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대자보는 다 어디로 갔나: ‘대학’신문에 대한 단상
그 많던 대자보는 다 어디로 갔나: ‘대학’신문에 대한 단상
  • 대학신문
  • 승인 2015.11.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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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대학신문』 애독자다. 매일 아침 현관 앞에 놓인 신문을 집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듯, 신문이 나오는 주 월요일이면 나는 빼놓지 않고『대학신문』을 챙긴다. 월요일 아침 책상 위에『대학신문』을 펼쳐놓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학교 안팎의 새로운 소식을 접할 뿐 아니라, 막 시작된 일주일을 계획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 주엔 새삼 신문의 이름에 눈길이 머문다. 왜 ‘서울대신문’이나 ‘관악춘추’가 아니라 ‘대학신문’일까? 특정 대학이나 이를 연상하게 하는 이름이 아니라 ‘대학’신문이라고 한 것은 우리 학교에서 펴내는 신문이야말로 ‘대학’이라는 공동체에서 바라본 신선한 시선과 새로운 관점을 담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대학신문』에는 일반적인 언론매체에서는 접할 수 없는 기사들과 새롭고 신선한 시각이 담겨 있어야 할 터이다.

11월 9일에 발행된『대학신문』에서 가장 눈길을 끈 기사는 연구중심대학으로서 서울대의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한 기획이었다. 서울대가 표방하는 연구중심대학의 허와 실을 모두 짚으면서 교수와 학생, 본부의 입장 어느 한편에 서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공계 단과대를 중심으로 이뤄진 기획보도여서 인문사회계 단과대가 안고 있는 연구중심대학의 문제점이 제시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인문사회계는 연구비와 연구기반시설을 기반으로 하는 이공계와는 다른 연구방식을 지니고 있으며, 그 바탕이 되는 대학원 교육의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자칫 반쪽 기획이 되지 않도록 추후에 깊이 있는 보도가 이뤄졌으면 한다.

이밖에도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한국의 유라시아 육로 진출을 다룬 해외 취재는 최근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를 다녀온 필자의 개인적 체험과 맞물려 흥미롭게 읽혔다. 이제 필요하다면 해외까지 찾아가는『대학신문』의 취재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전공이 한국현대문학인지라 평소에도 문화나 학술 관련 기사를 꼼꼼히 챙긴다. 대학원 시절 당시 유행하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대학신문』이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 탓이다. 지난호에는 박소란 시인의 인터뷰를 눈여겨보았다. 아직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을 선정한 것도, 대담의 깊이를 유지한 것도『대학신문』 특유의 신선함과 공력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 기사가 그 앞면에 실린 청년 일자리 정책과 외국의 청년 실업 현실을 보도한 기사와 연결되어 읽힌다는 점이다. 이 세 기사는 청년의 고달픈 삶과 각박한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조망하지만 실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서로 다른 기사들을 독자가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연결시킬 때 독자나 편집자의 기쁨은 배가된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 초반 캠퍼스는 온통 대자보나 포스터로 뒤덮여 있었다. 정치, 사회적 관심이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학기 초나 말이면 동문회나 향우회를 알리는 포스터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제 그 많던 대자보와 포스터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런 의문을 떠올리며 나는『대학신문』이 매주 월요일이면 관악의 아고라에 나붙는 대자보이길 바란다. 그 대자보에는 온갖 유익한 정보도 필요하겠지만 지난호 ‘맥박’의 제목처럼 대학의 ‘불온한’ 정신의 힘이 들어 있으면 좋겠다. 198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그 시절부터 ‘대학’신문의 애독자인 독자로서 버릴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박성창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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