
철민이가 건창이가 승원이가말했다
김예슬이 박지수가 채수빈이 말했다
선생님이 교수님이 조교가 말했다
정이 박이 권이 말했다
하병장이 김중사가 대대장님이 말했다
영욱형이 영규형이 소라누나가 말했다
그리움이 말했다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과 좋지않은 기억이 말했다
라디오가 말하고 CF가 CJ가 말했다
장동민씨가 홍철이형이 빅토리아가 말했다
개그맨과 공부의 신과 워렌버핏이 말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 그리고 네이버가 말했다
공자와 맹자와 도스토예프스키가,
학생들과 멘토와 이름을 잊은 친구가 말했다
그는 계속 들었다
그는 말을 아꼈다
그는 입을 닫았다

 

 

 

<끝이 있다면 그곳은 이별이라><너머>

 

 

1.

흐릿한 심상과 서사
따끔히도 차가운 고드름
식초의 향을 담은 사과
잘 익은 고기와 흐르는 육수의 풍미
연인의 부드러움 혹은 단단함
있던가 없던가
아즈마할, 아즈마할

 

눈의 동공이 입의 공동을 닮아
흐려지는 풍경에 흐르는 의미를 담아
아!
끝에서야 시작을 위로하는
너와 나와 무언의 대화

 

나랏 말쌈이 듕국에 달아
사맛디 아니할 새
나무가 아미타불인데
유아 독존 천상 천하
베드로야, 너는 세 번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 이별을 물어온다면
너의 층 위에서 받아줄 밖에
같이 나에게 걸어볼 밖에
그렇기에

 

물임에도
땀은 뜨겁게 흐른다
바람에도
머리 위에선 뜨거운 용트림이
역설과 대구를 통해...

 

2.
나랏 말쌈이 듕국에 달아
사맛디 아니할 새
나무가 아미타불인데
유아독존 천상천하
베드로야, 너는 세번

 

0.
나는 내가 행복하다

 

 

 

<단지>

 

단지는 넓고 평화롭다
몇 동 몇 호에서 누구가 떨어졌다
여럿 목격했지만
누구도 누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모두 지만 모두 가 아니다

 

항상 그랬다
닭이 세 번 울 때 의 피는 가장 뜨거웠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맥주캔 안의 얕은 공간에서 떠돌았다
잠과 아침 사이에 던져진 찌라시 위를 걸었다
새하얀 눈 위를 지평선 너머까지 미끄러졌다
발자국은 남기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에 는 없다
누구나 누구를 찾아 헤맸지만
짧은 수색은 몇개의 과제만 발견했다
하나. 찾아 나서라
둘. 그 뜨거운 숨결을 발견하라
셋. 탯줄과 함께 고이 보관하라

 

단지에 는 없지만
누구나 누구를 찾아 나선다
누구든 가벼이 몸을 던진다
살아있다
단지는 넓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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