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신은 감기에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우울은 감기처럼 흔하다는 의미에서 ‘심리적 감기’로 표현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우울증이 전 연령에서 나타나는 질환 중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대 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0년간 우울과 정신건강 문제로 힘들어하는 학생은 2005년 실시한 ‘서울대 학생 정신건강 실태조사’의 응답자 8.2%에서 2013년 28.9%로 꾸준히 증가했다. 2013년도에 서울대 보건진료소가 발표한 건강검진 결과 응답자의 28.9%(경도 21.8%, 중등도 6.6%, 중증 0.5%)와 22%(경도 18.6%, 중등도 이상 3.4%)가 각각 우울과 불안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신문』2014년 3월 30일 자) 정신건강센터 장준환 교수(의학과)는 “검진체계가 바뀌어 명확한 비교는 힘들지만 현재까지 진행한 2015년도 건강검진결과도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정신’도 아프면 치료가 필요하다

우울이나 불안은 정신건강에 생기는 ‘질병’인 만큼 악화되기 전에 치료가 필요하다. 감기에 걸렸을 때 비타민을 섭취하고 따뜻한 물을 마시고 병원에 방문하듯 심리적인 문제 역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 학생들은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판단한 후에야 상담센터를 방문하기 때문에 최적의 치료시기를 놓치곤 한다. 장준환 교수는 “정신건강의 치료예후는 이상징후 발생 후 얼마나 빨리 병원에 왔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학내에는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의 조기 발견과 치료를 위한 다양한 기관 및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학내 구성원에게 전문가의 도움을 제공하는 기관으로는 보건진료소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센터와 상담치료를 담당하는 대학생활문화원(대생원)이 있다. 정신건강센터는 전문의의 진료와 검사를 통해 정신건강 문제를 의학적으로 평가하고 진단한다. 이를 바탕으로 상담, 약물치료를 실시하며 이외에도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스트레스 클리닉, 집단치료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대생원은 학생이 겪는 모든 심리적 문제에 대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기관이다. 대생원에서는 관련 학과 석사 이상의 자격을 가진 전문상담사가 상담을 진행하며 개인상담뿐만 아니라 또래와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집단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밖에도 단과대에서 개별적으로 상담센터를 운영하기도 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단과대 상담센터는 인문대 학생생활문화원(생생원), 공대, 자연대 ‘자:우리’ 총 3개로 해당 단과대 학생에 한해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에서 우울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했을 때 ‘전문가의 진단이나 치료를 경험한 적 있다’고 답한 경우는 전체 응답자의 6.4%(2013년 기준)에 불과했다. 장준환 교수는 “외국의 경우 정신건강 문제가 생겼을 때 병원을 방문하는 비율이 30%에 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15% 밖에 되지 않는다”며 “서울대의 경우 앞의 수치들에도 한참 못미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진짜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은 이를 초기에 발견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요인 중 하나다. 장준환 교수는 “학생들이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해 방문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강현 씨(전기정보공학부·13)는 상담센터나 병원을 찾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굳이 찾아가면서까지 상담을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시간을 투자해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 역시 주요한 원인이다. 장준환 교수는 “학생들이 당장 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위해 전문기관을 방문할 시간을 내기 힘든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예준 씨(독어독문학과·11)는 “제대로 상담을 받으려면 적어도 10번은 방문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정도의 시간을 내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상담사실 및 내용 유출에 대한 염려 또한 학생들이 치료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생생원 이준득 상담사는 “상담한 내용이 비밀로 보장되는지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내 상담소에 대한 불신도 치료를 꺼리는 원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서득화 씨(산업공학과·11)는 “상담소에서는 매우 개인적인 얘기를 하게 되는데 혹시라도 나를 아는 사람에게 상담내용이 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이런 우려와는 달리 학내 상담소에서 진행한 상담내용과 방문이력은 철저히 비밀로 보장된다. 생생원 이준득 상담사는 “학내에 존재하는 모든 상담센터는 상담내용에 대해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지만 학생들이 이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상담내용뿐 아니라 보건진료소를 포함한 모든 병원 진료 사실 또한 외부에 절대로 공개되지 않는다. 장준환 교수는 “병원 진료기록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조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병원을 방문했을 때 비보험 진료를 선택하면 진료비가 조금 더 청구될 수는 있지만 개인 진료기록에 남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서울대 학생들의 특성 또한 상담소를 찾지 않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준득 상담사는 “서울대 학생은 상대적으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개방적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 도움받는 것을 ‘약한 것’으로 인식해 상담소를 찾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동호 씨(농경제사회학과·11)는 “서울대 학생들은 자존감이 높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존감이 많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조성 필요

학생들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서는 정신건강에 대해 ‘인지’할 수 있고 정신건강에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학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학내 상담기관들은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을 통해 정신건강에 친화적인 환경을 만드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생원은 학생참여 그룹 운영과 이벤트 부스 운영을 통해 정신건강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 김예준 씨(독어독문학과·11)는 “나도 몰랐던 내 정신건강 상태에 대해 가벼운 항목들을 통해 알 수 있도록 해줬던 ‘세계 자살예방의 날 SNU 부둥부둥 프로젝트’가 좋았다”며 “학생들이 정신건강에 대해 쉽고 재밌게 알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지면 정신건강에 대한 구성원의 관심도 높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대생원에서 진행한 ‘세계 자살예방의 날 SNU 부둥부둥 프로젝트’는 희망의 메시지 전달, 자살 예방 관련 OX퀴즈, 간단한 심리 검사 등을 통해 자신과 친구의 정신건강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지난 9월 10일에 학생회관 앞에서 진행됐다.

또 대생원은 정신건강 문제를 효과적으로 조기에 발견, 예방하기 위해 또래상담자 양성프로그램 ‘스친’ ‘캠퍼스 셜록’ ‘학관밥大선생’ 등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은 먼저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해 인지하고 이해한 후 어려움을 겪는 또래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상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고민내용을 먼저 말해야만 들어줄 수 있는 상담자-상담원의 일방향적 관계가 아니라 또래의 쌍방향적 관계를 이용하면 심리적 문제가 커지기 전에 조기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접근성 높인 단과대 상담센터

단과대 상담센터는 학생들에게 물리적, 심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해 보다 접근성이 높고 맞춤형 상담을 제공한다. 현재 인문대, 공대, 자연대의 총 3개 단과대에서 단과대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생원은 상담을 원하는 학생이 많기에 상담 신청에서 실제 상담까지 평균적으로 약 3주가 소요된다. 이 때문에 정작 급박한 상황에 처한 학생이 도움을 청했을 때 즉각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공감의 김은정 객원상담원은 “대생원에서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해당 학생의 단과대 상담센터로 연계해줘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단과대 상담센터의 도입으로 생긴 장점을 설명했다.

또 단과대 상담센터에 근무하는 상담자는 해당 단과대 학생들이 공유하는 고민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 학생들의 상담 만족도가 높다. 이준득 상담원은 “고민을 표현할 때 공대생의 언어와 인문대생의 언어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며 “그런 언어적 특징 차이를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 단과대 상담센터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과대 상담센터 도입은 아직 첫걸음을 뗀 수준이다. 단과대 상담센터는 총 16개 단과대학 중 인문대, 공대, 자연대의 3개 단과대에서만 운영되고 있어 일부 학생들만 이용이 가능하다. 김경화 씨(사회복지학과·15)는 “심리적 문제가 생겼을 때 대생원보다는 단과대 상담센터를 방문하는 것을 선호할 것 같다”며 “단과대 상담센터가 있으면 상담센터에 처음 접근할 때 두려움이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단과대 상담센터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 학생들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오유상 씨(국어국문학과·11)는 “생생원에서 상담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 몰랐다”며 “홍보가 더 잘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를 재발견 할 수 있는 기회

‘나’에 대해 아는 것은 건강한 정신을 위한 첫걸음이다. 상담은 ‘나’를 재발견하고 복잡한 머리 속을 정리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리저리 꼬여 있던 생각을 말로 표현해 내는 것만으로도 우울한 사고에 빠지는 것이 예방되는 효과가 있다. 이준득 상담사는 “상담은 심리적 장애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만 상담소를 방문한다는 편견을 깨고 ‘나’의 재발견을 위해 상담을 받아보면 어떨까?

김하경 기자 alicekm@snu.kr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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