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앞 음악가, '아이돌다움'을 다시 쓰다
모니터 앞 음악가, '아이돌다움'을 다시 쓰다
  • 고유리 기자
  • 승인 2015.11.15 0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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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지형도’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지도는 ‘이웃집 소녀’류의 에이핑크부터 ‘별난 누님’류의 EXID, ‘걸어다니는 디즈니랜드’ 속의 레드벨벳까지 걸그룹에 나름의 별칭을 붙여 분류해놓았다. 엉뚱하면서도 그럴듯한 이 지도를 만든 이는 아이돌 ‘빠돌이’ 미묘 씨(본명 문용민)다. 예술과 산업 사이 아이돌이라는 ‘미묘’한 영역에서 나름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글쟁이 겸 음악가가 아이돌을 만났을 때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이것저것 만지게 됐다”고 말하는 미묘 씨의 본업은 사실 컴퓨터를 매개로 다양한 소리가 담긴 곡을 만드는 일렉트로닉 음악가다. “기타도 피아노도 노래도 잘하지 못해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그는 어느 순간 일렉트로닉 음악의 감성에 빠지게 됐다. 그는 “대중은 일렉트로닉 음악을 흔히 딱딱하고 기계적인 것이라고 보는데 일렉트로닉 음악도 인간적임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재 그는 전자음악의 발상지인 프랑스에서 음악학을 전공하며 끝없이 음악을 공부하고 있다.

음악작업의 양분을 얻기 위해 시작한 음악 비평은 그에게 아이돌이란 새로운 지평을 열어줬다. 대중음악 웹진 「웨이브」 에 첫 음악 비평을 올렸던 그는 “다른 사람의 음악을 말로 정리하다 보면 내 음악을 생각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처음에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평론계에 발을 디딘 미묘 씨는 어느새 아이돌 음악으로 시선을 돌리게 됐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려 어느 정도 획일화될 수 있는 아이돌 시장에서 창의적인 시도들이 계속 생겨났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남성팬이 좋아할 만한 청순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기괴하고 난해한 분위기와 가사를 내세운 걸그룹 f(x)를 그 예로 들었다. f(x)에 대해 미묘 씨는 “새로운 컨셉트를 보여주기 위해서 자본과 미모라는 가장 아이돌적인 수단으로 흔한 아이돌의 이미지를 돌파했다는 점이 근사하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아이돌 담론을 담는 웹진 편집장
 

아이돌 음악에 빠져든 그는 자신이 느낀 아이돌 음악의 근사함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매체가 없다고 느꼈다. 아이돌 음악이 보여주는 완성도에 비해 아이돌을 다루는 일반적인 담론에선 언제나 ‘음악’이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 아이돌을 다루는 매체들은 그들의 외모나 의상만 강조하는 사진을 찍어댔고, 아이돌이 높은 수준의 가창력이나 퍼포먼스를 뽐냈을 땐 ‘실력파’나 ‘아이돌답지 않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정도였다. 기존 매체가 규정한 ‘아이돌다움’에 반대하는 미묘 씨는 “기존 음악 비평은 아이돌 현상을 관성적으로 비판하거나 무작정 좋은 말만 하는 등 아이돌 음악을 음악으로 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그는 아이돌 음악을 ‘음악으로’ 논하겠다는 포부로 웹진 「아이돌로지」를 만들었다. ‘음원분석 노동’ 코너는 그야말로 음악 이론가로서 노동력을 쏟는 꼭지다. 미묘 씨는 특별히 주목하는 음악을 골라 악보 한 줄을 발췌한 뒤 노란색, 파란색 줄을 그어가며 음악 선생님처럼 설명을 덧붙인다. 걸그룹 레드벨벳의 노래 ‘Ice Cream Cake’의 악보를 보며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변화하고, ‘특별해질’에서 ‘어울리는’으로 하강하던 멜로디 역시 ‘네 가슴 두근’에서 ‘내게 다가오겠죠’의 상승구조로 변한다”고 말해주는 식이다. 음악 이론을 지루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중간중간 뮤직비디오 영상과 이미지를 첨부하는 것은 덤이다. 그는 자신만큼이나 아이돌 음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모은 끝에 현재 아이돌 음악을 본격적으로 비평하는 유일한 웹진「아이돌로지」를 이끌게 됐다.

 

'음악 얘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미묘 씨는 이론적인 분석에서 그치지 않고 아이돌의 음악과 이미지가 변화하는 맥락까지 고려한 음악 비평으로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에이핑크의 앨범 리뷰에서 그는 “(소녀 컨셉에) 다소 식상함을 느끼던 사람들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며 “화사하기 그지없다”고 전작을 긍정적으로 평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타이틀곡 ‘LUV’의 많은 부분이 과거 타이틀곡의 동어반복임을 코드와 구조 분석을 통해 설명하며 “과자 봉지에 질소가 많이 들었다고 국민적 공분을 사는 시대에 에이큐브(소속사)와 신사동 호랭이(작곡가)는 팬과 대중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룹의 행보와 스타일을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날카로운 비평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미묘 씨는 아이돌이 산업의 산물인 만큼 시각을 넓혀 아이돌을 이루는 주변 요소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음악 비평 매체의 범위는 벗어나지만 연예 매체에서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운 소재들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아이돌 소속사와 팬덤 문화 등에 주목한다. ‘인디 아이돌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사무실, 숙소, 뮤직비디오 등 하나의 아이돌이 만들어지기까지 필요한 요소를 지적하고, 프랑스의 케이팝 상점을 찾아가 해외 팬의 성향을 묻기도 한다. 미묘 씨는 ‘뮤지카’라는 상점을 소개하며 “고객이 저연령층이다 보니 부모들이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케이팝의 모습과 내용을 친절하게 소개하는 일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며 케이팝 문화를 즐기는 특별한 모습을 보여줬다.

미묘 씨에게 아이돌은 우리 사회를 읽을 수 있는 창이다. 그는 보이그룹 샤이니의 ‘View’와 빅뱅의 ‘Loser’에서 ‘세상과 갈등하는 젊음’의 모습을 본다. “「아이돌로지」를 통해서 좋은 음악, 의미 있는 메시지와 행보를 꾀하는 아이돌들에게 우리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는 그를 응원해본다.

 

사진제공: 미묘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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