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학교육학과 신좌섭 교수

지난 수년을 돌이켜볼 때 2011년 12월의 법인화는 찬반을 떠나서 서울대의 역사에 일대 전환점이었다. 필자가 이해하는 범위에서 보면, 법인화는 정부로부터의 독립과 재정적, 행정적 자율성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주인이 없는 대학에서 주인이 있는 대학으로 이행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이자 시련이고 기회였다. 과거에는 국가가 주인이었으므로 국가의 보호와 간섭을 받아 사실상 주인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법인화를 통해 교직원, 학생 등 조직 구성원이 자율적 의사결정권을 가진 주인이 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는 법인화를 전후하여 대대적인 조직 재설계를 시도했어야 함을 뜻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과정은 아직 없었다. 조직 재설계에는 여러 접근방식이 있지만, 필자는 ‘조직발전의 여정’(Map of Organizational Journey)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 이 모델은 조직을 위계적 조직, 제도적 조직, 협력조직, 학습조직의 4단계로 나눈다. 1단계 위계적 조직은 말 그대로 빅 보스(big boss)의 지휘 아래 상명하달의 일방적 명령체계, 생산독려, 하루하루의 생존을 걱정하는 구성원이 특징이고, 2단계 제도적 조직은 부서 간의 경계가 명료하며 세세한 임무와 절차가 규정화되고 제도화된 것이 특징이다. 3단계 협력조직은 수직, 수평의 원활한 의사소통, 팀 간의 활발한 토론과 협력이 이루어지는 조직이고, 4단계 학습조직은 조직 전반에 걸친 공감적 의사소통과 팀을 넘나드는 긴밀한 네트워크, 일상의 업무를 통해 조직이 끊임없이 학습해 매일 지혜를 축적하고 발전해나가는 조직이다.

구성원들에게 서울대가 현재 어느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으면 답은 다양할 것이다. 경험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경험한 바의 서울대는 ‘1.5~2.5’ 정도 즉, 위계적 조직과 제도적 조직의 중간 지점과 제도적 조직과 협력조직의 중간 지점 사이에 분포하는 것 같다. 너무 인색한가 싶지만 아마 다른 사람들의 판단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법인화 이후의 서울대가 사회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4단계의 학습조직이 돼야만 한다.

조직이 어떻게 학습을 하는가? 지면 제한 때문에 학습조직 이론을 주창한 피터 셍게의 ‘Fifth Discipline’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 의미의 학습조직은 ‘인류의 문화 향상에 기여하려는 사명감, 리더가 구성원들을 섬기는 서번트(servant) 리더십, 상급자가 중급자를 중급자가 다시 신입자를 멘토링하는 중층적 멘토링, 조직 전반에 걸친 공감적 의사소통,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 팀 간의 상호의존적인 네트워크, 창조적 아이디어의 무한공유, 서로 의존적이면서도 각기 완성도가 높은 인간형의 추구, 일상적 업무에서의 경험과 실수를 통한 학습’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조직에서는 구성원이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일상적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혜를 조직으로 수렴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조직이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학습하는 유기체가 되는 것이다.

금년 말이면 벌써 법인화 4년이다. 늦었지만 이를 기점으로 서울대의 장기적인 조직발전 방향을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2016년 약 1년에 걸쳐서 ‘드림 SNU’ 같은 화두를 가지고 조직발전 측면에서 서울대의 현 상태를 진단하고 진정한 학습조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전 구성원을 참여시키는 대규모의 조직 재설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갑자기 1970년대로 돌아간 것 같은 최근의 정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여 70년대에 적합했던 위계적, 제도적 조직 운영방식을 그대로 유지한 채 21세기의 전반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더 성과에 집착하고 있지만, 연구든 교육이든 봉사든 근본적인 체질 변화 없이 사람들을 몰아친다고 실적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몇 사립대에서 산업화시대의 기업혁신모델을 그대로 적용해 실패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조직의 근본적인 체질, 발전단계를 업그레이드할 계기를 마련해야 할 시기이다.

 

신좌섭 교수

의학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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