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부 고아라 기자

지난주, 학내에서 행진이 있었다. 만민공동회, 시국선언과 함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참여한 행진이었다. 학내외에서 수많은 ‘행진’ 행사가 열리지만, 이번만큼은 그 모습이 사뭇 달랐다. 행진하는 학생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달랐고,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달랐다. ‘국민의 뜻 거스르는 독재적 발상 반대한다’라든가 ‘시대역행 국정교과서, 대학생은 거부한다’와 같은 꽤 강한 어조의 구호를 연신 외치며 행진하는 학생들을 보기가 불편할 법도 한데, 이들을 마주친 사람들은 오히려 박수와 환호를 보내기도 하고 옆 사람에게 ‘가만히 서 있기가 미안하다’고 조심스레 말하기도 했다. 눈 감고 귀 막은 정부가 일으킨 온갖 사건들로 학생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최근 몇 년간, 실제로 행동을 하는 쪽과 그들을 지켜보는 쪽의 뜻이 이렇게나 같은 적이 있었던가.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한 지 이틀 뒤엔 학내에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전국 역사학 관련 학회 28개가 국정화 반대 성명서를 내놨다. 이에 보수 성향 단체들이 행사장을 찾아와 학생 및 교수들에게 막말과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전쟁처럼 수강신청을 하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과제를 하며 하루하루 그렇고 그런 대학생활을 해 온 나로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들이 모여 현대사가 되고 근대사가 된다’는 말을, 교과서 국정화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실감하는 요즘이다. 20년 간 당연한 듯 살아온 일상이 아닌, 다가올 역사 속에 살고 있음을 느끼며 지낸다.

그러고 보면 지난 2년 동안 기자로서 목격한 모든 순간이 바로 우리 시대의 역사였다. 일상에 대한 생경한 느낌도 처음은 아니다. 국민들이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드는 모습, 대학 곳곳에 대자보가 붙어 있는 모습은, 안타깝게도, 낯설지가 않다. 2년 전, 철도노조 파업 이후 수천 명이 직위해제된 일과 해결되지 않는 밀양 및 쌍용자동차 노조 문제 등을 지적한 한 고려대생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시작으로 전국의 대학에 대자보 열풍이 불었다. 또 밝혀지지 않는 세월호 사건의 진상, 일방적으로 진행된 대학 구조조정과 노동개혁 등으로 광화문 광장도 페이스북 타임라인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그 시끄러웠던 순간들은 아무런 결말이 없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리 우리가 한 마음으로 행진을 하고 촛불을 들어도 정부가 지금처럼 두 눈 꼭 감아버리면 그만 아닐까, 귀를 틀어막은 채 등 돌리고 서있는 정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기나 한 걸까. 몇 번씩 되풀이되는 상황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지쳐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만 움직인다. 엊그제만 해도 벌써 세 번째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범국민 대회가 열렸다. 이들을 보며 생각을 고쳐 본다. 내 생각이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지치지 않고 모여들어 촛불을 밝히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발판 삼아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말을 역사에 써 넣을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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