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잔디 위 땀 흘리는 그녀들에게 반하다
푸른 잔디 위 땀 흘리는 그녀들에게 반하다
  • 권혜빈 기자
  • 승인 2015.10.04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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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서울대 여자축구부 SNUWFC

지난 달 19일(토)부터 이틀 동안 서울대 대운동장에서는 공 좀 찬다는 여대생들이 모여 ‘샤컵’을 향한 힘겨루기를 벌였다. 햇볕 가득한 정오에 시작된 대회 첫날엔 서울대 여자축구부 SNUWFC(SNU Woman Football Club)를 비롯한 12팀의 대학 여자축구팀이 4개 조로 나뉘어 숨 가쁘게 예선전을 치렀다.

조 1위라는 성적으로 예선을 가뿐하게 통과한 SNUWFC는 이튿날 부천대 소속팀 ‘Beyond Bucheon’과의 8강전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서울대! 어이 어이 어이”하는 선수들의 쩌렁쩌렁한 구령으로 경기가 시작된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조은비 선수(치의학대학원·15)가 페널티킥으로 득점하면서 주도권을 가져왔다. 후반전에서는 다리 부상에도 응급처치를 한 채 경기장으로 돌아간 김아영 선수(정치외교학부·14)가 사이드에서 공을 잡은 뒤 상대 수비진영을 홀로 돌파하면서 쐐기 골을 성공시켰다. 골이 터지는 순간마다 흘러나온 삼바 음악에 SNUWFC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환호했다. 경기 막바지에 상대팀이 득점에 성공했지만 승부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같은 날 열린 4강전에서는 한국체대 소속팀 ‘FC천마’와 맞붙으면서 1:0으로 아쉽게 패했다. 승부욕 강한 SNUWFC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며 아쉬움을 내비쳤지만 공동 3위라는 빛나는 결과를 냈다. 이는 전국대학 아마추어 여자축구대회 ‘샤컵’을 직접 주최하고 진행하느라 분주한 와중에도 거둔 성적이었다.

관악 유일 여자축구부의 홀로서기

긴 시간 동안 힘과 스피드를 유지해야 하는 축구는 체력이 강한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특히 한국에서는 ‘여자가 무슨 축구냐’는 식의 부정적인 인식 탓에 여성이 축구에 입문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싹을 틔우지 못했기에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었던 한국 여자축구계에서 2014년 기준 등록된 선수는 총 1,765명뿐이다. 이는 전체 인구가 비슷한 프랑스가 8만여명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여자축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SNUWFC는 5년 동안 관악에서 여자축구의 깃발을 지켜왔다. 임성원 선수(체육교육과·14)는 “체육교육과 학생이 스누라이프에 창단 모집 글을 올리자 두 팀 정도로 따로 모여 있던 사람들이 뭉쳐 하나의 팀이 됐다”고 창단 계기를 설명했다. 창단 당시 SNUWFC는 5명 정도의 소수로 시작됐기 때문에 정식 운동부로 인정받지 못했고 학교로부터 별다른 지원도 받지 못했다. 홀로서기에 나선 선수들은 서울대 출신 축구 지도자들에게 시간이 날 때 번갈아 연습에 올 것을 부탁해 연습의 질을 높였다. 매주 이틀 두 시간 반씩 진행되는 연습에 모든 선수가 전원 참석하도록 규율도 엄격하게 다졌다. 안정된 체계 덕분에 5년 만에 40명 정도가 활동하는 팀으로 몸집이 커져 현재는 공식 운동부로서 여자축구의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다양한 이들이 모여 하나로 뛰는 축구부

SNUWFC가 꿋꿋하게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생활 속에서 축구를 즐기는 여대생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체육을 전공하던 창단 멤버들이 졸업한 뒤 다양한 전공의 신입생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올해 샤컵에 선발 출전한 11명의 선수 가운데 체육을 전공한 학생은 두 명뿐이다. SNUWFC에서 처음 축구를 배웠다는 이승주 선수(치의학과·14)는 “모여서 공 차고 노는 곳 정도로 생각하고 들어왔다가 체계적으로 연습하는 모습에 놀랐다”며 “한번 들어오니 나갈 수 없어 입구는 있지만 출구가 없는 팀인 셈”이라며 웃었다.

선수들은 SNUWFC의 매력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것’을 꼽았다. 서로 간의 애정이 남다른 이들은 경기장 밖에서도 자주 만나며 삼삼오오 모여 소모임을 꾸리기도 한다. 독서 토론 모임 ‘축북’, 농구 모임 ‘축농증’, 소규모 밴드 ‘핫풋’ 등이 생겨나 취향에 따라 골라 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승주 선수는 “축구 경기는 계속 지고 있는데 축농증 팀이 종합체육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우스운 상황도 벌어졌다”고 전했다. 코치의 결혼식 축가를 연주하기 위해 결성됐던 밴드 ‘핫풋’은 올해 공식 공연을 앞두고 있다.

▲ 샤컵에서 펼쳐진 SNUWFC와 인하대 소속팀 'INHA-WICS'의 예선전. 상대팀(연두색)의 공격에 SNUWFC 선수들(파란색)이 일사천리로 수비에 나서고 있다.

경기에 목마른 선수들, 제힘으로 경기를 만들다

SNUWFC 선수들은 나름대로 축구를 즐겨왔지만 대학교 생활체육 경기와 여자축구 경기가 유독 적은 한국에서 경기에 나갈 기회는 충분히 얻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가 학교 축구 정상화를 위해 7년째 열어온 전국 대학 리그전 ‘U리그’에 여자축구 경기는 없으며 국민생활체육회가 주최하는 ‘대학여성축구클럽리그’는 작년 6월에서야 시작됐다. 선수들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코너로 마련된 경기에 나가는 등 ‘있는 대로’ 경기에 참가했지만 경기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했다.

이에 SNUWFC는 2013년부터 매해 서울대 대운동장에서 전국대학 아마추어 여자축구대회 ‘샤컵’을 열어왔다. 2, 3학년 선수들로 구성되는 주장단은 대회 4개월 전부터 의료팀 마련에서부터 장비 대여까지 제힘으로 해내며 후원해 줄 기업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판다. 예산이 적은 와중에도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축구 전문 심판을 섭외하기도 한다. 임성원 선수는 “대학 경기들을 보면 일반 선수가 심판을 보고 부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며 “샤컵의 경우 하루에 7명의 전문 심판을 부르기 때문에 판정에 대한 불신이 없다”고 자랑했다. 이는 4박5일의 합숙 훈련을 비롯한 경기 대비 훈련도 함께 소화한 와중에 만든 성과였다.

4개월의 노력으로 막을 연 이틀 간의 경기에서도 SNUWFC 선수들은 경기에서 선수로 뛰는 시간 외에는 대회 진행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샤컵 대회의 선수 교체 타임에는 볼걸이 선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경기장으로 들어가거나 선수가 유니폼을 벗고 경기 영상을 촬영하는 별난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승주 선수는 “계속 대회 진행을 해야 했던 우리에게는 경기가 끝나고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SNUWFC의 슬로건은 ‘축구하는 여자가 아름답다’다. 여자가 축구를 하면 으레 뒤따르는 ‘멋있다’는 칭찬 속에는 결국 ‘남자 같다’는 맥락이 숨어있다. 사회가 나눈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에 동의할 수 없는 이들이 여자선수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의미의 슬로건을 내건 것이다. SNUWFC 선수들은 오는 11월 K리그전에 참가하기 위해 또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푸른 잔디 위 골대를 향해 내달리는 그녀들의 모습은 끝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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