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통일대박론’을 강조한 후 약 2년이 지났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강조가 무색할 정도로 통일 문제에 대한 실질적 성과가 초라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열린 ‘2015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에서도 해결되지 못한 북한 관련 문제들이 제기됐다. 150여 명의 국내외 학자가 참여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북한의 대외관계, 군사와 같은 전통적인 논의는 물론 북한의 관광, 복지, 문화에 대한 논의까지 오갔다. 그중에서도 논의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단연 ‘어떻게 통일을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 '해외의 체제전환과 남북한' 세션에서 발제자들이 동시통역되는 토론 내용을 듣고 있다.

 

흡수통일이라는 허수아비

‘통일대박론’으로 요약될 수 있는 정부의 태도는 구체성과 현실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에서 현장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신한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 최완규 소장은 “현 정부의 통일 담론은 통일의 방식과 과정, 그에 필요한 노력을 모두 삭제한 채 ‘통일을 하면 이런 것들이 좋다’는 이야기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히라이 히사시 객원교수(일본 리츠메이칸대)는 “내일이라도 통일이 될지도 모르며, 이를 위해 항상 준비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결국 북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전제한 것인데 이는 매우 비현실적”이라 지적했다. 북한의 자멸에 대한 가능성이 적은 와중에 현 정부는 통일이라는 단어를 소비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학술대회에서 여러 학자는 김정은 정권이 간부층과 서민층에 각각 다른 통치 전략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안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우선 히라이 교수는 “김정은은 간부층을 상대로는 공포통치를 펼치며 강력하게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 김정은은 측근들이 2인자로 부상하지 않도록 정치적 성장을 견제하고, 필요한 경우 과감한 숙청까지 감행하며 완벽한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히라이 교수는 “김정은 집권 초기에 대부분의 학자가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는 김정은은 상징적인 존재에 그치고 실질적인 권력은 측근이 행사하리라’ 예상했던 것이 완전히 빗나갔다”고 설명했다.

이와 다르게 김정은이 서민들을 대상으로는 애민정치를 펼치며 지지기반을 다졌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박동훈 교수(중국 연변대 조선한국연구센터)는 “김정은은 김정일 시대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파격적 행보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정은은 서민들과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는 등 ‘스킨십 정치’를 펼치거나 현장에서 간부들과 함께 직접 쪼그려 앉아 잡초를 뽑는 모습을 보이며 친근한 지도자상을 만들고자 했다. 이에 더해 그는 디즈니 캐릭터나 할리우드 영화 등 해외 문화에 수용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부인과 팔짱을 끼고 다니는 등의 행동을 통해 개방성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김정은 정권이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국내외 기대감을 부풀리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박 교수는 김정은이 “선대를 초월하는 대담하고 자유분방한 행보를 통해 본인만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수립했고, 정권의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김정은 정권은 사회의 각 계층이 자신에게 갖는 서로 다른 기대감에 강경과 온화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하며 정권을 안정시켰다는 분석이다. 이는 북한 정권이 자연히 붕괴하리라는 현 정부의 정책 핵심과는 괴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히라이 교수는 “소수의 상위 간부에게만 적용되는 공포통치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반발이 일어나리라는 예상은 설득력이 없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 역시 “김정일의 죽음과 함께 북한이 붕괴하리라는 예측이 무성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리라는 기대는 설득력이 적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 프랑수아즈 니콜라 박사는 북한 붕괴와 흡수통일에 대한 전제가 북한과의 소통만 저해한다며 “한국이 흡수통일에 대한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통일의 기록 속에
깃든 통일의 실마리

흡수통일에 대한 비판 이후에는 자연스레 남북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소통해야 하는가, 또 어떤 방식으로 통일을 이뤄야 하느냐는 질문이 남았다. 이에 체제전환이나 분단국가 통일을 경험한 해외 사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12월, 50년에 걸친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합의한 쿠바의 사례에서 북한과 국제사회 관계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통일연구원 이우태 박사는 쿠바의 경제적 실용주의가 쿠바와 미국 관계를 변화시킨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쿠바는 미국의 제재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적 경제 관계를 다양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특히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모델을 채택하고 중국과 밀접한 경제적 관계를 맺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확대되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쿠바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고 쿠바와 협력했다. 그는 이러한 쿠바의 사례에 비춰볼 때, 핵을 중심으로 한 군사적 노선과 경제적 노선을 동시에 추진하는 현 북한의 병진노선(並進路線)은 결국 쿠바의 경우처럼 경제적 실용주의로 노선을 변경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보다 세부적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지의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대해서는 남북 간의 상호의존성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카를로스 세일리 교수(미국 럿거스대 경제학과)는 미국이 쿠바와의 무역을 허용하는 정책을 택했을 때 미국과 쿠바 간의 갈등이 현저히 줄어든 것을 예로 들며 국가 간의 상호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갈등이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이어 세일리 교수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여러 방면에서 보다 많은 교류를 통한 높은 상호의존도를 수립하는 단계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자유 패널로 참여한 오종문 씨(동국대 북한학과 박사과정)는 단순히 상호의존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나아가 상호의존도를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상호의존적인 두 국가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덜 의존적인 국가가 관계의 주도권을 쥐게 되며, 이러한 상호의존의 비대칭성을 유리하게 관리하는 것이 권력관계의 핵심이다. 그는 “남북한의 상호의존관계에서 개성공단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며 “개성공단의 확대, 발전은 남북의 상호의존성을 증진하는 것뿐만 아니라 비대칭적인 교역의 증대를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높일 수 있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확실히 낙관하기 어렵다. 지난달 26일 마무리된 이산가족 상봉마저도 정례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그래서 언젠가 다시 보자는 약속을 선뜻 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이산가족들이 흘린 눈물의 일부였을 것이다.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북의 무력도발은 남북관계 경색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며, 수시로 생기는 남북 갈등을 해결할 장치는 그 무엇도 필요한 때를 위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통일을 향한 공연하고 막연한 바람을 넘어 실질적인 방법의 문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사진: 유승의 기자 july2207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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