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서 만들어진 스마트 워치, 프린터로 출력돼 나오는 전자 의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내게 필요한 기계들을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의 이웃과 친구가 직접 무엇인가를 만들고 그것들을 나누며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실현해나가는 이야기다. 바로 ‘메이커 운동’이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사람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쉽게 공유되는 정보들과, 집에서도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주는 3D 프린터를 비롯한 각종 장비들이 보급되면서 개인이 만들 수 있는 것의 범위는 어마어마하게 넓어졌다. 다양한 아이디어는 각자의 방법으로 실현되고 있었고, 2005년 미국의 잡지 「Make:」에서는 이들을 ‘메이커’라는 단어로 칭했다.

롱테일 이론의 창시자인 크리스 앤더슨은 새로운 제조업의 혁명은 제조업의 민주화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제 컴퓨터 데이터만 만들 수 있으면 누구나 제조활동을 할 수 있고, 그 데이터는 인터넷을 통해 공유된다. 제3차 산업혁명, 그것을 이끄는 메이커 운동의 현장을 『대학신문』이 취재했다.

 

창조를 공유하다 - 리틀보이사이언 유상준 대표

리틀보이사이언 유상준 대표는 자신의 고양이들을 위해 장난감을 만든 메이커다. 그는 고양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 낚싯대인 '캐치캣츠'를 만들어 이를 국내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 텀블벅에 올렸고 약 2,500만원의 후원을 받았다. 메이커 개인의 아이디어로 시작해 제품화를 거쳐 판매까지 성공한 모범케이스다.

유상준 대표는 메이커 운동의 핵심은 오픈소스와 같은 공유정신에 기반한다고 강조했다. 그 스스로도 캐치캣츠의 기반이 되는 아두이노(아래)를 인터넷에 공유된 정보를 통해 독학했기 때문이다. "오픈소스를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는 문화로 인해 메이커 운동이 확산될 수 있었어요. 이렇게 공유된 오픈소슬 각자에게 맞게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그를 통해 문화는 더욱 풍성해지고 새로운 가능성이 창출되는 거죠." 유성준 대표는 이후 캐치캣츠의 오픈소스도 공유할 계획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 사진제공: 리틀보이사이언

 

모두를 위한 작업실, 메이커 스페이스

- 팹랩 서울, 서울대 아이디어 팩토리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소스를 다운받는다고 해서 당장 내 머릿속의 아이템을 현실에 그대로 끄집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소스들을 현실에 구현시켜줄 수 있는 장비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바로 그런 메이커들을 위해 작업에 필요한 장소와 장비를 제공해주는 곳이다.

▲팹랩 서울의 메이킹 룸 전경

종로 세운상가에 위치한 팹랩 서울은 국내 메이커 문화의 요람으로, 국내에 메이커라는 단어가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인 2013년에 개소해 메이커 문화의 확산을 위해 힘쓰고 있다. 오픈소스의 공유는 단순히 프로그램이나 지식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물건에도 해당된다. 이곳의 각종 장비들에 다운받은 파일을 입력하면 똑같은 물건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 아두이노: 기기 제어용 기판. 컴퓨팅 하드웨어들 중 가장 접근성이 좋다. 물건의 머리 역할을 담당한다.
▲ 레이저 커터: 아크릴 등의 재료를 정밀하게 자를 수 있다.

물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할 수도 있다. 장비교육을 이수하면 누구나 각종 장비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몸을 만드는 장비뿐만 아니라, 작품의 머리가 되는 각종 컴퓨팅 하드웨어들도 워크샵을 통해 배울 수 있다.

▲3D 프린터: 물건의 기본적인 몸체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다.
 

▲CNC 라우터: 합판과 알루미늄 등의 단단한 제품을 자를 수 있다.

 그러나 종로까지 가기가 너무 멀다면 서울대에서도 메이커 스페이스를 만나볼 수가 있다. 내년 3월 초에 문을 열 예정인 서울대 아이디어 팩토리가 바로 그곳이다. 작년 말부터 학생들 차원에서 창의적인 물건들을 실제로 만들어볼 수 있는 장소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고, ‘서울대학생의 창의공간프로젝트’라는 학생 주도 프로젝트를 통해 그 내용이 구체화됐다. 그리고 올해 5월 공대 학장이 해동과학문화재단에 건의하여 공간을 확보했다. 이에 더해 올 하반기부터 시행된 산업부의 아이디어 팩토리 사업에서 각종 장비를 마련할 재원을 지원받아 만들어지는 서울대 아이디어 팩토리는 39동 지하 2층의 약 500평 남짓의 공간 전체를 개조해 만들어질 예정이다. 현재는 시범 운영 중이며 39동 지하의 시큐브에서 3D 프린터 워크숍을 진행 중이다.

▲서울대 아이디어 팩토리 전경 (겨울 방학 중 리모델링이 예정돼 있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학과를 막론하고 서울대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 팩토리에는 7개의 3D 프린터, 3D 스캐너, 비닐커터 등의 장비와 만들어진 작품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 스튜디오가 마련돼 있으며 교육 이수 후 무료로 사용이 가능하다. (홈페이지: www.ideafactory.snu.ac.kr)

 

차세대 메이커를 기르는 교육 -

대한민국과학창의축전, 과천고 프로그래밍 동아리'CODE'

메이커 운동은 소수 관심 있는 사람들만의 문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최근 교육계의 화두는 융합인재 양성을 위한 STEA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Mathematic), SW(Software) 교육이다. 초·중·고등학생들은 이제 단순히 교과서에 머무르지 않고 학교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배우며 실제로 무엇인가를 직접 만든다. SW 선도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코딩과 프로그래밍으로 간단한 기계 장치를 만드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메이커 문화가 일상이 되고 있다.

지난 7월 28일부터 8월 2일까지 개최되었던 ‘제19회 대한민국과학창의축전’에서는 고등학생들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만든 작품을 선보였다. 안양 부흥고 학생들은 아두이노를 이용해 버튼을 누르면 다른 종류의 주스를 섞을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 의정부 광동고 학생들은 미리 준비해온 아두이노 기반의 미니 전동차를 조립하는 방법을 어린이 관람객에게 가르쳐주기도 했다.

과천고의 1, 2학년 학생들은 정규수업에서 SW를 배운다. 그리고 조금 더 관심이 생기는 학생들은 프로그래밍 동아리 ‘CODE’에서 심화된 내용을 배우며 직접 무엇인가를 만들어볼 기회를 갖는다. 학교 수업만으로도 바쁘지만, 동아리 학생들은 정규 동아리 시간 외에도 일주일에 두번 정도 따로 모여 과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2학년 이현근 학생은 “원래 로봇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SW에 관해서는 아예 몰랐는데 알게 돼서 좋다”며 만족감을 보였다.

 

메이커 문화의 현장을 보다 - 메이커 페어 서울

▲ ▲메이커 페어에서 참가자들은 동시에 관람객이 된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메이커 페어는 메이커들이 서로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교류의 장이다.

기본적으로 메이커들은 개인적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다른 메이커와의 만남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신선한 자극이 된다. 메이커 페어는 이런 메이커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작품을 보며 교류하는 메이커들의 축제다. 물론 일반 관람객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난 10월 10~11일 과천과학관에서 열린 '메이커 페어 서울 2015'에는 국내 수많은 메이커들의 톡톡 튀는 작품들과 열정이 가득했다.

▲ ▲레이저로 과자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어린이 관람객이 관찰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기 너무나 쉬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메이커란 특별한 장비를 다루며 특별한 지식을 가진 이들이 아니다.

당신의 친구들, 이웃들, 그리고 어쩌면 바로 당신이 될 수도 있다.

▲ ▲3D 프린터로 만든 의수를 움직이며 웃고있는 '만드로용' 이상호 대표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