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에 대학가가 연일 들썩이고 있다. SNS에는 국정화에 반대하는 글들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학교 곳곳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학생들의 대자보가 붙었고 교수들의 성명이 잇따랐다. 정부는 지난달 12일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뒤 일사천리로 행정예고 했고, 대통령까지 시정연설에서 국정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교육현장 내외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면서 파장은 학계를 넘어 시민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올바른 역사? 학계 반응은 싸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엄중히 요구하며 국정 역사 교과서 제작 불참을 촉구한다!”

지난달 30일 본교 문화관에서 역사 학회 28개가 공동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역사학계 최대 행사인 전국역사학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이들 학회는 성명을 통해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여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려 하고 매카시즘 공세를 강화할수록 역사학계와 국민은 역사 해석과 교육을 독점하고 사유화하려는 정치권력의 의도를 더욱 분명히 깨달아 가고 있다”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갈등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이 아니라 다양성 대 획일성, 역사적 진실 대 권력적 탐욕 간의 대결”이라고 선언했다. 송상헌 교수(공주교대 초등사회과교육과)는 “교과서에는 하나의 훌륭한 역사 담론을 반영할 수 없고, 한 가지를 반영한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훌륭한 것이라는 기준이 없다”며 “그런 점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 지난달 30일 전국역사학대회가 열린 문화관 앞에서 본교 대학원생들과 강사들이 찻집을 열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한편 문화관 밖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정부의 국정화 정책을 지지하는 보수단체들이 성명 발표를 저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며 항의했기 때문이다.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어버이연합, 고엽제전우회 등은 정문에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학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대회 1부가 끝난 직후 손피켓을 들고 대회장 안으로 난입해 물의를 빚었다.

앞서 각 대학의 역사 전공 교수들은 역사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을 잇달아 발표하며 국정화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토론회’(국정화 토론회)에서 이신철 연구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는 “국정화가 가지는 가장 큰 약점은 국가의 행위, 특히 국가 폭력을 비판적으로 기술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경향은 역사학이 그동안 도달한 다양한 역사적 관점이나 피해자의 목소리 등을 역사에 기록하기 어려워지게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정화가 학문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터져 나온다.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송상헌 교수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역사의 메타서사를 하나로 정하는 것”이라며 “(국정화될 경우) 역사연구도 하나의 메타서사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이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면의 연구를 질식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 지난달 12일 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밝힌 이후, 학내 곳곳에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붙었다.

역사학도들의 국정화 반대 성명과 대자보 게시도 잇따랐다. 정부의 국정화 발표 직후 전국의 사학과 및 역사교육학과 학생들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 규탄 및 철회를 요구하는 역사학도 긴급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각 학교에서는 각종 기발한 방법으로 국정화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가 게시돼 학생들의 걸음을 붙잡았다. 나치독일 교육강령을 패러디한 대자보를 쓴 정한솔 씨(서양사학과·15)는 “친일이고 독재고 떠나서 기본적으로 하나의 역사관을 강요한다는 것 자체가 파시스트적인 사고”라며 “국정화를 진행하려는 정부의 발언과 이들이 내놓는 정책, 제도에 의해 우리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한다”고 정부를 향해 일갈했다. 북한의 대남 선전 전단 형식을 빌려 대자보를 쓴 박성근 씨(연세대 교육학과·13)는 “현재 박근혜 정권에서 하는 행동이 북한에서 하는 행위와 똑같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형식을 빌리게 됐다”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학생들의 사고를 획일화시키는 문제가 있고 다양성이 중시되는 민주사회에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국정화 반대하며 촛불 든 시민들
 

“역사왜곡 친일미화 국정교과서 중단하라!”

“민생외면 국민무시 박근혜 정권은 각성하라!”

지난달 27일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는 시민단체들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주최한 국정화 저지 문화제 ‘국정화 말고, 국정을 부탁해’(국정화 문화제)가 열렸다.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시민이 ‘국정교과서 결사반대’라고 적힌 손피켓과 촛불을 들고 동참했다. 발언을 맡은 여의도고등학교 교사 임선일 씨는 “검인정제는 역사 교사들이 수업 내용을 재구성해 다양하고 풍부한 역사교육을 진행할 수 있게 했다”며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되돌려 획일적인 내용만을 가르치라고 하는 것은 역사 교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학생들이 역사적인 내용을 통해 현실을 비판적으로 통찰하는 능력을 갖추기는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앞으로 자녀들이 받게 될 역사교육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학부모 대표로 참석한 서대문학부모네트워크 ‘꿈틀’ 최명선 대표는 “아이들이 정체성을 가지려면 아이들 스스로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지금 정부는 자신들이 단일한 획일적인 교과서를 쓸 테니 이것만 믿고 생각도 하지 말고 묻지도 말라고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치원생 아이와 이를 지켜보던 양은정 씨(주부·35)는 “역사교육이 우리 아이들의 창의성이나 가치관 형성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어떤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지는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공감을 표하면서 “정치권에서 이렇게 역사 교과서 문제를 교육이 아니라 정쟁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의 피해는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올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된다”고 밝혔다.

시민들 역시 역사 교과서가 정부의 추진에 따라 국정화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을 우려했다. 김용빈 씨(직장인·32)는 “국정화될 경우 군사 쿠데타와 친일 쪽에 대한 기술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고 걱정을 내비쳤다. 오진호 씨(고등학생·18)도 “국정화한다는 것은 역사를 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거부하는 것이고 이는 학생들의 창의적ㆍ비판적 사고를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민단체들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국제적 추세에 역행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정화 토론회에서 참여연대 정현백 공동대표는 “유엔의 권고와 세계적 추세를 반영해 이미 대다수 나라에서 역사 교과서는 국정제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교과서 국정화는 학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이러한 세계적 추세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유엔은 재작년 “하나의 역사 교과서를 채택할 경우 정치적으로 악용될 위험이 크다”는 내용을 담은 역사교육에 대한 권고를 채택한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베트남 정부에 국정교과서 폐지를 공식 권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교육의 문제, 정치권력에 좌우되지 말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역사 교과서 논쟁이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됐다는 점이다. 정부와 여야 모두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겨냥하기 위한 전략으로 국정교과서 문제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화 문화제에서 임선일 씨는 “정부와 여당은 주체사상 등을 운운하며 이념과 정쟁의 도구로 한국사 교과서를 이용하고 있다”며 “현장의 많은 역사 교사들은 정부와 여당이 국정화 문제를 교육이 아닌 정치 문제로 바꿔 여론을 호도하며 강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평식 교수(역사교육과)는 “현 교과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철저히 학자들에 의해 검토돼야 할 사안”이라며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해 정치인은 손을 떼고 역사학자와 역사교육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역사 교과서에 정치권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도록 독립된 역사 교과서 집필 기구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권 성향에 따라 교육제도가 수시로 변하는 우리 사회의 특성상 독립기구가 더욱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태웅 교수(역사교육과)는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중립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교과위원회를 만들어 그 안에서의 논의를 통해 교과서 심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법률적 차원에서도 교과서 문제가 정권에 따라 뒤바뀌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정화 확정고시는 오는 5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최하영 기자 choihy@snu.kr

사진(위): 유승의 기자 july2207s@snu.kr

사진(가운데): 김명주 기자 diane1114@snu.kr

사진(아래):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