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예술인연대포럼 ‘검열과 파행’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의 편파 지원 논란으로 대학로가 뜨겁다. 지난달 11일과 18일 국정감사에서 문예위가 운영하는 예술창작지원사업의 심사과정에 문예위 직원들이 특정 작가와 작품을 탈락시키도록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작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극작가 박근형 씨를 문예위 직원이 ‘창작산실’ 우수작품 선정에서 제외하라고 종용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또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이윤택 작가의 작품이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심사에서 만점을 받고도 최종 탈락했고,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퍼포먼스 ‘안산순례길’이 ‘다원예술창작지원’ 최종심에서 배제됐다.

이에 무대 위에 있어야 할 연극인들이 잇달아 성명서를 발표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기자회견을 여는 등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연극계의 자발적 토론공동체를 지향하는 온라인 플랫폼 ‘대학로X포럼’ 주최로 지난 5일 오후 6시 대학로 SH아트홀에서 예술인연대포럼 ‘검열과 파행’이 열렸다. 젊은 배우부터 원로 작가까지 지하소극장을 가득 메운 다양한 연극인들은 작금의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 이날 기조연설을 맡은 극작가 고연옥 씨는 "우리는 환호와 박수를 받는 인기 예술인의 자리를 포기하고, 예술은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진화한 예술 검열: 지원금으로 길들이기

 

문예위의 편파 지원에 연극계가 ‘검열의 부활’이라고 반발한 배경에는 오늘날 연극제작환경의 곤궁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대학로 소극장의 대관료가 대폭 상승하고 출혈경쟁이 심화되면서 공연 티켓 가격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게다가 로맨스와 코미디 등이 주류인 상업연극에 관객과 자본 투자가 편중돼있다. 평론가 김소연 씨는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 중요한 연극인에게 제작비 확보는 더욱 중요하다”며 “공공기금을 받느냐 안 받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과 상상력의 범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제작비, 인건비, 대관료 등 제작비용을 조달하기 어려운 연극인들에게 공공지원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협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과거에 비해 국가 지원금이 지역문화재단으로 분산되고 두산아트랩 등 민간 지원 프로그램도 생겨났지만 규모가 작거나 극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실정이다. 극작가 이양구 씨는 “민간 프로그램의 경우 대상이 매우 한정돼있고 전국 단위의 대규모 창작지원을 제공하는 곳은 문예위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창작산실 사업은 한 작품당 2~3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연극계는 문예위가 소위 ‘사회적 논란 예방 차원’에서 특정 작품을 제외한 것이 사실상의 사전 검열이라며 우려했다. 그러나 그들은 검열 양상이 과거 독재정부 시절과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당국이 체제 비판적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법으로 규정해 발표를 원천적으로 금지했던 것에 비해 현재는 공공지원에서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길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자유발언에서 ‘페스티벌 봄’ 예술감독 이승효 씨는 “예전보다 지금의 검열이 훨씬 더 치졸한 방법을 쓴다”며 “문예위는 돈을 무기로 예술을 좌지우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문예위 지원에 대한 입장, ‘보이콧’이냐 ‘지속 참여’냐

 

일각에서는 문예위의 편파적이고 불투명한 지원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문예위가 운영하는 창작지원사업을 보이콧하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염신규 소장은 “현재 국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예술지원을 받기 어려운 구조”라며 “예술지원기금 출처를 점차 다각화하는 한편 국가 지원금을 받지 않는 것을 홍보 등에 적극적으로 명시하는 활동을 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작가회의’ 정우영 사무총장도 문예위의 공모절차에 응하지 않는 것이 문예위와 확실히 선을 긋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며 동의를 표했다.

문예위가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작품을 배제하는 상황에서 지원사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전선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했다. 평론가 김소연 씨는 “현 지원제도의 한계를 드러내고 공공성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작품이 불투명한 이유로 배제되는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의미나 작품성을 지닌 예술을 지원하는 것이야 말로 공공지원의 취지에 가깝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안산순례길’처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를 고민하는 작품도 이에 포함된다. 전문가들의 심사조차 무시하고 자의적인 기준으로 지원작품을 선별하는 문예위가 문예진흥이라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오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뿔난 연극인들, 참여하고 연대하다

 

한편 포럼에서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해온 연극인들이 최근 사태에 대해 느낀 분노와 격앙이 드러나기도 했다. 연극배우라고 밝힌 한 참석자는 “성명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절대 충분치 않다”며 “촛불문화제나 삭발 시위 같은 직접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로 작가인 모 연극인이 문예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연극계 인사들의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어떤 참석자 역시 “지금까지 거론하지 않았던 불편한 이름을 말하고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동조하기도 했다.

10월 7일과 8일에 국정감사가 다시 진행됐지만 의혹 제기에 대해 문예위는 여전히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문예위는 지난달 11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지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고려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의무”라고 밝힌 이후 비슷한 해명을 반복하고 있다. 이에 연극인들은 좌절하기보다는 ‘반란과 비판’이라는 예술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결의를 다지고 있다. 평론가 김소연 씨는 “당장 가시적인 결과를 보지는 못해도 많은 연극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의견을 발표하고 서로 연대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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