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시인 박소란 인터뷰

시가 다시 “서정”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시대, 고달픈 사회의 이야기들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시대. 그 시간 속에서 슬픔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촌스럽고 투박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쓰는 시일 것이다. 박소란 또한 그런 시를 쓰는 시인이다. 자신의 슬픔이 오롯이 담겨있는 그의 시 속 문장 하나하나마다 시인이 느끼는 통증이 전해진다. 그래서 그 슬픔은 더 짙고 깊다. 정훈교 시인이 “슬픔을 꾹꾹 눌러 쓴 것 같다”고 평한 것도 박소란 시인이 매일 삼켰던 눈물의 조각들을 해묵은 시로 다시 토해내는 작업을 반복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박소란 시인은 현재 야근에 치여 사는 라이프스타일 잡지의 에디터이자 주목받기 시작한 문인이다. 그는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어릴 적 글짓기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은 후 국문과에 갈 것을 의심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동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그는 2년 동안은 현실에 치여 작은 시사잡지의 기자 생활을 했다. 그는 “너무 사는 게 헛헛하잖아요. 직장을 오가면서 내 삶이 끝나나 하다가 시라도 하나 내 것으로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며 본격적으로 시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이야기했다.

2009년 문학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그는 올해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을 발표했다. 등단 후 6년 만에 나온 시집으로 지난 8월 신동엽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소란 시인은 처음보다 “내밀해지고 더 잘 울게 된 것 같다”고 조심스레 자평했다.

▲ 박소란 시인은 저녁 산책을 좋아한다. 그는 “밤에 사람이 없는 동네를 걷고 나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에너지가 생겨요”라고 말했다. “좀 평온해진달까. 가지런해지는
점이 시를 쓸 때도 도움이 많이 돼요.”

슬픔, 그 청승맞은 촌스러움에 대해

그는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을 “울기 위해 쓴 시집”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시 하나하나에 슬픔이 묻어나온다. 추운 겨울 저녁 서울의 좁고 쓸쓸한 골목들, 좁고 빈방에서 혼자 울고 있는 사람, 박소란의 시를 읽으면 이런 이미지들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그는 ‘임대딱지가 붙은 웨딩타운’(「아현동 블루스」)을 거닐다 ‘주름으로 얽히고설킨 탑골공원 구석구석에서’(「우연의 완성」) 숨어있는 아픔들과 만난다. 그 아픔들은 ‘밤에 몰래 사생한 유령처럼’(「베개」) 나타나 ‘삼키고 또 삼켜도 질겨’(「배가 고파요」) 쉽게 가시질 않는다.

박소란 시인을 그토록 아프고 슬프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동엽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시인의 슬픔을 “사회적 약자와 시대의 아픔”이라고, 출판사는 “도시적 삶의 불우한 일상”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박소란 시인은 “뭔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에요. 저뿐만 아니라 시인들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어떤 용기를 주거나 도움이 되기 위해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지극히 자기 감정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있고 주변에 흔한 슬픔을 이야기하지만 그 슬픔은 온전히 자신의 것, 박소란의 슬픔이다. 「용산을 추억함」은 2009년 용산 참사를 주제로 삼아 쓴 시다. ‘폐수종의 애인을 사랑했네’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용산에서의 일을 자신의 슬픔으로 그려냈기에 본인에게 더욱 무겁다고 한다. 박소란 시인은 “2009년 당시 용산 근처의 직장에서 일하며 사건을 가까이서 지켜봤다”며 “용산에서의 일을 개인적인 감정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아직도 죄송스러운 맘이 남아있어요”라고 말했다.

릴케의 말과 같이 시가 감정이 아니라 경험에서 시작된다면 슬픔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그의 경험으로부터 길러온 것이기도 하다. 「겨울에 태어났어요」에서 그는 ‘거룩한 불행을 종교로 삼았다’고 고백한다. ‘머리통이 찌그러진’ 갓난애로 태어난 시인은 「울음의 방」에서는 ‘조금씩 꼬깃해져가는 표정을 가방 깊숙이 밀어넣고 가까스로’ 싸구려 자취방으로 울기 위해 달려간다. 슬펐던 유년 시절, 외로웠던 20대 시절 기억은 그의 시 세계 전체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죽은 엄마가 벗어두고 간 것인 듯, 목은 늘어지고 팔꿈치엔 잔뜩 보풀이 인 스웨터. 사람들은 잠시 수군거릴지도 모른다. 이따금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스웨터는 더없이 따뜻해.

-『심장에 가까운 말』, 시인의 말 중에서

어머니는 박소란 시인의 슬픔 그리고 작품 세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다. 시인은 ‘삼양동 시절 내내 삼계탕 집에 인부로 지낸 어머니’(「배가 고파요」)를 떠올린다. 또 대학생 시절 떠나보낸 ‘밤낮 부레끓는 숨과 다투던 폐암 말기의 어머니’(「체념을 위하여」)를 추억한다. 그는 “특히 요즘은 시에서 가족 얘기하는 건 또 촌스러운 일이에요. 엄마, 아빠가 나와버리면 너무 뻔한 시가 돼버리니까”라면서도 “어쨌든 내 시집이니까, 그냥 나한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 그걸 빼고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촌스러워 보일 수 있다. 허나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오히려 우리에게 익숙한 ‘촌스러운’ 언어로 그려지기에 우리의 통점을 절실하게 찔러온다. 무엇보다 그 촌스러움으로 ‘우리’가 아닌 ‘나’의 슬픔을 파고 들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우리의 슬픔으로 느껴진다. 사회적이고 보편적인 평범한 슬픔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인식해 파고드는 것이 그의 시가 독자에게 건네는 강렬한 목소리라고 볼 수 있다. 「장(葬)」에서 시인은 ‘누군가의 벗은 몸을 마주할 때면 멍에 가장 먼저 닿는다’고 말한다. 자기 뼛속까지 아파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발견하고 매만질 수 있듯이, 시인은 자신의 슬픔을 향해 뒷걸음치지 않고 우직하게 슬퍼하며 나아가기에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기꺼이 체념하기 위해 살았다

박소란 시인은 그 슬픔 속에서 함부로 희망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의 시는 오히려 슬픈 감정을 밑바닥까지 드러내며 고통은 역설적으로 살아있다는 증거가 된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우리가 어디 조그만 데 베이면 하루 종일 그 베인 데만 생각이 나잖아요, 신경 쓰이고”라며 “아픈 순간이 어떻게 보면 가장 생생하고 살아있는 순간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더 슬퍼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여기서 박소란 시인이 ‘병들고 말았어’가 아니라 ‘병들어버리고 말겠어’라는 식의 적극적인 체념을 말하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슬픔은 ‘다만 습관’(「약국은 벌써 문을 닫았고」)이었고, 시인은 슬픔을 거부하지 않은 채 ‘애지중지 길러볼 생각’(「병을 얻다」)에 잠겼다.

희망과 야합한적 없었다 결단코

늘 한발 앞서 오던 체념만이 오랜 밥이고 약이었음을

(중략)

체념하며 산 것이 아니라 체념하기 위해 살았다 어쩌면

- 「체념을 위하여」 중에서

삶도 마찬가지다. 박소란 시인에게 삶은 오로지 견딜만하다고 덤덤히 말하는 것이다. 그는 “삶의 가치나 의미라는 말이 무거워서 그런지 저한테는 허상 같이 느껴지는 것도 있어요”라며 “그냥 사는 거 아닌가 싶어서, 하루하루 잘 버티고 잘 견디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체념의 삶 속에서도 박소란 시인은 희망이라고 부르기엔 아주 소소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바라본다. 그 무언가는 십원짜리 동전처럼 작고 보잘 것 없다. 「참 따뜻한 주머니」에서 십원짜리 동전은 그것으로 아무것도 살 수 없는 하찮은 존재다. 차가운 바닥에 내팽겨져 있는 동전은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을 차가운 바닥에서 들어 올려 따뜻한 주머니에 넣어줄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순정이라는 말이 여러 의미가 있어서 의리일 수도, 신념을 지킨다는 뜻일 수도, 맹목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깊이가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이라고 덧붙였다. 체념의 한복판에서 이제는 볼 수 없는 순정이 있는 사람을 시인은 촌스럽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한닢의 십원짜리를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출 사람

허름한 전구를 만지작거리는 것처럼 조심스레 눈동자를 밝혀 들고

값싼 화장이 뭉개진 작고 동그란 얼굴을 넌지시 들여다볼 사람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겠지 나는

- 「참 따뜻한 주머니」 중에서

▲ 「주소」에서 시인의 집은 항상 꼭대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롭고 슬픈 곳이다.

시는 무력하다. 그렇지만…

물론 시가 슬픔을 노래한다고 지나간 사랑을 돌아오게 할 수도, 아픈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시는 힘이 없다. 하지만 박소란 시인은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다. 현실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마음을 찾는 것이 시라고 그는 믿는다. 이해력은 좋지만 이해심이 부족한 사회에서 나의 슬픔을 돌아보고 체념하는 것만으로도 시를 통해 현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소란 시인도 힘든 20대 시절 장정일, 김중식 시인의 시를 즐겨 읽으며 마음과 느낌의 부재를 돌이켜 볼 수 있었다. 그는 “그분들의 시에는 제도권 바깥에서 반항하는, 청춘의 코드가 있잖아요”라며 “문장을 읽을 때 쿡 찌르는 그런 칼 같은 생생한 정신을 가지고 시를 쓰셨구나, 그래서 그 시를 읽어보면 마음이 편하고 용기가 나고 좋았어요”라고 전했다. 그럼 박소란 시인의 칼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분들의 시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면도칼일 수 있다”면서 “유약해 보이지만 가까이 왔을 때 찌를 것 같은 선득함이 있는 칼이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노래는 구원이 아니어라

영원이 아니어라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라

다만 흉터였으니

어설픈 흉터를 후벼대는 무딘 칼이었으니

- 「노래는 아무것도」 중에서

그의 시집을 시작하는 첫 번째 시 「노래는 아무것도」에도 칼이 등장한다. 눈물에 녹쓸어 무뎌진 시인의 칼은 아무것도 아닌 우리의 삶과 흉터를 후벼댄다. 이 시에서 박소란 시인의 칼이 날카로운 칼처럼 흉터를 찌르고 들어오지 않고 후벼대는 것은 그것이 어설프게라도 우리의 슬픔을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슬픈 사람들에겐 더 이상 날카로운 칼이 아니라 무딘 칼이 필요하다. 너무 슬펐기에, 이제는 담담하게 슬픔을 추억하는 사람. 무딘 칼날로 다른 이의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 박소란 시인은 앞으로도 꿋꿋이 ‘부러진 칼끝으로 썩어가는 자루로’ 지금 우리의 슬픔을 가장 내밀하게 노래할 것이다.

사진(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사진(아래): 김명주 기자 diane111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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