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선 안 될 이들, 미술작품으로 불러내다
잊혀선 안 될 이들, 미술작품으로 불러내다
  • 대학신문
  • 승인 2015.10.3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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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이한열기념관 ‘보고 싶은 얼굴’ 기획전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싶은 얼굴.” 가수 현미의 노래 ‘보고싶은 얼굴’의 가사다. 이한열기념관은 이 노래에서 이름을 따와 지난달 7일부터 민주화운동 중 세상을 뜬 여섯 열사를 소재로 기획전 ‘보고 싶은 얼굴’을 열었다. 이한열기념관 이경란 관장은 “노래 ‘보고싶은 얼굴’은 4·19 혁명이 5·16 군사정변에 의해 좌절됐을 때 4·19 혁명을 기리며 불렀다는 의미가 있다”고 노래에서 기획전 이름을 따온 이유를 설명했다.

 

대중의 무관심을 걷고 열사를 이해한 예술가들
 

이번 전시에는 이재삼, 성효숙, 강영민, 이버들이, 장유진, 박정혁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1975년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인혁당 사건으로 44세의 나이에 사형당한 하재완 △1979년 경찰이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이던 YH 여성 노동자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추락사한 당시 22세 김경숙 △학생 운동을 하는 동안 중점관리대상으로 감시관찰을 받던 중 1988년 25세의 나이에 행방불명된 안치웅 △1996년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결의대회 도중 강경 진압으로 거리에서 사망한 당시 21세 노수석 △2012년 재능교육 교사노동조합 활동 중 암 투병 끝에 사망한 이지현 △같은 해 장애인 활동보조인이 없어 화재에 대피하지 못하고 방안에서 사망한 장애 인권운동가 김주영 열사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

기획전에 참여한 여섯 명의 예술가는 각자가 이해한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작품에 녹여냈다. 여섯 작품을 관통하는 특징은 작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민주화운동의 열사를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작가들은 열사 개인의 삶에 공감하려 노력하면서도 그를 궁지로 내몬 사회에 느끼는 울분을 작품에 담았다.

▲ 강영민, 'wanted', 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스프레이 페인팅, 100×80.3cm, 2015

팝 아티스트 강영민 작가는 현상수배 포스터에 안치웅 열사의 졸업사진을 넣었다. 그의 작품 ‘Wanted’는 현상금을 높게 매긴 흉악범을 찾는 현상수배와 정의로운 청년의 대비를 연출한다. 이로써 작가는 학생 운동가 안치웅을 범죄자로 만든 당시 정권에 대한 비판과 실종된 그를 찾고 싶어 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동시에 드러냈다. 강영민 작가는 “팝아트는 대중매체가 규범적으로 정해 놓은 것에 균열을 낸다”며 “대중이 무거운 소재로 여기는 열사를 일상으로 가져오고 싶었다”고 작품을 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 장유진, '새가 나니 웃고 꽃이 피니 웃어, 그래 언니야.', 혼합재료, 2015

장유진 작가는 이지현 열사에게 느낀 인간적 동질감과 그를 죽음으로 내몬 사회에 대한 분노를 작품에 녹여냈다. 장유진 작가의 작품 ‘새가 나니 웃고 꽃이 피니 웃어, 그래 언니야.’는 해골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형상이다. 웨딩드레스 안에는 검은색 개미가 가득하고 밖에는 개미를 닮은 작은 사람 모형이 흩뿌려져 있다. 그는 “미혼인 채로 노동운동을 하다 떠난 언니를 꾸며주고 싶었다”면서도 머리와 눈에 개미가 가득하게 연출해 ‘개미처럼 성실하게 살라’는 말이 노동자에게는 성실을 가장한 착취일 수 있음을 표현했다.

▲ 성효숙, '혹고니를 안은 YH김경숙'(가운데), 상자에 아크릴물감, LED전구, 35×80cm, 2015

성효숙 작가는 노란 조명 아래 따뜻한 색으로 그린 작품 ‘혹고니를 안은 YH 김경숙’에 20대부터 60대 여성노동자의 심장박동을 녹음한 소리를 담았다. 작품에서 다수가 더불어 있는 모습을 표현했을 뿐 아니라 작업을 할 때도 여럿과 함께한 성효숙 작가는 “심장 소리 녹음에 참여하신 분부터 기계 사용을 도와주신 분, 녹음 장소를 제공하신 분, 내과 의사와 간호사 여러 분, 음을 증폭시켜준 학생까지 많은 도움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과거를 기억하고 피해자를 치유해야


지난달 28일에는 이번 전시를 맞아 국가폭력 피해자의 ‘기억과 치유’를 주제로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이화영 소장의 특별강연이 열렸다. 이화영 소장은 국가폭력을 ‘과거 독재정권하에서 정권 연장을 위해 반독재운동가와 국민에게 가해졌던 각종 국가기구의 폭력적 탄압이나 억압’으로 정의했다. 강연에 따르면 국가폭력 피해자의 정확한 데이터는 없으나 피해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는 30만480명이다. 이마저도 신고된 수치이며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추가 진실규명을 신청한 사건도 8,450건에 달한다.

센터에서 피해자 치유를 직접 돕고 있는 이화영 소장은 국가폭력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고문을 당한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는 “주요 증상은 재경험, 회피, 과다 각성으로,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으신 분들은 남산 터널에 아직도 가지 못하며 얼굴에 천을 씌운 채 물고문을 당하신 분들은 치과 치료를 위해 얼굴에 천을 덮거나 마스크팩을 얼굴에 붙이면 숨이 막히는 경험을 한다”고 말했다.

강연에 따르면 고문을 당한 피해자의 충격이 현재와 미래까지 지속되는 것은 피해자가 나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연한 증상이다. 이화영 소장은 “사회의 인정과 주변의 지지가 피해자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며 “(과거의 국가폭력을) 기억하지 않으면 또 다른 형태로 더 교묘한 법적·제도적 폭력의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란 관장도 “전시회가 돌아가신 분에 대한 기억과 보존을 시도한다면, 강연은 죽음에 가까이 가셨지만 살아계신 분들에게 치유와 사회적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웠다”며 “이한열기념관은 이한열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많은 분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방문객들이 역사에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다리가 된다. 이경란 관장은 “(전시를 본 어린 학생들이) 발 딛고 있는 땅이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게 아니라 많은 분이 희생하고 애쓰신 결과라는 느낌만 가져가도 좋을 것”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문영미 학예연구실장은 “학생들이 (장유진 작가 작품에서) 조그마한 사람이 바글바글한 의미를 물어서 학생 의견을 되물었더니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이지현 조합원의) 결혼식에 온 하객이 많다’고 답했다”며 “역사를 주입하는 대신 생각할 수 있는 여백과 상상력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느낀 바를 덧붙였다.

‘보고 싶은 얼굴’ 기획전은 이번달 30일까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에 관람이 가능하다. 민주화의 역사와 인물들을 색다르게 기억에 새기는 경험을 놓치지 말자.

 

 

 

사진: 김여경 기자

kimyk37@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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