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 화물운송기사 여의도 광고탑 고공농성

▲ 지난 11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풀무원분회 소속 노동자 연제복 씨와 유인종 씨가

여의 2교 주변 광고판 위에서 농성하고 있다.

국회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여의 2교 끝자락에는 ̒광복 70년, 하나 된 대한민국! 신나는 대한민국!̓이라고 적혀있는 광고판이 높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광고 문구가 무색하게 이 위에선 현재 두 명의 화물운송기사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풀무원분회(풀무원분회) 소속의 화물운송기사 연제복 씨(48)와 유인종 씨(43)다. 이들이 소속된 풀무원분회에서는 풀무원의 물류 계열사인 엑소후레쉬물류㈜의 위탁업체와 계약을 맺은 지입차주*들이 풀무원을 대상으로 파업을 진행 중이다. 연 씨와 유 씨는 풀무원 측에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약속한 합의사항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9월 24일 높이 30m의 광고탑에 올랐다. 광고판 아래로는 ‘풀무원은 노동탄압 중단하라’ ‘풀무원은 산재사고 보상하라’ ‘풀무원은 유류대, 운송비를 지급하라’ 등의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연 씨와 유 씨는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 6일(금) 고공농성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 압수수색을 실시한 뒤로 단식투쟁까지 진행 중이다. 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은 광고판 사이의 협소하고 아찔한 공간. 가끔씩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옷가지를 광고탑 밑으로부터 전달받을 뿐 이들은 어떤 음식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연제복 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한 이후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다”면서도 “광고판 위가 위험하긴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내려갈 생각이 없다”며 투쟁에 대한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노동자 죽이는 근로조건, 파업의 발화점이 되다=노조원들이 파업을 시작한 배경에는 혹독한 근로조건이 있었다. 노조는 사측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농성 현장에서 만난 풀무원분회 윤종수 분회장은 “화물차 기사들은 보통 하루에 15~17시간씩 운전을 한다”며 “살인적인 노선과 운송 스케줄로 고속도로에서 아찔했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지입차주들은 지난해 11월에도 한 차례 파업을 진행해 사측에 노조활동을 제약하는 조항을 수정해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고 월 1회 노사 대표가 모여 대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사측은 상호협력을 조건으로 파업 중단을 요구했고 양측의 합의로 하루 만에 파업이 종료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지입차주들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장시간의 근무와 빡빡한 일정은 그대로였다. 설상가상으로 원래 지입차주들의 일이 아니었던 물류 상·하차 업무가 이들에게 부가되면서 일의 강도는 물론 사고의 위험성도 높아졌다. 심지어 사측은 업무상 손해를 명목으로 파업을 한 지입차주들로부터 매달 월급에서 20만원씩을 삭감했다. 사측의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모독적인 행위 역시 노동자들의 공분을 샀다. 윤 분회장은 “안전화를 지급해달라는 요구에 사측은 남이 신었던 중고 안전화를 던져줬다”고 말하면서 “사측의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분개했다.

노사 갈등의 골이 깊어지던 중 ‘도색 유지 서약서’의 이행을 둘러싼 충돌은 파업 재개의 불씨가 됐다. 지입차주들과 풀무원은 올해 3월 운송차량 외부의 로고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도색유지 서약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사측이 지난해 11월 파업 당시 합의했던 내용을 이행하지 않자 지입차주들은 풀무원 로고가 새겨진 차량 위에 투쟁 구호를 작성하고 화물연대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으로 사측에 반발했다. 이에 사측이 서약서 위반이라며 노조의 행위를 불법으로 몰아갔고 일부 노조원들의 노조 탈퇴를 종용하면서 노사 간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윤 분회장은 “20년간 월급이 오르지 않았다"며 "정말 살고 싶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차에 투쟁 문구를 썼다”고 토로했다.

◇파업의 본질, 하청 구조의 고질적 병폐=노조는 사태의 근본 원인이 대기업의 하청구조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입차주들이 풀무원의 직속 직원이 아니다보니 사측이 이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풀무원은 지입차주들이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식대 지급과 같은 직원 차원의 복지 제공이나 업무상 사고에 대한 보상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태는 지입차주들과 직접 계약을 맺은 운송업무 대행업체가 합의를 이뤄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풀무원이 특수고용노동자라는 화물노동자의 취약한 지위를 악용해 노동착취와 노조탄압을 하고 있다며 사측이 사회적 지위에 맞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풀무원분회는 사측이 대화 의지를 보이지 않자 불매운동 홍보 동영상을 제작해 풀무원 제품의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사측에 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대화가 성사될 때까지 무기한 파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농성장 인근 다리를 지나던 시민 유 모 씨(34·회사원)는 “광고판의 문구와 저 상황이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고공농성 중인 화물운송 노동자들에게 ‘하나 된 대한민국, 신나는 대한민국’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지입차주: 운수회사 명의로 등록된 개인 소유차량 주인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