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청년 현실을 다루는 팟캐스트

“여의도 불꽃 축제에서 스태프 알바를 했어요. 저녁도 못 먹고 한참 고생하는데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죠. 내 시급은 고작 6,000원인데 저 불꽃은 하나당 얼마나 될까. 다음 생에는 돈으로 태어나야겠어요.” 지나치게 현실적인 한 청년의 일화는 그 이름도 절망적인 ‘절망 라디오’라는 팟캐스트에 소개된 것이다. 라디오 방송보다 더 교양과 지식이 넘쳐났던 팟캐스트 세계에 ‘청년들’이 발을 들였다. 수많은 낙방에 지친 취업준비생, 학자금 대출로 허리가 휘는 대학생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는 방송이 우리의 귀를 잡아당기고 있다.

◇여기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철수와 존슨의 취업학개론’(취업학개론) ‘절망 라디오’ ‘청일전쟁’(청년들의 일자리 전쟁) 등 심각한 청년 현실을 자유롭고 담담한 톤으로 다루는 팟캐스트가 주목받고 있다. 이런 방송들은 3년여 전부터 등장하기 시작해 지금은 약 30여개나 된다. 팟캐스트 취업학개론은 퇴사 후 다시 취업을 준비하던 두 진행자가 겪은 취업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을 수 있는 방송이다. 실제로 기업 이름을 거론하며 들려주는 취업학개론의 ‘카더라 방송’은 특히 취업준비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정보가 된다.

자유롭고 일상적인 것을 선호하는 팟캐스트의 진행은 마냥 가볍지도, 사변적이지도 않은 내용과 잘 어울린다. 진행자들끼리 ‘짠’ 하고 술잔을 부딪히는 소리로 시작하는 취업학개론은 두 진행자가 술자리에서 대화하듯 취업 이슈에 대해 담소를 나눈다. 진행자인 철수 씨(가명)는 “존슨과 술을 먹다가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를 한번 녹음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며 “면접관에게서 받은 질문을 가감없이 편하게 이야기했는데 취준생들 입장에서 신선하게 들렸다고 해서 신기했다”고 말했다.

◇한숨 나오는 현실은 그 자체로 유머=이들 방송은 단지 청년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전부가 아니다. 어떤 청년 방송들은 자칫 심각할 수 있는 내용에 뼈 있는 농담을 더해 재미를 획득한다. ‘노 멘토링, 노 힐링, 노 답’을 표방하며 절망적인 사연을 소개하는 방송인 절망 라디오의 설문조사 코너 ‘망케이트’가 딱 그렇다. ‘공룡이 멸종한 이유’를 물어보며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라는 선택지를 넣거나, ‘친지들과 레스토랑 가기’와 ‘밥버거 혼자서 먹기’를 비교하는 식이다. 추석을 맞아 ‘한가위 한마당’을 열어 ‘계란으로 바위 치기’ 등의 프로그램과 함께 노력만을 강조하는 풍토도 비판한다. 진행자 김성일 씨는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다는 말을 가볍게 위악을 떨며 놀이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취준생과 재직자, 이직 희망자가 함께 취업의 고충을 나누는 팟캐스트 ‘1생겨요’에서는 진행자들이 마치 면접관들이 자기소개서를 평가하듯 입사 탈락 통보문을 평가하는 역발상을 보여준다. ‘고생하십니다’라며 취준생을 배려하는 듯한 말투의 통보문에는 칭찬을, ‘귀하의 댁내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는 상투적인 인사구에는 신랄한 비판을 던지며 점수를 매긴다. 회사 통보문의 참신함과 진실성을 오히려 취준생이 평가하는 상황에선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잘 될 거라고 말하지 않기=취업난 등으로 청년들의 현실이 어두운 와중, 여타 매체에서는 자칫 밝게 그리려다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청년 현실을 다루는 팟캐스트의 등장 배경에는 청년의 진짜 목소리를 듣기 힘들었던 이와 같은 배경이 있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청년에게 팟캐스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접근성이 높고 빠른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점 역시 쌍방향 소통에 도움을 준다. 청일전쟁에 참여한 「씨네21」 김송희 기자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접근해 댓글을 남길 수 있다”고 매체의 장점을 말했다.

방송들은 청년 세대의 어려움을 소개하며 여느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잘 될 거다’고 격려하거나 무조건 ‘노력하라’고 충고하지 않는다. 20대가 주 청취자인 절망 라디오에서는 학자금 대출을 비롯한 빚 문제, 예술 전공 학생의 생활 문제나 취업 문제 등 전반적인 청년 세대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김성일 씨는 “라디오에서 흔히 사연을 좋은 쪽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듣고 사연은 완결되지만 사연을 보낸 사람의 삶은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며 “사람들의 절망적인 사연이 완결되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청취자들 역시 절망적 사연을 지나치게 포장하지 않는 데에 매력을 느낀다. 청취자 윤무영 씨(경제학부·10)는 “절망과 불안을 그대로 응시하게 해주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청년의 지금을 보여주는 것=각 방송들은 개인적인 취업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 혹은 주변 청년 세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와 같은 저마다의 다른 계기로 시작됐지만 무엇보다도 청년의 ‘지금’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김송희 기자는 “20대가 아닌 사람들은 막연하게 ‘요즘 20대들은 취업, 아르바이트나 연애, 생활비, 성적 등이 고민일 거야’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사연에서 볼 수 있는 개개인의 생각과 고민은 좀더 깊이가 있다”며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도 청년을 개인으로 들여다보는 노력을 한다면 좋을 것 같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청년 세대를 규정하는 말은 많아지지만 정작 청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많지 않던 요즘, 팟캐스트는 길이 보이지 않는 청년들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컨텐츠다. 김성일 씨는 “(팟캐스트가) 청년들의 심리적 상태를 짚고 현재 사회상을 그리는 모습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불확실하고 잘 보이지 않는 미래를 바로 밝게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같이 그 속을 헤메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힘이 될 수 있다.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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