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공공미술을 만난 적이 있다. 영화 「어벤져스」에 등장해 랜드마크로 떠오른 상암동 ‘월드 미러’와 ‘서울시민이 뽑아버리고 싶은 조형물’ 1위에서 ‘볼매’로 승격한 청계천 소라탑 ‘스프링’을 마주쳤다. 수요 집회가 없는 날에도 일본 대사관 앞에 꼿꼿이 앉은 ‘평화의 소녀상’이나 서울역 앞 삶에 지친 이들이 누울 자리로 쓰는 ‘자-넓이’는 공공의 삶에 바투 다가선 작품이다. 감천문화마을, 이화동 벽화거리는 지자체가 일군 공공미술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존재감을 빛내는 몇몇 공공미술 작품들과 달리 한국 공공미술 다수의 처지는 암담하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조각과 벽화가 방치된 채 ‘흉물’이라는 비야냥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정부의 건축물미술장식제도를 계기로 출발한 한국 공공미술은 제 갈길을 잃은 듯하다. 공공을 위한 미술의 바람직한 모습은 어떤 것이고 한국 공공미술은 왜 이름에 걸맞는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까. 한국 공공미술의 문제점을 짚고, 공공성의 다양한 의미를 찾는 예술가들의 노력을 살피고자 한다. 

 

공공의 쓸모를 찾는 한국 미술

‘공공을 위한 미술’인 공공미술은 전시장 안 작품의 권위를 허물고 공적인 장소에서 사회적 역할을 찾는 미술 장르다. 많은 예술가들은 미술이 태생부터 사회적 기능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고대 사회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벽화나 마을의 안팎을 구분해주는 장승이 그 예다. 예술의 영역이 사회와 분리된 것은 근현대에 와서다.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그림은 상류층만이 누렸고, 단상 위에 버티고 선 조각품은 일반 사람들의 삶에서 멀어졌다. 배영환 작가는 “공공미술은 축소, 왜곡됐던 미술의 사회 속 기능을 회복하는 장르”라고 설명했다.

▲ 서울대입구역 번화가에 놓인 한 미술장식품.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있고, 직기의 이름과 작품설명은 자라난
잡초에 가려져있다.

서구에선 공공미술이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회복한다’는 폭넓은 개념으로 쓰였지만 1980년대 한국에 와서는 건축물 앞 조형물만을 가리키는 용어로 축소됐다. 88올림픽을 앞둔 정부는 도시를 치장하기 위해 미술을 전시장 밖으로 끌어냈다. 건축물미술장식제도에 따라 건축주들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건축물을 지으려면 건물 앞에 장식품을 세워야했다. 일부 건축주는 예술성을 고려해 작품을 구입했지만 대다수는 값싼 조형물만을 찾았다. 어떻게든 작품을 팔기 위해 리베이트 명목으로 건축주와 브로커에게 일정 금액을 되돌려주는 불법을 벌이는 작가들도 생겨났다. 의미도 정체도 모를 조형물이 끝없이 생산되자 이 법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수많은 개정을 거쳐 2011년 건축주에게 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에 기금을 내는 선택지를 주는 ‘선택적 기금제’가 실시됐다.

2000년대 중반 ‘지역의 생활환경 개선’이 한국 공공미술의 새로운 임무로 떠올랐다. 구도심 낙후 문제가 골칫거리가 되던 당시 정부가 예술가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예술 사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2년간 전국 32개 낙후지역을 대상으로 한 ‘아트 인 시티’ 사업이 시작을 알렸고, ‘도시공원 예술로’ 사업은 예술공원 조성을 지원했다. ‘서울시 도시갤러리’ ‘안양 공공미술프로젝트’ ‘광주 폴리프로젝트’ 등 지자체가 자체 예산을 들인 사업도 진행됐다. ‘예술마을’이나 ‘예술거리’ ‘예술공원’ 등 예술 딱지가 붙은 지역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이쯤이다.

 

외길에 갇힌 조각·벽화 공화국

◇미화(美畵)는 미화(美化)가 아니건만=‘예술로 소외 지역의 생활환경을 개선한다’는 번듯한 목표를 세웠지만 실제 관 주도의 공공미술은 겉모습을 치장하기 바빴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을 목표로 열리는 서양의 사업과 달리 1년을 단위로 예산을 소진해야 하는 한국 예술 사업은 빠르고 단순한 방법을 택했다. TV 프로그램 <1박 2일>에 방영된 도안을 베낀 날개 그림 벽화, 외국의 한 작가가 고안한 눈속임 기법 벽화가 여기저기 넘쳐났다.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겠다면서 깊이 연구없이 지역이 배출한 인물이나 특산물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쉬운 방식을 택했다. 5억원을 들여 거대한 가마솥을 만든 뒤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한 충북 괴산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천대광 작가는 예술사업을 대하는 관의 태도가 “일정 기간 내에 하자 없이 사업을 끝내고 별다른 민원 없이 잘했다는 칭찬을 듣는 것이 전부”라고 비판했다.

예술보다 정책사업의 측면에서 접근한 탓에 한국 공공미술은 ‘보여주기’로는 안성맞춤인 조각과 벽화로 한정됐다. 몇몇 성공사례가 등장한 이후 전국의 지자체가 따라하기식 사업을 벌여 현재 국내 벽화마을은 100여 곳에 달한다. 2006년 시민단체 ‘푸른통영 21’은 동피랑 마을 곳곳의 담벼락을 벽화로 채웠고 재개발 계획 철회, 관광객 유치라는 성과를 냈다. 이후 고창, 성남, 천안 등의 지자체는 미대생이나 젊은 작가를 재능기부 명목으로 불러 비용을 낮춰가며 너도나도 벽화 마을을 조성했다.

관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실험을 가로막으면서 ‘공공미술=유형(有形)의 조형물’이라는 공식도 만들어냈다. 2014년 문예위 성과 자료집에 따르면 ‘와이즈 건축’ 측은 ‘도시공원 예술로’ 사업으로 지역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터 ‘사구둔벙’을 기획했으나 부산시의 요구로 유형의 조형물을 세워야 했다. 천대광 작가는 ‘연미산 자연미술공원’ 사업에서 연미산의 자연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해체가 가능한 일시적인 설치 작업을 제안했지만 주최 측은 영구적인 설치물을 요구했다. 그 밖에도 작품의 크기를 늘릴 것을 요구하는 경우, 대중을 위한 퍼포먼스를 제외시키는 경우, 다른 지역에서 이미 검증된 작품과 동일한 작품을 요구하는 경우 등 예술가가 관의 간섭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결국 예술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수십 년간 나름의 정체성을 키워온 마을들이 어울리지 않는 알록달록함으로 뒤덮이는 결과를 낳았다. 임옥상 작가는 “사회의 빈 구석, 틈새, 상처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예술인데 그것을 덮어버리고 예쁘게 색칠하려는 일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예술을 잃은 공공미술의 휴유증=예술계에서는 관의 사업을 ‘일자리’로 대하는 폐해가 발생했다. 공모로 진행되는 공공미술 사업을 노리고 기획안을 쓰러 다니는 작가들이 늘어났다. 공모를 통한 심사나 큐레이터를 통한 작가 선정 방식으로 진행되는 공식 사업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천대광 작가는 “몇몇 공원은 어떤 과정으로 세웠는지도 알 수 없는 굉장히 조악하고 그저 여러 색깔을 칠한 쇳덩어리들을 들여 놓았다”고 비판했다.

공공미술이라는 빛깔 좋은 이름과 달리 지역의 맥락을 담지 못한 작품은 마을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벽화 사업에 참여했던 송지은 작가는 “흰 벽이 더 좋다고 말하는 주민들을 마주해야 했고, 그려 놓은 것이 얼마 안 돼서 지워지는 일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1년 사업이 휩쓸듯 지나가고 나면 벽화와 조각은 빛이 바래고 먼지가 쌓여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생겼다. 서울시가 주민자치위원회인 ‘공원행복위원회’에 관리의 책임을 부여하는 등 사후 관리를 위한 제도가 마련됐지만 미봉책일 뿐이었다. 배영환 작가는 “공공미술 작품의 지속은 사회적 유용성이 결정하는 것이기에 시민들이 작품을 사랑하면 자연스레 작품을 지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의 목표와 달리 공공의 가치를 구현하지 못하자 몇몇 예술가들은 공공예술 사업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최초의 공공미술 사업 아트 인 시티를 이끈 주역이었던 김용익 작가는 “내가 소집당한 공공미술은 너무나 착하고 순응적이어서 현실의 모순을 가리는 역할을 했다”며 “그것들은 공무원이나 공무원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것일 뿐 진정한 공공을 위한 공공미술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예술가들, 지역의 삶과 밀착된 대안공간을 찾다

관 주도의 방식으로는 도시재생 미술의 가치를 실현하기 어렵게 되자 아예 공간을 임대해 공공미술을 기획하는 예술가 집단이 등장했다. 스스로를 ‘땜장이 예술가’로 소개하는 ‘스톤앤워터’의 박찬응 예술활동가는 2002년 안양 석수시장에서 빈 가게들을 작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메웠다. 재래시장뿐 아니라 다문화 지역, 재개발 예정지 등 곳곳의 낙후지역에 대안공간이라 불리는 예술가들의 공간이 파고들었다.

▲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가 원곡동 상점 거리에 레드카펫을 펼치고 패션쇼를 열었다.
주민들이 개성 넘치는 옷을 직접 디자인했다. 사진제공: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이들은 가시적이었던 관 주도 공공미술 사업을 비판하며 지역에 건실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속속들이 찾아냈다. 안산 다문화지역의 대안공간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의 참여 작가들은 2008년부터 식당과 찻집에서 지역민 동아리 축제를 열고, 주민들과 함께 옷을 만들어 길거리 패션쇼를 여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였다. 작년 말부터 서울 방학동에 둥지를 튼 ‘황새둥지 커뮤니티’는 마을에 넘쳐나는 양말목 폐기물의 올을 풀어 다시 짜는 직조물 ‘황새깃틀’을 고안했다. 지역민 워크샵을 열어 제작법을 가르치고 DIY 형태로 외부에 판매해 수익을 낸다. 리혁종 작가는 “벽화사업과 다른 방식으로 마을의 토대를 건드리고자 한다”고 황새둥지 커뮤니티의 목적을 말했다.

기획자가 곧 예술가인 민간 주도 프로젝트에서 비전문가 관료의 개입은 없다. 때문에 한국의 작가들은 관 주도의 주문 생산형 사업만이 아니라 민간 주도의 위계 없는 프로젝트에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송지은 대표는 “작가들끼리 언성을 높여가며 회의를 하는 과정도 이곳의 재미”라고 전했다.

▲ 황새둥지 커뮤니티의 주민활동가 성춘자 씨가 직접 만든 직조물.
마을 재생을 위해 예술가들이 만든 공간에 주민과 복지사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사진제공: 황새둥지 커뮤니티

대안공간의 발걸음이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을에 스며든 대안공간은 관 주도 낙후 지역 재생 사업과 달리 장소의 정체성을 살리고 오랜 기간 주민들과 소통했지만 자금 문제에 직면해있다. 임대 계약이 끝나면 공간을 근처로 이전해 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의 작가들이 열정만을 갖고 무보수로 창작을 하고 있다. 특정 지역의 상황에 집중하고 지역민의 눈높이에 맞추다보면 작가만의 개성을 잃어 수익을 낼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나온다.

 

정말 공공을 위한 미술이 될 수 있을까?

◇관료와 예술가가 조화를 이루는 공공미술의 장=관 주도 사업 내부에서도 기존 사업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안양시와 광주시는 2013년 문화예술위원회의 ‘공공미술 2.0’ 사업을 지원받아 이미 설치된 작품을 점검하고 시민들이 작품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다. 안양 공공미술프로젝트 심혜화 팀장은 “안양에 공공미술이 넘쳐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단이 필요한 때였다”며 “작품을 새로 설치하기보다 시민 교육 프로그램을 늘리고 아카이브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관의 예술 사업이 변화하는 데 대안공간은 좋은 모델이 돼왔다. 정부와 지자체는 ‘스톤앤워터’의 낙수시장 프로젝트를 본따 재래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사업을 진행해왔다. 통인시장 상인 소영례 씨는 “작가들이 와서 간판도 갈아주고 자식들을 홀로 키워낸 뿌리라고 해서 나무를 엎어둔 작품으로 전시회도 열어줬다”고 전했다. 정부의 ‘지역재생+예술’ 사업은 대안 공간과 비슷한 형태의 ‘지역 창작 거점’을 발굴해 주민을 참여시키는 내용으로 진행 중이다.

진정한 공공미술의 실현을 위해선 관과 예술가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에서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공장소에서 벌이는 공공미술의 특성상 관의 중재나 개입이 필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예술가는 현재의 지역재생 공공미술의 흐름에서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중요한 주체다”고 말한 리혁종 작가는 대안 공간의 프로젝트로 관과 민의 협력을 고민하는 ‘거버넌스 아트 연구소’를 마련했다.

더불어 예술가들은 관의 비전문 인력이 팔걸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관이 예산의 한계나 안전 문제 등 제약조건을 짚을 수는 있지만 간섭은 다른 것이라는 일침이다. 천대광 작가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에서 의료인의 전문성을 인정하듯, 관은 인간의 형이상학적 부분을 위한 연구도 예술가의 일로 남겨 놓아야 한다”며 예술가의 전문성에 대한 불간섭 원칙을 주장했다.

▲ 안민욱 작가의 실험적인 프로젝트 '아르스 쓸모없는 예술 사무소' 내부.  사진제공: 안민욱

◇'미술이 달성할 수 있는 공공성이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서=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놓인 조각 사이사이를 유영할 수 있는 독일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는 공공미술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주민들은 직접 영구 설치할 작품을 선별하고 예산 규모를 결정한다.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는 행정적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역할이 제한된다. 덕분에 10년마다 각국에서 초청되는 작가들은 일정기간 도시에 머물며 마음껏 공공미술 작업을 펼칠 수 있고, 주민들의 반응을 작업에 반영할 수도 있다.

조각 공원만이 아니라 여러 장르의 공공미술도 풍요로운 독일 공공미술의 성공 요인은 다양함이다. 천대광 작가는 “독일의 공공미술은 엄청나게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지며 최근에는 난해하기까지 하다”며 “일관된 시도가 있다면 과연 공공미술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배영환 작가 역시 “공공성보다 넓은 개념은 없다”며 “예술가는 작업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한테 노출돼 있고 가장 공적인 주제를 선별해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공공미술의 방향을 조정해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공론장의 역할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공공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비평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준기 평론가는 “작업실에 있던 작품이 뻥 튀겨져서 아무런 맥락도 없이 장소에 놓인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것은 비평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공공미술은 주민의 삶과 밀접한 것이기 때문에 주민단체가 작품에 대한 여러 의견을 공유할 필요도 있다.

기존의 관 주도형 사업은 한국 공공미술의 쓸모를 지역의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으로 제한하고 공공성에 대한 논의를 가로막으면서 갈 길을 잃은 바 있다. 한국의 공공미술도 미술의 공적 역할에 대한 다양한 답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 임옥상 작가의 조형물 '하늘을 담는 그릇.' 임옥상 작가는 그의 작품을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사진제공: 이학수

 

4명의 예술가가 말하는 공공미술

임옥상 작가의 공공미술은 한국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회화, 설치미술, 퍼포먼스, 미술교육 등을 오가는 그는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 공원에서 시민들이 올라가 전망대로 활용할 수 있는 그릇 형태의 조형물 ‘하늘을 담는 그릇’과 자전거 바퀴살에 시민들이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노란 리본을 매다는 ‘못다핀 꽃’을 시도했다.

“공공미술은 재미만 외치는 게 아냐. 공공 엔터테인먼트가 아니잖아. 예술은 비판이고 불화고 저항이고 투쟁이야. 본래 예술가란 권력을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아픈 사람에 연민을 많이 갖고 눈물이 많고,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는 존재잖아.”

배영환 작가는 정체된 시스템에 대안을 제공한다. 2009년 지자체마다 대규모 재원을 들여 도서관을 세우던 당시 ‘도서관 프로젝트 내일책방’은 도로 이동에 알맞은 중고 컨테이너를 도서관으로 탈바꿈해 농어촌이나 섬마을로 운반해 다닌다는 제안이었다. 현재 철원, 낙성대 등 전국 각지에 그가 만든 도서관이 놓였으며 그의 아이디어만을 빌려와 지은 이동식 도서관도 많다.

“공공미술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사회 시스템을 자극하는 거에요. 개별 예술가, 어떤 시민들이 어떤 모델을 뽑아내면 사회 시스템이 자극을 받고 따라 하는 거죠.”

건축가와 설치작가의 경계에 서있는 천대광 작가는 관객이 들어가 쉴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공공미술을 시도한다. 올해 송도에 설치된 ‘반딧불이 집’에서 시민들은 겉으로는 유선형의 거대한 배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고, 작품 안에서는 작은 조명들이 반딧불이 빛처럼 밝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공공미술은 길 옆에 놓인 예쁜 색의 긴 의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좋은 환경을 우리 스스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국민 개개인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안민욱 작가는 기존 공공미술의 역할에 대한 역발상을 즐긴다. 예술의 유용성 자체를 실험하기 시작한 그는 2014년 ‘아르스 쓸모없는 예술 사무소’를 만들어 사람들이 자연을 즐기러 오는 캠핑장에 에어컨 바람과 와이파이를 제공하고, 미술관 앞에서는 ‘쓸모가 생길 것을 우려해’ 엉성한 영어 학습실을 운영했다.

“저는 착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청개구리죠. 시키는 건 안 하는 게 더 재미가 있어요. 공공장소에 예술, 좋다 이거에요. 그런데 가만 보면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이 예술을 마주쳤을 때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고,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