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한 절제되고 관용적인 대화
역사에 대한 절제되고 관용적인 대화
  • 대학신문
  • 승인 2015.11.15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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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외교학부 안도경 교수

여름에 핀란드에 다녀오신 어느 교수님은 헬싱키에서 본 젊은 환경미화원의 모습에서 큰 감명을 받으신 모양이다. 단지 미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당함, 품위, 평범함, 밝음 등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환경미화원에 대해 가지는 고정관념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짧은 묘사의 결론이 재미있다. 정확하게 옮기지는 못하겠으나 듣는 나의 입장에서는 대충 ‘역사가 무슨 소용인가?’ ‘역사라는 것이 다 부질없다’ 이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한국에 자주 오시는 전직 대통령 할머니나 거리의 환경미화원 아가씨나 남들보다 특별해 보이지 않고, 사회에 필요한 하나의 역할을 적당한 시간 동안 하면서, 적당한 보수를 받고, 질병이나 가난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사는데 그 나라의 역사가 무엇을 보태줬는가? 뭔가를 보태줬다 하더라도 그 역사가 특별히 길거나 자랑할 거리가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스웨덴의 영토였다가 19세기 초부터는 러시아제국 속의 대공국으로 백 년을 보내고 1919년에야 그 땅 위에 최초로 독립 국가를 선언해 이제 100년도 되지 않은 나라다. 특별히 오래된 유적과 문명 또는 제국의 흔적을 자랑할 거리도 자랑할 이유도 없으나 청렴하고, 효율적이고, 민주적이고 청소부나 대통령이나 대체로 공평하게 사는 나라에서 역사는 무슨 의미일까?

그러나 아무리 길지 않은 역사라 할지라도 우여곡절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아주 인상 깊은 핀란드 역사의 한 사건은 겨울전쟁(1939~1940)이다. 레닌그라드가 핀란드 국경에서 너무 가까우니 그 주변 땅을 소련에 내주고 다른 곳의 땅을 받으라는 소련의 제안을 거부해 침공을 당했다. 수만 명의 전사자를 내면서도 침공군이 그 몇 배의 대가를 치르게 했다. 결국에는 영토 일부를 내줄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핀란드 역사의 가장 큰 아픔은 건국 직전의 내전(1918)이었을 것이다. 백군과 적군으로 나뉘고 독일과 러시아가 개입한 이 내전의 와중에 백색테러와 적색테러가 난무하였으며 세계 최초의 ‘현대적’ 집단수용소가 만들어지고 그 수용소에서 적군 측 민간인들이 1만명 이상 굶어 죽었다. 적군의 역사에서 그 내전은 의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던 사회민주당에 대한 백군의 반란으로 시작된 것이며 집단수용소 등 민간인에 대한 테러도 백군 측이 압도적으로 많이 범했다고 본다. 반면 백군의 역사에서 내전은 레닌의 후원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이 핀란드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을 막고 자유 핀란드 건국을 가능케 한 역사적 승리라고 본다. 그래서 승자들은 오랫동안 그 내전을 ‘자유전쟁’이라 불렀다. 건국 후 반세기 동안 핀란드는 1918년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기억 간에 화해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

혹자는 복지국가의 건설을 통해 비로소 핀란드인들이 역사에 대해 관대해지고 서로의 관점을 포용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또는 역사전쟁을 멈춤으로써 공동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복지국가의 건설이 가능해졌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아마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과 역사에 대한 절제되고 관용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역사였을 것이다.

역사전쟁은 역사를 지뢰밭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한반도 역사의 지뢰밭은 핀란드보다 백배는 크고 지뢰 하나하나의 위력도 백배는 될 것이다. 그 지뢰들을 참을성 있게 연구해서하나씩 제거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사명감뿐만 아니라 절제와 포용이 필요하다. 그 곳에서 뛰어다니면 안 된다. 지뢰들을 상대방에 대한 무기로 선점한 사람들이 미울지라도 지뢰밭에 청소년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패싸움을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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