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단대풍물패연합 가을판굿

관악의 가로등이 하나 둘 불을 밝힐 무렵, 알록달록한 모자를 쓴 풍물패 행렬이 등장해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7시가 되자 상쇠가 꽹과리를 치며 풍물놀이의 시작을 알렸다. 매년 봄과 가을마다 정기공연을 해온 ‘단대 풍물패 연합’(단풍연)은 지난 6일 아크로에서 약 세 시간 동안 신명나는 30번째 판굿을 벌였다. 판굿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특성이 두드러지는 풍물놀이로, 가락이 쉽고 함께 어울려 놀기 좋은 것이 특징인 중요무형문화재 ‘임실필봉농악’의 한 부분이다.

단풍연은 공대 ‘놀이모듬’ 약대 ‘우리굿’ 생활대 ‘풍류’ 사회대 ‘바람몰이’ 농생대·수의대 ‘두레’ 총 5개 풍물패가 연합해 풍물놀이를 하는 단체다. 80년대 후반 자연대 풍물패 ‘터굿’이 다른 단대 풍물패에게 굿을 가르쳐 줬던 것에서 비롯돼 1990년 처음 연합이 결성됐다. 1999년 해체 위기를 겪었던 단풍연은 우여곡절 끝에 2001년 부활했으며 2004년 두레가 합류하면서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이번 공연은 풍물놀이의 공연자 즉 ‘치배’들이 세 달간 땀 흘려 합을 맞춘 결과였다. 꽹과리 치배 ‘쇠’를 비롯해 장구, 북, 소고, 징 치배와 소고를 치며 상모를 돌리는 ‘상모꾼’, 연기를 하는 ‘잡색꾼’까지 총 39명이 고군분투했다. 여름 동안 판굿의 기본이 되는 장구와 꽹과리 가락을 익히고 임실필봉농악전수관에서 합숙하며 전문가로부터 직접 가락을 전수받았다. 8월 말에는 판굿의 지휘자인 ‘상쇠’를 뽑았고 나머지 치배들도 공연에서 연주할 악기를 골라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다. 상쇠 박효정 씨(원예생명공학부·13)는 “다섯 개 패에서 상쇠를 배출하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하기 때문에 상쇠뽑기의 재미가 배가 됐다”고 전했다.

▲ 치배들이 둥글게 진을 쳐 악기를 연주하고 잡색꾼들이 안쪽에서 춤을 추고 있다.

이번 공연은 ‘앞굿’과 ‘뒷굿’의 2부로 진행되었고 그 사이 치배들이 모여 참을 먹는 시간이 있었다. 전원이 협력해 다양한 가락을 뽐내는 앞굿은 악기의 조화와 대형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둥그렇게 모여 굿을 시작한 치배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 대형을 반으로 접거나 소용돌이 모양을 만들었다. 경쾌한 발놀림과 더불어 변화무쌍하게 변주된 장단이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흥겨워하며 어깨춤을 추던 관객 정원석 씨(국어교육과·15)는 “장단이 계속 변화해 춤을 추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참을 먹고 이어진 뒷굿에서는 치배 개개인이 기량을 뽐내며 관객의 참여를 유도했다. ‘개인놀음’에서는 차례로 소고, 북, 장구, 잡색꾼 그리고 상모꾼이 중앙 에 나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했다. 이후 관객과 치배가 짝짜꿍 손뼉을 치며 어울려 노는 ‘수박치기’와 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하나 되는 ‘노래굿’이 이어졌다. 몇몇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풍물패와 어울려 춤을 추기도 했다. 꽹과리 치배들이 쇠가락을 뽐내는 ‘가진영산’에 이르자 흥겨운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랐다.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한 치배들과 일부 관객은 공연이 끝나고도 문화관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앵콜 공연 격인 ‘난장’을 30분 정도 더 즐겼다.

30회를 맞은 이번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전통적인 ‘잡색놀음’을 볼 수 있었다. 이전까지 잡색놀음은 단순히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잡색꾼이 K팝에 맞춰 춤을 추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잡색꾼 중 ‘대포수’가 자유자재로 총을 돌리고 판을 활보하는 전통 묘기를 제대로 부렸다. 대포수 손주영 씨(경제학부·12)는 “전통적인 공연에 좀 더 다가가고자 영상을 보며 연습했다”고 밝혔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장단에 빨려 들어서 가던 길을 멈추고 공연을 관람했다. 제임스 우드 강사(영어영문학과)는 “소리 때문에 방해가 되지 않나 싶었는데 막상 자리 잡고 앉으니 에너지에 압도돼 공연을 즐기게 됐다”며 “젊은 학생들이 자국의 전통 놀이를 즐긴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전통문화에 대한 청춘들의 관심이 그리 높지 않은 요즘, 단풍연의 치배들은 풍물놀이에 대해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 왔다. 4년째 풍물놀이를 즐기고 있다는 손주영 씨는 “작년에 농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락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신명나게 한 판 벌이는 판굿을 보면 몇 발짝만 더 다가가 보자. 어느새 어깨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테니.

 

사진: 장유진 기자 jinyoojang0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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