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시리아는 어떤 나라인가

▲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 교수(행정대학원 정치학전공)

◇고대 문명의 발상지 시리아=시리아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속한다. 지구에서 가장 비옥한 땅인 이 지대는 나일강 유역, 지중해 연안뿐 아니라, 오늘날의 시리아, 이라크, 이란의 일부를 포함한다. 시리아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농경과 목축이 발달해 국가를이루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할 즈음, 시리아 지역에서는 에블라 왕국(Ebla Kingdom)이 탄생해 수준 높은 문명을 향유했다.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을 이뤄낸 시리아=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의 패권을 나눠 갖는 과정에서 레바논과 시리아 지역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시리아 지역을 종교와 인종으로 분열해 통치하려는 프랑스의 시도에 대항해 아랍인들은 단결과 독립을 추구했고, 이러한 ‘아랍 민족주의’에 힘입어 레바논과 시리아는 1943년과 1946년에 각각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신생 독립국 시리아의 투쟁과 좌절=독립국가 시리아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고립된 처지가 됐다. 레바논을 제외하면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모든 나라들이 강대국을 등에 업고 있었다. 미국의 후원을 받는 이스라엘과 터키, 영국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와 요르단이 세력을겨루는 가운데, 시리아는 어떤 후원국도 없이 위태롭게 독립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46년 세웠던 첫 헌정 시리아 정부는 불과 3년 만에 쿠데타로 무너지게 된다. 1949년 한 해에만 세 번의 군사 쿠데타를 겪으면서 헌정 시리아는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이후 시리아는 군인 출신들이 집권층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시리아 국민의 다양성과 군인들의 정치 세력화=시리아 정치에서 군인들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것은 독립 당시 제대로 운영되는 국가 기관이 프랑스가 세웠던 사관학교뿐이었기 때문이다. 시리아 국민은 복잡하게 구성돼 있다. 종교적으로는 수니 무슬림들이 인구의 60%를 차지하면서 알라위, 기독교인, 드루즈 등 다양한 소수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다. 인종상으로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인들과 구분되는 소수 인종 쿠르드인이 있다. 종교에 따라 사는 곳이 달라지기도 한다. 알라위들은 대부분 지중해 연안에 거주하며, 드루주파는 남쪽, 쿠르드족은 북쪽, 또기독교인들은 전 지역에 걸쳐 거주한다. (표 참조) 이런 상황에서 군인들은 모든 종교와 인종에 걸쳐 배출됐기 때문에 정치 지도력을 확보하기 좋은 위치에 있었다.

 

◇미국과의 갈등=시리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연도를 꼽는다면, 1949년, 1963년, 1967년, 1970년, 1973년, 2011년이 될 것이다. 1949년에는 사실상 미국이 운영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유회사가 시리아 영토를 관통해 유럽에 닿는 송유관을 구축하려 했다. 당시 시리아 대통령이제안을 거절하자, 미국 CIA는 시리아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군사 쿠데타를 지원한다. 그 해에만 세 차례의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시리아 정치는 혼란의 도가니가 됐다. 1963년에는 바스당(아랍 국민당)이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고, 1970년에는 현 대통령인 바샤르 알-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피즈 알-아사드가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다. 하피즈 알-아사드는 소수 종교들과 도시 수니파들의 연합정권을 구축하면서 국가적 안정을 꾀했다. 하피즈의 통치는 군인들과 바스당, 그리고 소수의 개인적 추종자들의 지지에 기반을 두고 있었는데, ‘신 세습주의’라 불리는 이런 식의 통치는 중동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정치 방식이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면서 이 방식도 끝을 맺는다.

 

◇이스라엘과 시리아=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이 시리아와 이웃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 설립을 지원하자, 시리아는 1956년 소련과 우방 관계를 맺는 선택을 한다. 아랍인들이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세워지자 많은 아랍인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고, 다수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시리아에 정착하게 됐다.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에는 1967년과 1973년 두 번의 큰 전쟁이 있었고, 1967년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시리아에서 가장 비옥하고 물이 많은 골란 고원을 점거했다. 이스라엘의 골란 고원 점유는 국제법상 불법이었고 UN은 다양한 결의안을 통해 골란 고원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했으나 이스라엘은 거부하고 있다.

 

◇시리아의 경제 사회적 발전=이렇다 할 경제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시리아는 1970년 석유가 발견되면서 안정된 경제성장을 이루기 시작한다. 석유에서 조달된 재정으로 사회 개혁을 시행하고 교육제도를 확대하고 여성들의 지위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2011년까지 시리아 여성들은 어떤 아랍 국가들보다도 높은 수준의 평등을 누리고 있었다. 시리아의 발전에 더욱 핵심적이었던 것은 종교와 정치가 철저히 구분됐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가 인정됐으며 누구도 종교의 이름으로 국가를 통치하지 못했다.

 

◇2011년 이후 시리아 붕괴의 원인=현재까지 이어지는 시리아 문제는 내부적 원인과 지정학적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내부 원인으로는 석유 고갈로 인한 국가적 수입 감소와 장기간의 가뭄, 그리고 기후변동으로 인한 농업생산량 감소를 들 수 있다. 지역적 원인으로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크게 작용했다. 이라크는 시리아와 같은 다인종, 다종교 국가였는데, 미국 침공으로 인해 종파 간 내전이 발생했고, 그 결과 150만명에 달하던 기독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현재 20만명 정도만 이라크에 남게 됐다. 시리아의 내분은 세계 정치의 헤게모니 분쟁과도 맞닿아 있다. 미래의 중동이 미국 패권의 단일 지배하에 놓일 것인지,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거대 권력들이 함께 힘을 행사하는 장이 될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시리아 반정부 민주화 시위의 허구성=내분이 시작될 때부터 강대국들은 시리아 문제를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이용하려 했다. 2011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된 것을 두고 서방 국가들은 (한국도 마찬가지) ‘아랍의 봄’의 일환으로 시리아가 민주화 과정을 겪고 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당시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는 다른 아랍 국가들에 비해 아주 작은 규모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소수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주도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시리아 내 소수파인 기독교인, 알라위, 쿠르드족, 드루즈 등은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반정부 시위가 일어남과 동시에 친정부 시위가 더욱 큰 규모로 일어난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서방 언론들은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를 과장 보도하고 친정부 시위를 축소 보도함으로써 공정성을 잃었다.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는 각국의 입장=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터키는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시리아 내 반정부 시위가 무장투쟁이 될 수 있도록 무기를 지원했다. 시리아내 반정부 세력은 대부분 외세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무려 100여개 국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이 시리아의 반정부 투쟁을 지원하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무관하다. 그들의 목표는 경제적 이권이며, 시리아 땅을 이용함으로써 유럽에 쉽게 닿을 수 있는 송유관을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다. 2010년 그런 계획이 발표됐을 때 아사드 대통령은 그에 반대하면서, 이라크, 이란을 잇는 새로운 송유관을 만드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도에서 보면 보라색이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를 잇는 송유관 건설 계획이고, 붉은색이 이란, 이라크, 시리아를 잇는 송유관 계획이다) 아사드 대통령은 주변국과 함께 미국에 대항하는 정치적, 경제적 동맹을 꾀했던 것이다.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주체로 남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시리아, 이라크, 이란의 ‘3국 연합’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미국이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하야를 원했던 실질적인 이유다. 반면 EU에 석유를 수출하는 러시아는 아사드를 지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송유관이 러시아의 대유럽 석유 수출 산업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시리아 전쟁을 막아야 하는 이유=현재 시리아에 남은 선택은 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를 유지하는 것과, 알카에다나 IS 같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국가가 되는 것밖에 없다. 시리아가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넘어가 현재보다 훨씬 많은 난민을 양산하는 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시리아를 장악하면 그들은 주변 이슬람 국가들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공격에 나설 것이다. 최근 러시아는 아사드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군사적 개입에 나섰는데, 이는 미국 동맹군과 러시아 동맹군 간의 분쟁을 끝낼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시리아 내전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이 전쟁이 지속되면 중동 전체가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가 더 이상 파괴되는 것을 막아 내지 못한다면 서울에서도 시리아 난민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행정대학원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 교수는 정치학을 전공했고 2008년부터 시리아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http://gspa.snu.ac.kr/new/sub3/sub_030101_24.jsp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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