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땅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현실에 뿌리내리는 그날까지
척박한 땅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현실에 뿌리내리는 그날까지
  • 김민주 기자
  • 승인 2015.11.01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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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노동개혁의 승자는 경영계가 된 듯하다. 지난 9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가 합의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에는 임금피크제 도입,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제정 등 재계의 숙원사업이 모두 담겼다. 이를 두고 민주노총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한국노총을 비판하고 나서는 등 노동계는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5대 노동 법안을 두고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결의한데다 대타협에 참여한 한국노총까지 반발하면서 노동개혁을 둘러싼 잡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태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집단이 있다.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다. 비정규직 입장에서는 정부 및 재계가 ‘정규직의 양보로 정규직․비정규직의 상생을 이루자’며 비정규직을 위한 노동개혁을 주창하는 것이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개혁안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와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제정’ 등의 조항은 비정규직에게 치명적이다. 정규직에게는 그나마 노동조합(노조)과 단체협약이라도 있지만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없는 비정규직은 고용여건이 더 열악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편 정작 비정규직이 염원했던 원․하청 상생과 사회안전망 관련 의제는 선언적 수준에 그쳤다. ‘동반성장의 기틀을 마련하자’ ‘노동기본권 사각지대를 해소하자’ ‘두터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자’는 등의 당위가 합의문을 채웠을 뿐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논의는 전혀 담기지 않았다. 왜 이들의 요구는 묻혀버린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노사정위 협의 과정에서 이들을 대변해줄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소장은 “이번 합의는 청년, 여성, 비정규직 등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배제한 상태에서 이뤄져 논의 결과의 사회적 인정이 어렵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논의과정에서 비정규직 목소리를 전달해야 할 비정규직 노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대학신문』은 비정규직 노조의 열악한 실태를 조명하고 이들의 조직화가 왜 어려운지 그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가.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든다고? 너, 해고! 

노조 가입률 1.4%. 비정규직 노조의 초라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조의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하다. 고용노동부가 전국 3만 1,663개의 표본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3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에 따르면 정규직의 노조가입률은 13.9%, 비정규직의 노조가입률은 1.4%다. 희망연대노조 박대성 대외협력국장은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던 10개 중 4~5개는 만들기도 전에 사측이 노동자를 불러서 회유하거나 해고를 미끼로 협박해 깨버리고, 만들어진 것들도 1년 이내에 2~3개가 사라진다”며 “겨우겨우 살아남아도 사측이 비정규직을 탄압하기가 쉽다 보니 사측과 단체교섭을 시도하거나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노조가 열악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고용불안을 꼽는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노조에 가입할 여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입한 이후에도 각종 불이익 때문에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동형태를 막론하고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일은 간단하다. 계약이 끝났다는 통보 하나면 된다. 처지가 이렇다 보니 노조에 가입하면 재계약을 안 해주겠다는 사용자의 협박은 비정규직에게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이병훈 교수(중앙대 사회학과)는 “고용에 일정하게 안정성이 있어야 노조가 자기가 가진 불만을 표출하는 제도화된 창구로 이용될 수 있다”며 “비정규직은 그 형태가 다양할지라도 공통적으로 고용이 불안하기 때문에 조직화하기도 어렵고, 한다 해도 유지하기 어려운 가장 치명적인 제약 요건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노조 가입을 이유로 비정규직이 해고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지난 5월 유리회사 아사히글라스의 사내하청업체 GTS는 ‘아사히사내하청노조’를 결성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 후 아사히글라스는 GTS에 돌연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GTS 소속 사내하청노동자 170여명은 순식간에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가 됐다. 사측이 밝힌 이유는 경영악화였지만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던 나머지 사내하청업체는 여전히 계약이 유지돼 노조 탄압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아사히글라스가 최저임금을 받으며 365일 3교대․주야맞교대로 근무하던 사내하청업체에 일방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은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서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알바노조에 가입했던 맥도날드의 한 시간제 노동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5월 그는 알바노조가 열었던 기자회견에서 맥도날드의 불법적인 고용실태를 고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측은 노동계약 만료를 이유로 그녀를 해고했다. 하지만 알바노조 박종만 기획팀장은 “맥도날드에서는 노동자가 큰 결격사유가 없으면 계약이 계속 갱신되는 게 관례”라며 “맥도날드의 해명과 달리 실제로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자리에서 그 노동자는 ‘일도 잘하고 성실하지만 노조 활동하는 게 불편하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사용자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심리를 이용해 노조를 분열시키기도 한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그 대표적인 예다. 현대차 사내하청노조의 불법파견 여부를 가리는 대법원 판결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8월, 현대차는 현대차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전주․아산지회에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줄 테니 소송을 취하하라, 이후 민형사상 소송은 제기하지 말라’는 조건을 걸고 8.18 합의안을 졸속 체결했다.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비정규직 노조 울산지회는 당시 합의에 참여하지 못한데다, 울산지회 소속 조합원이 특별채용을 신청하려면 노조를 탈퇴해야 한다는 악조건까지 추가됐다. 한 달 후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며 1,200여명의 노동자를 전원 정규직화하라’고 판결했을 때 정작 정규직으로 입사식을 가진 것은 8월 합의에 참여한 400여명뿐이었다. 비정규직 노조 울산지회는 “현대차가 정규직 특별고용이라는 미끼로 비정규직 노조를 크게 짓밟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러한 사례가 빈번하다 보니 많은 비정규직들은 노조에 가입하고 싶어도 노조 가입으로 인한 불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전국서비스노조연맹 이성종 정책실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불안에 따른 리스크 때문에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돼 있어 노동운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렵다”고 씁쓸해했다.

 

나. 메마른 현실에 단비는커녕 

외적 탄압만 문제는 아니다. 노동현장의 활동가들은 노조 내부에서 노조 하기 힘든 이유를 찾기도 한다. 먼저 노조의 혜택을 모르는 비정규직이 많아 가입률이 낮다는 점이 꼽힌다. 박종만 팀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해 권리를 보장받은 경험이 없어 어떤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를 몰라 필요성을 잘 못 느끼거나 심지어 본인들을 보호해줄 노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박대성 국장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가 만났던 한 케이블 협력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주당 50시간씩(근로기준법상 상한으로 정해진 노동시간은 40시간) 휴일도 4대 보험도 없이 일하면서도 “보험료도 내기 싫고 더 일해서 돈을 더 받고 싶다”며 정규직화를 끝까지 거부했던 노동자도 있었다. 박대성 국장은 “딱 한 달만 노조 조합원으로 일해보라고 설득했었는데 한 달이 지나자 그 노동자 스스로 이게 좋은 거였다면서 노조에 가입하더라”라고 회상했다.

그런데 노조 가입자 증가가 곧바로 노조 부흥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노조가 다루는 문제들이 단순히 사측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연결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더 큰 난점이 남아있다. 임금․노동시간․정년 등 노동조건의 개선을 노사교섭의 핵심 쟁점으로 하는 정규직 노조와 달리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사항은 정규직화로 귀결된다. 예컨대 지금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원청이 전체 사내하청노동자를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노동자도 사실상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기 때문에 유급휴일․퇴직금․4대 보험 등 근로기준법을 적용해 달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노진기 상임자문위원은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는 경제구조의 문제가 얽혀 있어 경제구조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운동이) 나아가야 하는데 사실 정말 힘든 싸움이다”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노조가 힘든 싸움 끝에 정규직화를 관철시켜도 전체 노동구조를 바꾸기가 어렵다 보니 정규직화의 혜택은 일부 조합원에게만 돌아간다. 문제는 비정규직으로 회사에 남아있는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은 바뀐 것이 없는데도, 노조 운동을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빠져나가면서 비정규직 노조도 자연스레 힘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설사 비정규직 노조가 붕괴돼버린다 하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연대가 가능하다면 상황은 다소 낫다. 정규직 노조가 남은 비정규직을 노조 안으로 데려와 계속 사용자에 대항한다면 회사 내 전체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더 나아가 전원 정규직화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갈등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두 노동형태의 이해관계가 달라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진기 상임자문위원은 “비정규직이 목소리를 크게 내면 정규직이 손해 볼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노조가 본인들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통신노조는 이와 관련한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통신노조는 노조규약과 단체협약에 ‘한국통신에 재직하는 자 가운데 사용자를 제외한 전원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고 명시해왔지만 정작 계약직 노동자가 한국통신노조 에 가입하려고 하자 가입을 거부했다. 당시 한국통신노조는 △정규직과 계약직은 계약 내용, 근무조건 등 처지가 다르다는 점 △단체협약에 노동자 간의 세세한 차이를 기술하기 어렵다는 점 △노조 규약 상 계약직이 해고될 경우 노조가 부담을 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근로복지공단노조의 상황도 비슷했다. 비정규직들이 근로복지공단에 가입을 시도했지만 노조는 대의원대회에서 다루겠다고만 답변하고 실질적으로 노조 가입을 인정하지 않았다.

안팎으로 궁지에 몰려있는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삭발․단식 투쟁은 물론 인권위 옥상 고공농성(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사내 크레인 고공농성(대우 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 여의도 광고판 고공농성(풀무원 화물운송 노동자), 서울역 고공농성(KTX 여승무원) 등의 형태도 자주 나타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과격한 투쟁방식이 조합원들을 지치게 해 오히려 비정규직 노조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조돈문 교수(가톨릭대 사회학과)는 학술논문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승패와 조직력 변화」에서 “극단적인 투쟁 방식을 시도할수록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조를 이탈해 조직력이 약화되고, 조합원이 적어질수록 더 과격한 투쟁방식을 도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다. 어디에서나 희망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 상황들을 볼 때, 비정규직 노조가 사측의 탄압을 넘어 제대로 자리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당장 하루하루 먹고살기에도 바쁜 비정규직에게 이렇게 위태로운 노조 운동에 참여하라고 외치는 것은 어쩌면 사치처럼 들리지는 않을까. 하지만 노조운동에 참여한 당사자들은 오히려 비정규직의 상황이 힘들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조가 꼭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열악한 현실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택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선택지가 노조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고 가정해보자. 앞서 알바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한 맥도날드는 최소한의 노동3권도 지키지 않아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당시 노동위원회는 이에 대해 부당해고가 아닌 계약만료라고 결정 내렸다. 맥도날드의 계약만료 통보가 법적으로는 합법이기 때문이다. 박종만 팀장은 “노동위원회의 근로감독관이 기본적으로 사용자 편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이들을 찾아가도 뾰족한 답을 못 얻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법대로 해결하자니 비정규직이 사측을 상대로 몇 년씩 걸리는 법정싸움을 할 여력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교섭할 힘을 준다. 민주노총 우문숙 비정규전략국장은 “비정규직의 핵심적인 문제인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개선하기 위해선 노조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며 “개인의 권리에서 시작해 기업 내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노조뿐”이라고 당부했다.

비정규직 노조의 역량이 부족해 노동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해주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노조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비정규직의 삶에 유일한 위안과 힘이 되기 때문이다. 전국철도노조 KTX 승무지부 정미정 총무국장은 “노조가 없었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나 혼자 억울해하고 눈물 흘렸을 텐데, 노조가 생겨서 하소연할 수 있었고 부당한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며 “철도노조 덕분에 코레일을 상대로 투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희망연대노조 소속 씨앤앰 노동자들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이 첫 파업을 진행할 당시 생계가 끊겨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가 많았다. 생긴 지 얼마 안 돼 재원이 부족한 때 노조 지도부가 솔선수범했다. 지도부가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 주위 노조가 대출받아 준 5,000만원 등을 모아 투쟁하는 노동자의 생계비로 빌려줬다. 파업 때 생계는 노조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에서였다. 박대성 국장은 “억압받고 힘든 비정규직이 기댈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게 노조의 존재 이유”라며 “조합원들을 만나보니 노조의 존재 자체가 이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되더라”라고 흐뭇해 했다.

 

라. 노동조합의 꽃을 피우기 위해  

그렇다면 비정규직 노조가 안팎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어떻게 조직화할 수 있을까. 그간 대한민국 양대 노총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온 것은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비정규 전략 조직화 사업을 펼쳐온 민주노총은 청소노동자․건설일용직노동자․비정규교수․학습지교사 등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노동운동 주변부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는데 그쳐있고 조직 규모도 작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노조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힘을 주기 위해선 전체 노동자의 연대를 바탕으로 노조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행 구조로는 노조가입에 대한 노동자의 두려움을 막아줄 수도, 개별 노조의 힘으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기에도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산별교섭권을 달라는 민주노총의 해법=민주노총은 그 방법으로 산별교섭권과 단체교섭효력확장제도를 제시한다. 산업별노조(산별노조)는 소속 회사에 상관 없이 동일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하나로 조직한 형태로 기업별 노조보다 교섭권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현행 노조법상 교섭권이 기업별 노조에만 주어지다 보니 형태는 산별노조일지 라도 실질적인 교섭은 기업별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은 산별노조에 교섭권을 주자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우문숙 국장은 여러 대학과의 집단교섭에 성공한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대학청소노동자들의 사례를 들어 산별교섭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는 학교별이 아닌 그 지역 내의 4개 대학교와 집단교섭을 진행했다. 청소노동자는 원청인 대학에 사내하청 형태로 고용됐기 때문에 기존에 대학은 청소노동자의 처우개선 문제를 외면해 왔지만, 집단교섭이 성공해 이후 노조 소속 전체 860명의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6,200원의 시급을 받게 됐다. 우문숙 국장은 “대학청소노동자 사례에서 보듯이 산별교섭권이 주어지면 산별노조가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데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단체교섭효력확장제도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단체교섭 결과에 따른 혜택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돼 노조에 가입하지 않아도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노조 가입으로 불이익을 얻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교섭의 혜택이 전체 노동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산별노조는 조합원 수가 적어도 노동자의 큰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우문숙 국장은 “(산별교섭권은)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채택한 제도”라며 “프랑스는 정작 가입된 조합원 수가 적지만 강성한 산별노조가 교섭에 나서 전체 노동자의 권익을 신장시킨다”고 평가했다. 이어 “비정규직의 노동권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서 보호될 것”이라는 기대를 덧붙였다.

그러나 산별노조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이병훈 교수는 “지금의 산별노조만으로는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을 다 포괄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케이블방송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산별노조에 가입하고자 이곳저곳 문을 두드렸지만 속하는 업종이 없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지역노조도 필요해=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의 노조운동으로 지역노조운동주의가 제시된다. 이는 기업이나 산업을 중심으로 특정 사업장에 소속된 조직을 유지하기보다 비정규직 상태가 유지되는 사람들끼리 지역을 중심으로 연대해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방법이다. 이병훈 교수는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면서 일자리를 계속 옮겨도 그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은 한 지역을 중심으로 일터만 이동하는 만큼 지역 차원에서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효과가 클 것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하위서비스노동자조직인 SEIU(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는 대표적인 지역노조다. SEIU는 주 차원에서 그 지역 전체의 건물청소부나 돌봄노동자 등을 포괄한 노조다. SEIU는 노동공간이 뿔뿔이 흩어져 있고 노동자들 상호 간의 교류가 전혀 없었던 데다 인종적․언어적․사회적으로 소수자였던 서비스노동자들을 조직해 이들의 처우를 개선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지역일반노조가 등장하는 움직임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산별노조에 가입하지 못했던 케이블방송 업계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2009년 말 지역일반노조 형태의 ‘희망연대노조’를 결성했다. 희망연대노조는 서울 경인지역을 중심으로 씨앤앰․티브로드․CJ헬로비젼․다산콜센터 등 소속 업체도, 업종도, 고용형태도 다른 노동자들을 포괄한다. 희망연대노조는 임금단체협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해당 지역의 노동권 향상을 위해 지역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지역 아동센터와 함께 아동․청소년의 노동교육을 돕거나, 노조 사무실을 카페처럼 꾸며 노조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을 고취시키고 노동상담을 진행하는 것은 그 예다.

물론 산별노조와 지역노조운동주의가 양자 택일의 개념인 것은 아니다. 우문숙 국장은 “지역 공동체 속에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모델이, 일할 때는 나와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끼리 연대하는 모델이 모두 필요하다”며 “지역노조와 산별노조를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현재 비정규직 노조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들은 아직 걸음마를 떼고 있는 단계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연하게 노조에 가입하고 사용자에 당당히 맞서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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