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교육과 김효화 강사

미움 받는데도 용기가 필요한가? 아들러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중등학교 현장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이 책은 인간관계, 열등감, 인정 욕구, 공동체 감각, 인생의 과제라는 키워드를 갖고 사람은 현재의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목적론을 말한다. 또 지금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생의 문제를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것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이 되고 있다.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 중학교 교실에서 매일 얼굴을 대하는 학생들. 나는 이렇게 서로 다른 학생들을 만나는 두 개의 직업이 있는 겸직교사이다. 나는 종종 강의실에서 만나는 예비 교사를 꿈꾸는 제자들에게 학교 현장의 얘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중학생들에게는 대학생 형 누나들의 얘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신기한 듯 재미있게 듣기도 하고, ‘헉, 요즘 애들은...’이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중학생들에게 대학생의 얘기를 전하지 않고 있다. 대학생활의 낭만이 조그만 아이들에게는 참 신기하고 부러운 모습이 되겠지만 말이다. 다만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해주긴 한다. 대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과제로, 수업 준비로, 봉사활동으로, 아르바이트 등으로 얼마나 바쁜지 등을.

몇 해 전에 학교에서 OO랜드라는 곳으로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다. 들뜬 아이들이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의 놀이기구를 이용하기 위한 동선을 짜고, 점심은 줄을 서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메뉴를 정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안전교육을 하고, 학급단체사진을 찍고, 귀가를 위한 집합시간과 장소를 안내해줬다. 하루 일정은 금방 진행됐고, 아이들은 아니나 다를까 몇 개의 놀이기구를 섭렵했는지를 무용담처럼 자랑했다.

그런데 우리 반 친구 중 한 아이가 약간 떨어진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친구는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성실한 학생으로 주변에 친구가 많지는 않은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웃으며 재미있었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거다. “선생님, 저 오늘 책 두 권 가져왔는데, 다 읽었어요. 놀이기구 타는 것보다는 책을 읽는 게 저한테는 힐링이 되거든요. 『데미안』은 오전에 읽는 게 좋을 것 같아 점심 전까지 다 읽었고 『21세기 자본』은 점심 먹고부터 지금까지 읽고 있어요”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이야기를 지리교육세미나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의견을 물었다. 학생들의 의견은 그 아이의 행동이 ‘존중 받아야 한다’ ‘이해 간다’ ‘나도 비슷한 경우였다’가 많았다. 놀라웠다. 나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친구들과 놀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아이를 걱정스러워하고 행동을 교정할 것을 권할 줄 알았다. 실제로 그날 그 아이를 함께 본 동료교사들은 대부분 걱정과 안타까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강의실의 대학생들이 충분히 그 아이의 행동에 공감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는 참 많은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그 아이와 비슷하게 보냈구나 하고 느꼈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자 함은 아니다. 나는 다만 그 아이가 우수한 성적을 내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가진 후 ‘다른 아이들이 놀 때 나는 그렇게 어려운 책을 읽을 정도로 매순간 열심히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보상은 당연한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다시 아들러로 돌아가자. 아들러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을 정리하자면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오늘은 미래의 목적과 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러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다가 꿈이 이뤄지지 않을지라도 그 꿈을 위해 희생했던 수많은 오늘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 내 인생의 오늘을 잘 살아보자. 특히나 앞서 언급한 나의 소중한 꼬마 제자처럼 조금 다른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들어와서 이 글을 읽는 청춘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인생은 덤벼보는 사람의 것이다. 문이 아무리 많아도 열지 않으면 그냥 벽일 뿐이다. 되도록 많은 벽을 두드리고 되도록 많은 문을 열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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