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연대하는 대학생 - ④ 골목상권

동네 만화방과 골목 한 귀퉁이에 있던 훈훈한 인심의 과일 장수. 골목으로 상징되는 우리네 문화는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옛 풍경이 됐다. 정부는 침체된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며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의무 휴업일 지정 등 각종 규제를 서둘러 도입했지만 정작 소상공인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시장 임대료와 권리금은 급격히 치솟는 데 반해 대형마트들은 오히려 보란 듯 골목 구석구석을 잠식하고 있다. 실제로 지역 상권을 들여다보면 온종일 마수걸이조차 못 하는 자영업자들이 상당수다. 셔터를 굳게 내린 채 ‘임시휴업’ ‘임대문의’ ‘떨이세일’ 등의 문구가 초라하게 흩날리는 가게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여기, 대학가 근처 골목상권을 살려보겠다고 나선 청년들이 있다.

 

성균관대 대학가를 달군 황금빛 엽전

지난해 가을 성균관대 축제를 뜨겁게 달군 것은 인기 걸그룹의 공연도, 주점이나 클럽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성균통보’였다. 서성열 씨(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13)는 대학 주변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학교 근처 가게에서만 쓸 수 있는 화폐, 이른바 성균통보를 축제 경품으로 제공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취지에 공감한 본부는 축제 곳곳에서 진행한 퀴즈쇼나 경연대회의 상품으로 성균통보를 내걸었다. 학생들은 엽전을 주변 상점 10곳에서 실제 화폐처럼 사용했고, 상인들은 본부에서 이를 즉시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올해 2월 경영대 학생회와 본부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과 새터에서 성균통보를 한 번 더 활용했다. 학생들이 행사에 필요한 술·안주 등을 인터넷이나 대형마트가 아니라 근처 전통시장에서 구매하도록 하기 위해 본부가 OT비와 새터비를 성균통보로 지급한 것이다. 지급된 성균통보는 성균관대 근방의 광장시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성균관대 경영대 최창현(경영학과·11) 학생회장은 “광장시장은 학교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데 정작 학생들의 발길은 뜸하고, 저조차도 전통시장에 간 적이 너무 옛날의 기억이라 신입생들에겐 더욱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며 “대학생들이 나서서 지역 상권을 살려보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올해도 성균통보를 활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상인들과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광장시장연합회 조병옥 사무국장은 “성균통보 덕에 학생들이 시장에 더 많이 와줘서 매출도 많이 오르고, 오랜만에 보는 엽전에 당시 시장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며 “내년에도 또 했으면 좋겠다”고 흐뭇해했다. 당시 성균통보를 들고 광장시장을 찾았던 배유빈 씨(성균관대 경영학과·14)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배유빈 씨는 “그때 찾아갔던 과일가게 주인분께서 2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엽전을 들고 찾아오니까 너무 좋아하시면서 좋은 과일 고르는 법도 가르쳐 주시고 과일도 직접 깎아 주셨던 기억이 난다”며 “친구들이랑 엽전을 처음 사용해 보니까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성균통보가 학생회에서 주도하는 사업이다 보니 1년의 학생회 임기가 끝나면 지속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실제로 올해는 봄·가을 축제에서 모두 성균통보를 사용하지 않았다. 또 경영대 학생회 차원에서 경영대 OT와 새터에 성균통보를 이용하는 것으로 형태가 바뀌어 이용대상도 전체 학생에서 경영대생으로 축소됐다. 최창현 회장은 “올해 축제 때는 미리 성균통보 활용 계획을 세워두지 않아 주위 상권이나 본부와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임기가 오는 11월로 끝나는데 내년 경영대 학생회에는 또 자치권이 있다 보니 성균통보 사용을 강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침체된 골목, 예술가의 숨결을 만나다

캠퍼스 밖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골목상권의 자생적인 활성화 사업을 펼치는 청년들도 있다. 각각 경북대 서문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내 마음은 콩밭’(콩밭)과 ‘000간’(공공공간)은 예술의 힘으로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 두 단체는 골목상권을 단순히 부흥시켜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골목상권이 자생적으로 번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사진2. 경북대 서문지역 주민이 콩밭이 주최한 '2014 서문골목축제'를 구경하다 사진을 찍고 있다.

콩밭은 주민들이 지역 문화를 주도적으로 형성하도록 돕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콩밭 서민정 대표는 “우리는 서문을 살리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여기 주민으로 다른 지역민과 함께 이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은 것”이라며 “지역민 스스로 만든 문화가 지역공동체를 자연스럽게 활성화시키고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공공공간도 마찬가지다. 공공공간은 봉제 산업에 종사하는 지역 주민들과 예술 전공 학생들이 함께 창신동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공공간 홍성재 대표는 “사회를 위한 사명감만으로 활동한다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는 관계가 만들어지는데 그 지속성에 의문이 있다”며 “창신동 주민들과 서로 모자란 점을 보완해가며 이 지역의 자생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골목상권 부활은 두 단체의 목표가 아니라 활동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물인 셈이다.

◇콩밭에서 하고 싶은 일 하자=콩밭이 경북대 서문에 자리 잡은 것은 2013년이다. 경북대 북문에 리모델링이 시행된 후 북문에는 대형 프랜차이즈를 앞세운 먹자골목이 들어왔다. 반면 서문 쪽은 버스 운행이 중단되면서 일대 상권이 급격히 침체됐다. 경북대를 졸업한 서민정 대표는 “대학생 때부터 대학가 근처에 대학생들이 우리만의 문화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뜻이 맞는 친구들이 도와줘 일단 사무실을 무작정 차렸다”며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콩밭에는 요리·악기·사진·영화 등 여러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이 모여 여러 활동을 한다. 콩밭에서 사람들은 커뮤니티를 형성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보거나(콩밭놀이터), 강사를 초빙해 워크숍을 진행하며 배우고 싶은 분야를 배우기도 하는(콩밭학교) 등 정기적으로 활동한다. 참가자들은 배운 내용을 활용해 실제로 경북대 서문에서 작업하는데 이는 서문의 새로운 변화로 이어진다.

콩밭 작업실에서 5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예쁘게 서 있는 스펀지밥도 콩밭학교 ‘참여벽화워크숍’의 결과물이다. 참여벽화워크숍 참가자들은 대구에서 활동하는 스트리트 아티스트 팔로 씨를 강사로 초빙해 페인트 칠하는 방법을 배운 후 낡아 떨어질 지경이었던 헌 옷 수거함을 탈바꿈시켰다. 콩밭 김경남 프로젝트매니저는 “스펀지밥이 특히 반응이 좋다”며 “헌 옷 수거함이 바뀐 이후 옷을 넣고 가시는 분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지나가던 주민 한 분은 “이래 예쁘게 해놓으면 훔쳐가면 우아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콩밭은 매년 지역민들과 함께 서문 골목축제를 개최한다. 콩밭놀이터와 콩밭학교의 참가자들이 축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다. 콩밭에서 악기를 배웠으면 축제에서 공연을 해보고, 요리를 배웠으면 음식을 팔거나 요리콘테스트를 진행해보고 사진을 찍었으면 전시회를 열어보는 식이다. 요리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모여 요리를 매개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자취chef’에서 활동하는 연두 씨 역시 축제에 참가했다. 그는 “어린 친구들도 부모님과 선뜻 손을 들어 참여해주고, 대학생분들도 재밌겠다며 나와서 진지하고 유쾌하게 임해주셨다”며 “혹시나 지역민 참여가 저조하지는 않을지 걱정했는데 경북대 서문 지역 주민들이 다들 어울릴 수 있어 행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축제를 구경하던 지역 상인들은 청년들이 기특하다며 음식을 만들어 가져다주거나 상점에서 쓸 수 있는 쿠폰을 자발적으로 발급해주기도 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라 메이드 인 창신동은 어떨까=공공공간의 가치관은 동대문에 옷을 공급하는 배후기지, 창신동에서 꽃폈다. 1970년대 여공들의 땀을 바탕으로 번성했던 창신동은 한때 소규모 공장이 3,000개를 넘었고 자연스레 노동자들의 상권이 번성했다. 하지만 봉제업의 쇠락과 함께 창신동은 침체의 길을 걸었고 이제는 낙후된 달동네로 남았다. 젊고 감각적인 디자인의 공공공간 작업실은 이 좁은 골목에 자리 잡았다.

▲ 사진3. 공공공간과 창신동 봉제공장 주민들이 함께 만든 제로 웨이스트 패션 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2011년에 공공공간을 처음 계획하던 젊은 청년들은 지역 자원을 활용해 만든 지역 브랜드가 지역민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창신동의 지역 아동센터에서 교육봉사를 하며 창신동을 처음 만났던 홍성재 대표는 이곳에 새로운 브랜드 ‘메이드 인 창신동’을 만들고 싶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창신동의 자원은 소규모 봉제공장에서 버리는 자투리 천이었다. 봉제하고 남아 길거리에 버려지는 자투리 천이 하루에만 22t에 달한다. 홍성재 대표는 “처리가 어려운 자투리 원단을 어떻게 해결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기존과 다른 재단 방식을 이용해 처음부터 자투리 천이 거의 나오지 않게 하는 제로웨이스트 기법을 개발했다”고 회상했다.

제로웨이스트 기법을 이용한 제품은 메이드 인 창신동의 시작이었다. 이를 통해 평소 30% 정도 남던 자투리 원단을 5% 이하로 줄인 셔츠가 만들어졌고 자투리 천이 아예 남지 않는 앞치마도 개발됐다. 공공공간의 디자이너들이 개발한 제로웨이스트 패션 제품의 제작은 창신동의 봉제사 주민이 맡는다. 판매가의 50%는 봉제사의 수익이 된다. 여타 해외 의류 브랜드의 경우 공임이 5~10%인 것에 비하면 최대 10배가량 높은 수치다. 낭비되는 재료비를 훨씬 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처음 제작한 수백 벌은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동났고 지금은 옷뿐만 아니라 쿠션이나 가방, 브로치 등 액세서리까지 제품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홍성재 대표는 “창신동 봉제공장과 협력하며 수평한 관계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개발하고, 그 수익이 실제로 창신동을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키는 데 사용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는데, 계획한 성과를 일부 거둔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각자가 서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골목상권 활성화 운동을 시작한 청년들은 이제 더 이상 외부인으로서 골목을 방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골목 일부에 자연스레 흡수돼 함께 발전하고 있다. 자취chef 팀에서 활동하는 슬리 씨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부담을 느끼기도 했고, 뭐든지 ‘나는 못해’ ‘안 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나도 할 수 있다’고 바뀌었다”며 “콩밭에 와서야 나를 알아가고 있다”고 행복해한다. 또 창신동의 꼬마들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공공공간에 놀러 와, 부모님에게 “나 공공공간이야, 더 놀다 갈래”라고 조르거나 홍 대표에게 “저도 커서 공공공간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과거의 골목들이 청년들과 함께 옛 활기를 되찾기를, 청년들은 그 속에서 저마다의 미래를 찾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①, ② 제공: 콩밭 김경남 프로젝트 매니저

사진③ 출처: 공공공간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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