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 편]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 대중문화웹진 ize 임수연 기자

당신의 ‘리즈 시절’은 언제였나요. MBC <그녀는 예뻤다>는 시청자들 각자가 자신이 가장 빛났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극 중 혜진(황정음)의 ‘리즈 시절’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당시의 그는 학교에서 가장 예쁜데다가 똑똑해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외톨이였던 성준(박서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줄 정도로 정도 많았다. 하지만 리즈 시절이 있다는 것은 그 시기를 제외한 모든 순간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목이 ‘예쁘다’가 아닌 ‘예뻤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 혜진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이른바 ‘역변’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홍조가 나타나면서 악성 피부 트러블로 고생한 것은 물론, 집은 경제적으로 힘들어졌다. 결국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 이른바 스펙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응시하는 곳마다 낙방하는 취업준비생이 됐다.

 

잘 나가던 과거 vs 별 볼 일 없는 현재

 

혜진이 처음부터 자신이 ‘역변’했다는 사실을 치명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혜진의 삶은 너무 바빴다. 혜진이 과거와 현재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어린 시절 외국으로 나가면서 헤어진 첫사랑 성준과 오랜만에 만나기로 약속한 날 이후부터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잘 열지 못해서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던 성준은 ‘정변’의 청소년기를 거쳐 외모부터 능력까지 근사한 어른으로 자랐다. 통통했던 과거와 달리 몰라볼 정도로 외모까지 준수해진 성준은 재회하던 날 혜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그 순간 자신이 예전과 달리 ‘예쁘지 않은’ 모습임을 자각하게 된 혜진은 단짝 친구 하리(고준희)에게 자신인 척 대신 연기를 해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어찌어찌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임시방편을 내세웠지만 그 뒤에는 더욱 좋지 않은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리는 성준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고, 성준과 혜진이「모스트」 잡지 부편집장과 인턴사원의 관계로 다시 엮이게 된 것이다.

드라마에서 성준은 혜진과 앞으로 로맨스를 펼칠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리즈 시절’에 견주어 별 볼 일 없는 현재를 각성케 하는 존재다. 때문에 성준이 눈앞에 있는 인턴사원이 자신의 첫사랑이라는 것을 늦지 않게 알아차린다거나 하는 기적은 초반부터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별명이 ‘지랄준’인 성준이 혜진에게 더욱 ‘지랄 맞게’ 구는 모습이 한동안 등장한다. 일처리를 시원찮게 한다는 이유로 거의 폭언까지 들으며 혼이 나고, 구멍 난 양말을 애써 감추는 등 비참한 상황이 이어진다. 이것은 디테일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왕년에 스타였지만 지금은 한물간 연예인까지 가지 않더라도 소포모어 징크스를 걱정하는 2집 가수도 유사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사소해보이지만 각자에게는 사소하지 않은 이유들도 더러 있다. 예전만큼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않아서, 예전처럼 밤을 새는 일이 거뜬하지 않아서, 피부가 예전 같지 않아서, ‘대시’ 하는 사람이 예전보다 줄어서 현재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유독 혜진이 만나는 좌절의 순간에 현실의 그림자가 강하게 느껴진다면, 그만큼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요소 또한 많아질 수밖에 없다.

 

과거가 주는 부담에서 벗어나기

 

혜진과 성준의 연애가 비로소 진전되는 시점은 필연적으로 열패감의 극복과 맞물린다. 혜진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도 성준은 그에게 첫사랑의 흔적을 발견하는 동시에 조금씩 호감을 느끼지만, 쌍방 로맨스가 진행되는 것은 혜진이 성준, 즉 자신의 과거를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킨 이후이기 때문이다. 혜진은 더 이상 성준을 피해 도망다니지 않는다. 패션지라는 생소한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일에 욕심도 생겼다. 외모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화장으로 그의 주근깨와 홍조를 가린다. 성준이 혜진의 바뀐 외모에 크게 반응하는 예상 가능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혜진의 외모가 바뀌었다는 단편적인 사실보다는 그의 태도가 변했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완벽하게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한 후 과거를 끌어안은 것에 가깝다. 그저 지금 가능한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다.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외모에 투자하지 못했던 돈을 비로소 쓸 수 있게 되면서 혜진은 악성 곱슬머리는 피는데 40만원을 투자할 수 있었고, 백화점에서 옷도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예전과 똑같은 외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현대 의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이미 망가진 피부가 도자기처럼 매끈하게 바뀌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다만 혜진은 매일 아침 홍조와 주근깨를 가리기 위해 공들여 화장을 하고, 곱슬머리를 펴기 위해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관리를 받을 뿐이다. 시술을 자주 받기 위해서는 평소 머릿결에도 그만큼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노력한다고 해서 출신 대학이 바뀌거나 드라마틱한 인생 대역전극이 펼쳐지지는 않는다. 대신 패션잡지 인턴사원이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패션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갈 뿐이다. 이것은 드라마틱하게 혜진이 과거와 똑같은 위치를 탈환하는 전개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태도 면에서도 성숙하다.

 

과거를 긍정해야 가능한 판타지

 

혜진이 과거를 마주하게 만드는 또 다른 동력은 과거의 기억을 공유해야만 가능한 판타지, 즉 첫사랑이란 소재다. 이것은 첫사랑 판타지가 불가능한 하리의 상황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성준 앞에서 혜진인 척 연기를 할 때 성준의 가정사를 미처 알지 못해 말실수를 할 만큼 하리는 그의 과거에 대해 잘 모르고, 담벼락과 관련된 과거의 추억을 나눌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신호등 초록불이 켜졌을 때 “가시요!”를 외치는 버릇을 갖고 있는 혜진은 성준의 과거 기억을 소환하며 그를 ‘심쿵’ 하게 만들지만 하리는 그러하지 못한다. 반면 혜진과 성준에게 과거사의 공유는 첫사랑 판타지가 성립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 심지어 과거의 추억은 캐릭터들이 로맨스의 결실을 맺는 진주인공이 되느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요건이기까지 하다.

혜진에게 지독한 열패감을 안겨주는 성준 대신 ‘역변’한 혜진에게 예쁘다고 말하며 관심을 보이는 「모스트」의 에디터 신혁(최시원)은 일견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주인공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혁은 철저하게 혜진의 현재만을 보고 판단을 내린다. 혜진이 모스트의 인턴사원이 되고 나서야 시작된 관계이기 때문에 신혁은 혜진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일이 없고, 혜진은 그의 앞에서 과거에서 기인한 어떤 불안감도 느끼지 않는다. 혜진이 신혁을 좋은 동료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마침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될 동화 속 주인공 커플이라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예뻤다>에서 로맨스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넘어서야 할 위기는 과거와 현실의 괴리에서 시작된 거짓말 그리고 근간에 깔려 있는 좌절감이다. 다시 말해, 신혁은 혜진과 갈등을 빚으며 극복해나가야 할 ‘난관’이 없고, 따라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성준과 혜진이 과거를 함께 했기 때문에 난관에 봉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두 사람은 연애물의 진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예뻤다>가 초반에 과거를 열등감의 원인, 떨쳐내야 할 짐처럼 묘사했다면 전개가 이어질수록 과거는 오히려 현재라는 결과물을 구성하는 재료가 된다. <그녀는 예뻤다>에서 혜진과 하리의 자매애가 혜진과 성준의 로맨스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절된 적 없이 과거로부터의 연장선상 위에 있다. 극 중 혜진과 하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친구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묘사되는데, 그만큼 하리는 혜진의 리즈 시절을 비롯해 별 볼일 없던 시절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과거와 현재는 분리된 것이 아니며 지금과 다르다고 해서 옛날로 돌아가기 위해 혹은 돌아가지 못해 안달할 필요는 없다. 그저 과거에서부터 조금씩 증축된 현재를 긍정할 뿐이다.

<그녀는 예뻤다>, 과거형이 던지는 질문

 

<그녀는 예뻤다>라는 제목의 시제는 과거형이다. 태생부터 과거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이 드라마는 과거 때문에 생긴 열패감 혹은 과거를 공유하지 못한 데서 오는 한계를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예뻤다>의 사각관계는 과거가 있기에 가능한 판타지를 보여주면서 과거에서 기인한 열패감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느덧 마지막 회를 앞두고 있는 <그녀는 예뻤다>는 그래서 그들은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암시하는 미래형으로 끝맺음할 가능성이 높지만, 방송이 끝난 후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는 것은 각자의 과거다. 우리는 지금보다 소위 ‘잘 나가던’ 과거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비슷한가. 그리고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내가 된 방식에 대해서 말이다.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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