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뿌리, 줄기, 열매를 들여다보다
한글의 뿌리, 줄기, 열매를 들여다보다
  • 이승엽 기자
  • 승인 2015.10.1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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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569돌 한글날 기념 제7회 집현전 학술대회

한글날은 1926년 일제 강점기 민족주의 국어 연구자들로 구성된 조선어연구회가 ‘가갸날’로 처음 지정한 이래 우리말의 중요성과 한글의 가치를 되새기는 날로 기념돼 왔다. 올해 569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학회를 비롯한 관련 국어학 학회들은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다수의 학술행사를 열었다. 주시경 선생의 제자이자 한글 문법의 초석을 세운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외솔회 또한 지난 8일(목)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집현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올해로 7번째를 맞는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우리 생활 속의 한글’을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전나영 교수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 방법론에 대한 본인의 연구를 발표하고 있다.

◇너도 밤나무? 나도 밤나무!=인간은 문자가 없던 시절부터 가축과 맹수, 산속의 나무와 열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식물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들과 함께 살아왔다. 그런 점에서 동식물의 이름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도 친숙한 어휘이자 고유어 연구의 중요한 매개체다.

식물명의 유래를 연구해온 임소영 교수(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는 ‘자연·겨레의 삶과 한글’을 주제로 시작된 1부 발표에서 고유어 연구의 한 예로 너도밤나무를 제시했다. 참나무과의 낙엽수인 너도밤나무는 밤나무처럼 가시가 돋친 억센 열매를 맺는다. 임 교수는 “너도밤나무는 밤나무와 닮아서 ‘너도’ 밤나무라는, 언중의 평가에서 명명된 것으로 추측된다”며 “대중에겐 익숙하지 않은 나도밤나무 또한 ‘나도’ 밤나무를 닮았다고 해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타인이 닮았다고 인정하는 방식으로 서술된 너도밤나무가 스스로 밤나무를 닮았다고 말하는 나도밤나무보다 밤나무와 더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더했다.

식물 이름에는 과거 한국인의 문화와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며느리밥풀” “며느리배꼽” “며느리주머니” “며느리밑씻개”같이 ‘며느리’가 들어가는 식물은 그 생김새를 살펴보면 대부분 작고 볼품없다. 임 교수는 “언중들은 한없이 잘생기고 예쁜 아들이나 딸의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식물들에는 어김없이 ‘며느리’라는 단어를 붙였다”고 분석했다.

이름의 유래뿐 아니라 변천사를 살펴 고유어를 분석한 연구자도 있었다. 김정남 교수(경희대 한국어학과)는 15세기 『훈민정음 해례본』부터 19세기 『한청문감』까지 한글 서적들에 기록된 동물명의 사례를 연구했다. 세종대왕과 학자들은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훈민정음을 풀이하며 그 예시 어휘로 동물 이름을 들었다. “쇼(소)” “얌(뱀)” “사(사슴)” “범(호랑이)” 등 예시 94개 중 23개가 동물명이다. 김 교수는 “사례 중 25%가 동물 이름일 정도로 과거 민중들의 삶에서 동물이 얼마나 가까운 존재였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의 영향을 받아 한자어 어휘가 그 수효나 체계가 방대함에도 동물은 여전히 상당수의 이름을 고유어로 사용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밭은 대전, 애오개는 마포로 한자어화돼 사용되고 있지만 동물 이름은 그렇지 않다”며 “그만큼 옛사람들에게 동물은 삶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변해버린 우리말의 뒷모습=그러나 모든 고유어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방 이후 영어권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인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외래어를 자주 사용했다. 처음에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시도했지만 직역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외래어 그대로 쓰이는 일이 많아졌다. 임 교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가로수로 많이 사용되는 ‘Bottlebrush’는 한국에 들어올 때 그대로 우리말 ‘병솔꽃나무’로 직역됐다”면서도 “이처럼 20~30년 전만 해도 외래종이 우리나라에 유입될 때는 한글 이름을 붙여주는 경우가 많았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특히 거리에서 항상 마주치는 간판은 외래어와 혼용어의 천국이다. 성균관대 수원캠퍼스 일대의 간판 언어를 분석한 김진희 박사(한남대학교 교양융복합대학)는 608개의 간판 중 외래어가 204개, 혼용어가 192개로 전체의 65%에 이른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반면 고유어로 된 간판은 72개, 한자어는 140개에 불과했다. 김 박사는 “카페, 마트 등 업종이 외래어인 경우 상호 또한 그에 맞춰 외래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유어 간판의 경우 ‘꿈’ ‘정든’ ‘우리’ ‘미소 짓는’과 같이 밝고 긍정적이며 정감있는 어휘에 한해 사용됐다”고 분석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구입하는 식품류의 제품명을 분석한 윤천탁 교수(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는 “‘부푸러’ ‘까마쿤’처럼 일부러 문법을 지키지 않은 경우나 ‘쵸코 우유’처럼 외국어표기법에 어긋나는 경우도 많이 발견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브랜드 인지도의 상승과 판매 증가를 노리려고 일부러 한글을 변형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냉이된장’ ‘언니몇쌀’처럼 언어 유희적 요소도 많이 사용되는 등 기존의 문법적 분석뿐 아니라 사회언어학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두를 담을 수 있는 한글 보따리=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한글 어휘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과 더불어 한국어 교육의 대상도 다변화되고 있다. 케이팝,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으로 한류 열풍이 불면서 외국인들의 한국어 교육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늘어난 덕분이다. 이에 학술대회 후반부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 및 다문화 가정 자녀들 한글 교육 연구 발표가 이어졌다.

오랫동안 외국인 유학생의 한국어 교육을 담당해온 연세대 한국어학당 전나영 교수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어 교육은 문법과 암기 위주의 인지적 교수방법에 의해 이뤄졌다”면서 “한글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많아진 이후엔 언어의 구조뿐 아니라 활용에 관심을 두는 의사소통적 교수방법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흥미를 통해 학생의 몰입을 유도하는 말하기 위주의 참여 수업이 한국어 수업의 주를 이루고 있다.

유아 한글 교육 또한 이번 학술대회에서 중요한 과제로 다뤄졌다. 지난 2013년 전국 5개 시도교육청에서 실시한 초등학교 3학년 ‘기초학습 진단평가’ 결과, 전체 학생 중 읽기 미도달 비율은 4.55%, 쓰기 미도달 비율은 10.51%에 이른다. 초등학교 1학년의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의 차이가 이후 학습에서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고려할 때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솔교육 박심덕 수석연구원은 “실제로 초등학교 1학년에서 기초적인 한글 익히기를 위한 수업 시간은 27시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한글을 모르는 아이가 한글을 떼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특히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한글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어머니에게 언어교육을 받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 향후 학습 과정에서 뒤처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이경우 명예교수(이화여대 유아교육과)는 교육 매체의 다변화를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누구나 쉽게 사용 가능한 한글 교육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상용화 돼 있다”며 스마트폰의 교육 매체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 애플리케이션의 대부분이 전문가의 체계적인 검증 절차 없이 개발되고 있어 제대로 된 한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꾸준한 연구가 이뤄진다면 스마트폰이 유아의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는 장점을 살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좋은 학습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문이라 불리며 천대받는 우리말에 ‘큰’ 글이라는 의미의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국어학자 주시경. 그는 늘 책 보따리를 들고 여러 학교에 다니며 강의를 위해 동분서주해 ‘주보따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569번째 생일을 맞는 한글은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러 가지 위기와 기회에 직면해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고유어와 어휘 변화, 한글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한글 연구가 발표된 이번 학술대회가 주시경 선생의 보따리처럼 한글 연구의 보따리가 더 가득해지는 교류의 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사진: 장은비 사진부장 jeb1111@snu.kr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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