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대 공대는 ‘좋은 대학을 넘어 탁월한 대학으로’라는 제목의 백서를 발간했다. 여기서 서울대 공대는 지금까지 짧은 시간 많은 성과를 이뤘지만 장래를 위해서는 현 상황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말한다. 국내 최고로 평가되는 서울대 공대의 위기의식은 비단 공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BK21 사업 이후 지난 16년 동안 서울대는 연구중심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많은 정책적, 구조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공대가 느꼈던 위기의식처럼 아직 서울대가 연구중심대학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98년 발간된 ‘서울대 장기발전구상’ 보고서와 2002년 교육인적자원부가 발간한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 및 성과관리 방향」 보고서는 공통적으로 연구중심대학을 성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대학원 중심의 구조로의 변화와 연구 인력에 대한 지원 체계, 연구기반시설과 장비의 확충, 융복합연구가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BK21사업 전체 예산의 절반을 지원받는 등 주요한 수혜자였던 서울대는 자연대와 공대 등 이공계를 중심으로 대학원 및 박사후과정의 연구 인력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고, 수준 높은 연구 성과의 초석이 되는 연구기반시설 또한 대거 확충했다. 이와 함께 서울대는 대학원을 위주로 하는 인적 구조개편을 실시해 연구역량을 강화하려 했고 연구비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산학협력을 추구했다. 『대학신문』에서는 공대를 비롯한 이공계 각 단과대들이 2000년을 기점으로 연구중심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과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대학원 연구 인력 확대 시도와 절반의 성공

연구중심대학은 학문후속세대인 대학원생을 안정적으로 육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를 목표로 하는 대학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서울대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학부 교육의 질을 높여 우수한 인적자원을 확보하고 대학원 중심의 대학으로 변화하기 위해 일련의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본부는 학부 과정의 정원을 줄이고 대학원 과정의 정원을 늘리는 조치를 취했다. 교무과 김희범 행정관은 “당시 서울대는 연구중심대학으로 체제를 개편하려는 방법 중 하나로 학부 정원을 대폭 감축하고, 대학원 정원을 늘리는 구조개혁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BK21 사업이 시작되기 직전 1999년의 학부 신입학생 정원은 4,910명이었지만, 2003년에는 3,900명, 그리고 1차 BK21사업이 종료된 시점인 2005년에는 3,260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반면, 대학원 정원은 BK21 사업 기간인 7년 동안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대학원 석사과정의 경우 1995년 입학정원이 2,591명에 불과했지만 1999년 3175명으로 급증했고 2005년에는 3,807명으로 늘어났다. 박사과정 정원도 마찬가지로 1995년 986명에서 1999년 1,120명, 2005년에는 1,260명으로 증가했다. 서울대는 1999년 발간된 백서를 통해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에 따라 향후 수년간 학부의 비중은 줄어들고 대학원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대학원의 규모는 2006년을 기점으로 다시 축소됐다. 2007년이 되자 석사과정 정원은 3,214명으로 급감했고, 박사과정의 정원도 980여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원을 늘린 만큼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사람이 늘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원 규모를 확대하려던 본부는 대학원 정원을 다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대학원으로 진학해야 할 연구 인력들이 해외 대학으로 많이 유출되는 ‘대학원 공동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연구 인력의 해외유출과 관련해 일부 학자들은 각 학과별 특성에 따라 연구 인력의 유학이 오히려 전체적으로 연구역량을 강화한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본부는 서울대가 세계적 수준의 연구 활동을 견인하고 국가적 인재를 공급하는 기지로 위상을 차지한다며 공식적으로 연구 인력의 해외 유출이 연구역량 강화에 장애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013년 발간된 서울대 미래연구위원회의 보고서는 “서울대가 우수한 학부생을 배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대학원에 제대로 유치하지 못하고 해외로 연구 인력이 유출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는 향후 서울대의 연구역량 제고에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 인력의 해외 유출에는 연구 인력이 특정 분야에서 좋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학과와 연구 환경이 좋은 곳으로 유학을 떠나는 등의 여러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김형준 씨(생명과학부·12)는 “세계적으로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교수님은 일부 교수에 국한돼 있고 실험실이 전문연구원 위주로 돼 있어 석박사생이 주도적으로 연구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며 해외로 유학하려는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연구 인력의 해외 유출은 단기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외부 사업에 연구비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현재 서울대 연구비 5,440억원 중 법인 예산은 150억원으로 전체 연구비의 97.2%인 5,290억원을 정부와 민간 사업에서 획득하고 있다.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 A씨는 “소속 연구소에서 외부 사업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어 학비를 마련하는 데 재정적으로 큰 문제가 없지만, 프로젝트와 학위 논문 준비를 병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결국 담당 교수가 프로젝트의 주제에 맞추어 학위 논문 주제를 변경할 것을 권유해 학위논문 주제를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변에서도 이런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며 “관심 분야와 주제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프로젝트에만 내몰려 박사과정은 외국에서 유학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석사 과정으로 진입할 때부터 석박사통합 과정생을 선발하는 전면적인 제도 개선 이후 현재는 석박사통합 과정생을 포함한 박사과정생이 2,400여명, 석사과정생이 2,000여명에 이른다. 박사과정 진입생만 1,250여명으로 2005년 수준을 다시 회복됐다. 그러나 여전히 연구 인력의 해외 유출은 계속되고 있으며 교무과는 연구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체계적인 방안과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 연구기반시설의 확충

서울대의 연구기반시설은 지속적으로 개선돼 왔다. 자연대 이현숙 기획부학장(생명과학부)은 “내가 공부를 할 당시에는 해외의 대학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연구기반시설이 열악했다”며 “그러나 현재는 이 격차가 많이 줄었고 오히려 나은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1985년 설립된 반도체공동연구원을 필두로 1990년대 많은 연구시설들이 캠퍼스 내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현숙 교수는 “자연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과 같은 코어 시설들이 보유하고 있는 연구 장비들은 해외 유수의 대학보다 오히려 낫다”며 “현재 자연대가 보유하고 있는 차세대 염기서열분석기, 단백질분석기, 초고속현미경 등은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모든 학과와 연구소가 이와 같이 좋은 연구기반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기반시설과 장비의 문제로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창희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현재 공대의 연구기반시설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며 “실례로 주요 선진국의 연구중심대학과 카이스트에 나노공정을 할 수 있는 연구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반도체공동연구원은 추가적인 시설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마이크로급 연구만 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연구기반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간접연구비를 본부로부터 가장 많이 받아 사정이 가장 좋은 자연대의 경우에도 학과와 실험실에 따라 편차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생물과학부 석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B씨는 “연구시설과 장비들이 국내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실험실의 연구기반시설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며 “생명과학부의 경우 500동과 유전공학연구소에 여러 실험실이 분포하고 있는데 실험실의 위치와 연구 분야 그리고 담당 교수에 따라 열악한 환경과 연구장비를 갖고 연구하고 있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연구정책과에 따르면 서울대 전체의 연구비는 5,440억원이다. 이 중 연구 인력에 대한 인건비 등 해당 연구에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직접비를 제외하고 연구시설과 장비를 구입할 수 있는 간접비는 775억원 수준이다. 이 중에서도 일부 금액만 연구 시설과 장비를 구입하는 등 연구기반을 확충하는 데 쓰이고 있다. 연구처는 “현재 연구기반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간접연구비 775억원의 일부를 연구기반시설을 늘리는 데 사용하고 있다”며 “산학협력단뿐만 아니라 법인회계 정부 출연금에서도 실험실습기자재 예산 100억원과 2억원 이상의 연구장비 획득을 위한 연구장비 예산으로 102억원 정도를 매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연구기반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예산은 충분치 못하다. 공대 백서 자료에 의하면 서울대 공대의 경우 연구비 총액은 2014년 기준 1,659억원 수준으로 미국의 MIT 공대 4,385억, 스탠포드 3,971억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교수당 연구비 또한 4억 9천 2백만원으로 MIT 공대 11억4,500만원, 스탠포드 15억2,700만원의 1/2과 1/3 수준이다. 더구나 공대 연구비는 일부 간접연구비만 연구시설에 확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용도가 자유로운 미국 대학에 비해 연구기반시설을 확충할 여력이 부족하다. 이에 대해 이창희 교수는 “과거 1차 BK21 사업 때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연구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연구비를 지원하던 것과는 달리 현재는 서울대가 카이스트와 유니스트 등 국내의 다른 연구중심대학과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처도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노현 연구처장은 “연구기반시설 확충에 사용되는 예산은 사실상 한계가 있고 이를 위해 예산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학협력을 강화해 연구비의 총액을 늘려 간접비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 성과를 산업에 적용해 창출되는 이익을 다시 연구시설 및 장비에 투자해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박노현 연구처장은 “산학협력단의 원래 역할은 연구결과를 산업화하는 것이지만 아직까지 산학협력단이 연구비 지원과 관리를 주된 업무로 하고 있다”며 “앞으로 산학협력단의 역할을 확대해 연구결과를 산업화하는 등 산학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며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3. 연구지원정책의 방향성

지난 7월 공대는 과거 24년간의 연구 성과와 향후 발전 방향에 관한 내용을 담은 ‘서울대학교 공대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는 지금까지 단기적인 연구 성과를 내는 데 만족했던 것을 반성하고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세계적인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연구체계를 개편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대 백서는 “단기적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현행 연구지원방식이 문어발식 연구와 교수들의 위험회피 성향을 조장한다”며 “일본의 경우 교수들에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과제비가 있어 획기적인 연구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대 백서 발간 당시 연구부학장이었던 이창희 교수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연구 성과들의 질적인 성장을 목표로 해야한다”며 “각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동일 주제를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지원 체계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3년짜리 단기적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교수를 평가하고 연구비를 지원했던 공대의 기존의 연구지원 방식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공대는 △연구 인력에 대해 안정적으로 인건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인건비 풀링제를 실시하고 그 기간을 5년으로 늘렸으며 △신임교수를 행정업무로부터 배제시켜 연구에 집중하도록 했고 △2016년부터 교수 3명을 선발해 10년 동안 연구비를 지원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자연대는 일찌감치 지난 2000년부터 미국의 킥업 펀딩(Kick-up Funding)과 비슷한 성격의 신임교수정착금을 지원했다. 이현숙 교수는 “해외 유수의 대학과 비교해서 지원금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대가 제공하는 스타트업 펀딩은 신임 교수가 연구기반을 다지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자연대는 외부에서 사업을 따지 못해 각 학과 별로 소외되는 실험실을 대상으로도 지원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 교수는 “능력은 있지만 외부에서 사업을 따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모험적인 연구를 하는 실험실을 장기적으로 지원하려는 체계를 준비 중”이라며 “이를 통해 창의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내부적으로 기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본부 또한 단기적인 성과만으로는 연구자를 평가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새로운 연구지원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연구정책과는 “질적 평가를 통해서 일괄적인 지원정책을 수행하기 어렵고 각 학문분야에 따라 평가기준이 달라 지금까지 교육부 등 외부 지원은 정량적인 연구 성과를 기준으로 이뤄져 왔다”며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장기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자 자체적으로 여러 사업들을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013년부터 연구지원과는 좋은 연구 성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았고 외부로부터 프로젝트를 따지 못해 연구에 어려움을 겪는 연구자를 선정해 최대 3년 동안 매년 1억원 이내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유망선도연구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또 좋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는 저명한 연구자를 선발해 5년 동안 매해 4억원을 지원하는 ‘창의선도연구자사업’도 2012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연구지원과 권경란 담당관은 “현재 단기적 연구 성과를 통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한 중장기적인 연구지원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초기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장기적인 관점의 연구지원 정책은 충분치 못한 실정이다. 외부의 사업 등 단기적인 연구 성과와는 관계없이 장기적인 지원에 사용되는 재원은 전체 연구비 총액 5,440억원에서 법인 예산으로 지원되는 150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5,290억원은 단기적인 과제별로 정부와 민간 등 연구비를 수주하며 단기적인 연구비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이마저도 연구재료비 등 기타 용도로 함께 사용돼 모두 신진연구인력 강화에 쓰이는 것은 아니다. 박노현 연구처장도 이에 대해 “교수가 외부에서 사업을 따러 다니며, 외부로부터의 연구과제가 없어지면 연구자들이 더 이상 지원금을 받기 힘든 현행 연구지원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자연과학 등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의 주체가 다양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이정재 명예교수(조경지역시스템공학과)는 “미국의 유수의 대학들은 임용될 당시 대학에 제출한 최초의 연구계획서에 기반해 킥업 펀딩을 지원받는다”며 “초기 충분히 지원한 후 성과에 따라서 지원금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석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한민용 씨는 “미국은 기초과학에 대해 정부와 대학은 물론 구글이나 아이비엠 등 민간기업으로부터의 장기적인 연구비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 관심 연구 분야에서 지원금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며 차이점을 설명했다.

 

4. 융복합 연구의 현황과 전망

학제 간의 벽을 허물어 연구중심대학으로 한 발짝 다가서려는 노력도 있었다. 본부는 융복합 연구에 기초가 되는 기본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지난 2000년을 기점으로 공대와 자연대의 많은 학과들을 통폐합했다. 이에 따라 생물학과와 분자생물학과, 미생물학과는 생명과학부로 통합됐고,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환경과학부와 컴퓨터공학부, 기계항공공학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등이 신설됐다. 자연대 이현숙 교수는 “기존 식물학과와 동물학과, 미생물학과에서 따로 배우던 분자생물학이 생명과학부 내부에서 하나로 통합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는 명목상의 통합이 아니라 기존의 전통적인 분야에서 탈피해 새로운 분야를 받아들일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까지도 학제 구분의 틀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어 구조개편이 충분치 못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정재 명예교수는 “학제 개편이 이뤄졌지만 아직까지도 각 학과 학부과정의 심화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현행 대학원 구조에서는 근본적으로 창의적인 융복합 연구가 이뤄지기 힘들다”며 “대학원의 본래 취지에 맞도록 학제의 구분 없이 자유로운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구조를 새로 만드는 것이 연구중심대학의 본질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교과과정뿐만 아니라 융복합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 또한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의학부 교수인 박노현 연구처장은 “의생명 연구와 관련해 좋은 성과를 내는 대학들은 보통 관련 학과들과 병원이 인접해 있어 공동연구를 수행하기 수월하지만 서울대는 병원과 의대만 캠퍼스에서 따로 떨어져 있어 의생명공학과 관련한 융복합 연구를 수행하는 데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며 “공대, 자연대, 약대 및 관련 연구소들과 함께 생명공학과 관련한 융합 연구를 더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에 의생명공학과 관련해 융합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의학연구혁신센터(Center for Medical Innovation, CMI)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CMI에서는 서울대 병원은 물론 여러 관련 학부및 연구소 그리고 외부의 민간기업이 공동으로 의학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박노현 연구처장은 “얼마 전부터 관련 학제들 간의 융복합 연구에 대한 인식이 활성화돼서 공대, 자연대, 약대와의 교류와 협력, 공동 컨퍼런스가 많아지고 의대 출신이 자연대 연구 인력으로 임용되는 등 융복합 연구가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본부가 주도하는 융복합 연구 지원사업도 있다. 연구지원과는 해마다 16억5,000만원 규모로 연구집담회에서 연구기획, 그리고 실제 연구과제로 이어지는 융복합연구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다만 아직 그 규모는 융복합연구를 충분히 지원하기에 충분하기 못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연구지원과 권경란 담당관은 “아직까지 융복합연구지원사업의 규모는 크지 않다”며 “사업에 신청하는 연구팀은 많지만 재정 여건 상 그 중 일부를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1987년 장기발전계획에 등장한 종합연구대학의 이상은 연구중심대학을 향한 다양한 노력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이다. BK21 사업 이후 십수 년에 달하는 기간에 서울대는 연구 인프라와 다양한 연구지원정책, 그리고 구조개편을 통해서 연구중심대학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공대가 백서에서 스스로를 반성한 것과 같이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신정철 교수(교육학과)는 “과거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서울대의 여러 시도들은 새로운 연구 풍토를 만들어 연구의 양적 성과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며 “이제는 시스템을 개선해 질적으로 도약할 시기”고 평가했다. 아직까지 모험적인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연구지원 정책은 사실상 마련돼 있지 못하며 융복합 연구도 시작 단계다. 연구 인력의 해외 유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대책도 교무과 차원에서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구중심대학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충분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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