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의 사회상을 풍자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나오는 정 주사는 “‘오늘’이 아득하기는 일반이로되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도 또 달라 ‘명일’이 없는 사람들” 중 하나다. 부모로부터 약간의 재산을 물려받고 박봉의 월급쟁이로 살아가다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도태돼 도박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약간의 밑천을 가지고 오늘날 주식거래소와 유사한 미곡거래소에서 시세차익을 노렸으나, 이마저도 다 날리고는 거래소 근처에서 그때그때 시세를 놓고 푼돈이나 걸곤 하는 ‘하바꾼’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오늘도 여섯 식구 끼니를 때울 돈을 날린 채 군산 선창가에 가서 죽어 버리자고 다짐을 하건만 차마 죽지는 못하고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이렇게 대책 없이 도박에 빠져드는 이유가 뭘까. 알코올이나 약물에 빠져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박 중독도 일종의 질병이 아닐까. 프로이트에 따르면, 도박중독증은 일종의 강박적 현상으로서 주체가 노름을 통해 그의 유아적 갈등과 문제를 병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다.「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살해」(1928)에서 제시된 프로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강한 파괴적 충동을 갖고 있었고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즐겼으며 노름에 집착했고 어린 소녀를 성폭행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갑작스런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 그의 신경증 증상은 실제로 18살 때 아버지가 살해당한 이후로 간질이라는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부친 살해 욕망에 대한 자기처벌의 의미를 갖는다. 또한 그는 끊임없이 노름을 했으며 완전히 돈을 다 잃기 전까지는 결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에게 도박은 자기처벌의 또 다른 방법이었다. 노름으로 재산을 모두 탕진했을 때 그는 다시 병적인 만족을 느낄 수 있었고 이러한 ‘처벌’을 겪고 난 후에야 집필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한편, 자본주의의 비합리성에 주목한 벤야민은 현대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인간 행동이 돈이라는 신에게 바치는 기도라고 주장했다. 겉으로는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듯 보이는 자본주의의 이면에 인간의 무지 혹은 종교성과 같은 비합리적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돈이라는 신에 대한 철저한 복종, 신의 은총을 기다리는 소망과 기대심리가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한다. 도박판에서 돈을 따고 잃을 때 느끼는 희열과 좌절감, 이 모든 결과를 자신의 운으로 돌릴 뿐 결코 그 판 자체를 탓하지 않는 경건함 등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메커니즘, 그것의 물신성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프로야구 구단 삼성라이온스의 주축 선수들이 마카오에서 불법 도박을 했다는 혐의가 보도돼 구설에 올랐다. 한편 카지노에 갈 여유가 없는 일반인들은 목돈을 마련해 집을 사거나 주식을 사고 ‘대박’을 꿈꾼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하루 수 조 달러의 금융자산이 뉴욕, 런던, 동경과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거래되고 있고 이들 중 85% 정도의 금액이 환차를 노려 이득을 취하는 투기자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현대 금융자본주의를 ‘카지노’ 자본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의를 일으킨 그 선수들과 우리와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카지노’에 갔을 뿐이고, 우리들은 ‘카지노’에 살고 있을 뿐. 영화 『타짜』에서 정마담은 이렇게 얘기한다. “화투판에서 사람 바보 만드는 게 뭔 줄 아세요? 바로...희망. 그 안에 인생이 있죠.”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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