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비포 애프터’

“언젠가 바닷가에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바다가 무서워졌어요.” 어느 세월호 유가족은 그렇게 말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 16일을 기점으로 유가족들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졌다. 사건의 경과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도 세월호를 겪으며 깊은 슬픔을 느꼈고 한국사회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세월호의 비극은 곧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의 비극이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우리는 이내 평온한 일상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세월호 사건은 점차 누군가가 겪은 ‘가슴 아픈 일’이나 정치적 이슈로 언급됐다.

연출가 이경성 씨가 이 사건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기로 하고 ‘세월호와 나의 삶을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진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는 연출의 변에서 ‘비포 애프터’라는 제목을 짓게 된 뜻을 이렇게 밝혔다. “비포 애프터라는 시간적 구분은 어떤 사건의 기점으로 말미암아 그 전과 후가 달라진 변화를 의미한다. (…) 그러나 누군가의 비포 애프터가 모두의 비포 애프터가 되지는 못한다. 그 사이에는 늘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다.”

연극 ‘비포 애프터’는 바로 어떻게 그 ‘거리’를 넘어 당사자의 고통에 가닿을 수 있는지 배우들이 스스로 탐구한 결과물이다. 배우들은 각자가 경험한 세월호와 자기 삶에서 큰 변화가 있었던 ‘비포 애프터’를 연기하는 한편, 실제 <두시탈출 컬투쇼> 방송이나 대통령 대국민 담화 같은 당시의 상황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어떤 이는 친구의 자살 이후 부채감을 느꼈던 경험을 끄집어내고, 누군가는 시위 현장에서 눈이 실명될 정도로 폭행을 당하고 감옥살이까지 했던 일을 들려준다. 아버지의 위암 투병을 오랫동안 지켜본 배우 성수연 씨는 자신이 목도한 ‘아버지의 몸’을 연기함으로써 죽음을 이해해보려 한다. 사건의 비극성을 부각시키기보다 철저히 사적인 체험에서 출발해 당사자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 여섯 명의 배우들이 스푸닝 자세(누워있는 상대의 옆에 같이 누워 자기 몸을 상대와 같은 형태로 밀착하는 자세)로 눕자, 세월호의 목적지였던 제주항에서 녹음한 파도소리가 무대에 울려퍼졌다.

배우들은 자기고백을 통해 자신과 세월호와의 접점을 찾는 데서 더 나아가 관객도 간접적으로 사건을 체험하도록 이끈다. 도입부에서 관객들은 공연 중 비상사태 발생에 대비한 탈출 매뉴얼을 교육받는다. 배우들은 양옆 사람과 서로의 얼굴과 손을 인식하는 시간을 갖고 긴장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호흡법을 연습하라고 관객에게 제안한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과의 신체접촉에 멋쩍어 하고 배우들의 진지한 시범에 웃음을 터뜨리던 관객들은 어느새 숙연함에 잠기게 된다. 체험의 절정은 학생들, 해경, 선원, 국가가 출연하는 극중극이다. 세월호의 선체가 점점 기울며 가라앉는 상황에서 학생은 공포에 질려 소리치고 선원과 해경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왕관을 쓴 국가는 객석에 앉아 이 모든 것을 지켜볼 뿐이다. 실제 세월호 통화 녹취록과 선내 촬영 동영상 등에서 가져온 대사는 익히 아는 것이지만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한 연극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훨씬 강렬한 추체험이 된다.

▲ 극중극에서 세월호에 탑승했던 학생들로 분한 배우 채군 씨(왼쪽에서 세 번째)와 성수연 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선체가 기우는 상황에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있다. 객석 맨 앞줄 가운데에 왕관을 쓰고 앉은 배우 장수진 씨는 국가 역을 맡았다.

‘비포 애프터’를 본 관객들은 세월호 유족의 아픔에 공감하고 당시의 경험을 떠올리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영희 씨(송파구·57)는 “부모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며 “연극을 보면서 내 안에 아직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박지혜 씨(성동구·30)는 극중극 장면에 대해 “햄릿이 삼촌 앞에서 연극을 하며 그의 범죄를 재현한 것처럼, 연극이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눈앞에서 보여줘 움찔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경성 씨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보다 배우들 각자의 시선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비포 애프터’를 “머리와 마음, 그리고 발까지의 거리를 좁히는 삶 연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연극의 공동창작자인 6명의 배우들은 결코 오롯이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연습’을 했다. 이 치열한 연습의 산물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관객은 이제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에게 세월호는 무슨 의미였을까? 나는 그들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어떤 관객은 나아가 배우들이 했던 것과 같은 연습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세월호 유족뿐만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감응하는 보편적인 연습일 수 있다. 이 낯선 실험극이 많은 이들에게 세월호 사건이 가져온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비로소 발견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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