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학과 서이종 교수

연일 노후 대비가 비상이고 청년실업이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아우성이다. 중산층이 빚더미에 쌓여 각종 푸어(poor)가 유행하고 있다. 그래선가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노인들이나 신혼부부에게 선심 쓰듯 얼마를 준다거나 반값등록금 등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하지만 복지도 책임 있는 복지여야 한다. 써야할 곳만 제안하고 그 소요재정을 책임 있게 조달할 분명한 계획이 없는 선심 정책은 실효성이 없으며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더욱더 그런 선심 정책을 반복하고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 후안무치의 자세는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우리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포기하게 해서 ‘헬조선’ 하게 한다. 미국의 금리 인상의 쓰나미 앞에 가계뿐만 아니라 정부재정의 적자 규모가 위험 수준에 처한 현 국면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취약계층을 포함하여 많은 복지재정을 생각할 때 재정확충의 수단으로 세금을 꺼내든다. 불평등이 누증되는 현 국면에서 증세는 당연히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여당에서는 특정계층에 일방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반론한다. 그렇다면 기부를 활성화하는 정책은 어떤가? 부자들에게 강제적으로 부과할 수 없다면, 자발적으로 취약계층과 공동체 전체를 위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세액공제로 기부의 공제율을 낮추면서 기부조차 고사되고 있다. 현재 사회공동모금회의 기부금이 작년의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대학의 기부금 또한 반토막 나고 있다 한다. 여당이나 정부는 변동성이 많고 불안정한 기부보다 세금이 편한 모양이다. 야당 일각에서도 비슷하게 공동체의 형평성과 그 지속성을 위하여 정부가 나서야 하며 세금으로 징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에서 세금은 사회형평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재정조달 수단이었다. 하지만 세금은 강제적이기 때문에 부자증세는 조세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자신들의 성취 결과를 일방적으로 빼앗긴다는 피해의식에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성취 지향적 경쟁사회를 구축해 세계적으로 빠른 사회발전을 이뤘고 많은 부작용 또한 낳았다. 이러한 성취지향적 경쟁사회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합법적 비합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가능한 한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 오히려 당당한 사회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부자증세를 부분적으로 부자의 기부 활성화를 통해 실현하면 어떨까? 부자들에게 사회공동체의 책임의식을 고취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발휘하게 하자는 것이다. 세금으로 조성할 생태공원을, 교량을, 대학 컨퍼런스 홀을 기부자 누구누구의 이름을 적어주고 짓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부입학까지 주장하거나 모든 국가재정을 기부로 대체하자는 말은 아니다. 부자의 체면을 세워주고 기부를 늘려 사회 불평등 해결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기부의 활성화를 위해 40%까지 소득공제율을 높여주고 소득공제 한도액도 높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또 기부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유사기부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말이 기부이지 실제는 자신의 기업이나 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재단이 많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론 기부는 우리의 재산상속 문화의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나라 불평등은 지니계수 이상이다. 억만장자 대부분이 상속형일 정도로 가족주의적 상속제도가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주의적 재산상속은 계층을 고착화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청년실업과 턱없는 주택가격 등 어려운 경제여건에서도 부모의 재산상속은 중상층 자녀에게 경제적 안정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금수저’ ‘흙수저’ 논란에서 보듯 부의 정당성 논란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자녀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다. 재산상속은 중상층 자녀에게도 그들의 삶을 처음에는 높일 수 있지만 그 지속성은 떨어진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재산상속은 상속을 둘러싼 자녀 간 그리고 부모-자녀 간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 부모의 중환자실에서 자녀 간 상속 싸움이나 홀로 된 부모의 황혼 재혼을 거부하는 자녀 모두 비정상적이다. 자녀에 대한 교육 투자는 충분히 하되, 자녀에의 재산상속 비율을 줄이고 기부 등을 통해서 ‘반값등록금기금’ ‘청년고용증진기금’이나 ‘신혼부부 임대주택기금’ 등 청년세대를 위한 공동기금을 조성하면 어떨까? 그 효과도 불분명한 ‘불효자 방지법’을 만들기 전에 재산상속 문제 또한 여론화할 필요가 있다.

서이종 교수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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