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물 건너 실험목장에는 소와 닭이 살지요
산 넘고 물 건너 실험목장에는 소와 닭이 살지요
  • 대학신문
  • 승인 2015.11.1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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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정신없는 동서울터미널을 등지고 2시간 남짓 달리면 장평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에서부터 시작되는 조용한 시골길을 지나 평창캠퍼스 입구에 들어서면 탁 트인 초원 너머 건물들이 굳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요해 보였던 평창캠퍼스에 직접 들어가보니 그곳엔 연구와 실험으로 분주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런 평창캠퍼스에서 유독 돋보이는 곳은 바로 실험목장이다. 캠퍼스 부지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실험목장은 예상과 달리 더 거대한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지난달 『대학신문』이 서울대의 특별한 연구소를 찾아 평창캠퍼스 실험목장을 방문했다.

 

수원에서 평창으로, 다시 태어난 실험목장

실험목장이 처음 자리 잡은 곳은 경기도 수원시였다. 실험목장의 역사는 1937년 수원 고등농림학교 수의축산과가 신설될 때 설립된 부속목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946년에 서울대 개교와 함께 축산학과가 개설되면서 부속목장은 비로소 서울대의 산하기관이 됐다. 6.25 전쟁 후 부속목장은 복구사업을 거쳐 우사와 계사를 비롯한 여러 실습실을 갖춘 최첨단 목장으로 탈피했다. 하지만 당시 부속목장은 구시대의 ‘최첨단’에 오랜 기간 정체돼 있었고, 80년대 들어 실험목장으로 명칭을 변경했지만 정작 ‘실험’에 초점을 맞추진 못했다. 실험목장장 임정묵 교수(식품동물생명공학부)는 예전의 실험목장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해 “당시 연구자는 연구뿐만 아니라 동물을 구입하고 관리하는 일도 도맡아 해야 했다”고 전했다.

평창으로 이전한 실험목장은 기존의 낙후된 모습에서 벗어나 교육연구지원 역할에 충실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실험목장은 외국 대학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실험장(experimental station)으로 운영 중이다. 실험장은 대학이 동물자산을 소유함과 동시에 관리를 책임지고, 연구자는 대학에 사용료를 지불하고 실험동물과 시설을 사용하는 방식의 연구 시설이다. 실험장을 통해 연구자는 더욱 연구에 집중할 수 있고, 대학은 연구자에게 받은 사용료로 양질의 시설을 제공할 수 있으니 연구자도 대학도 좋은 ‘윈윈’ 제도라 할 수 있다.

▲ 실험복장의 우사에 있는 모든 소에는 각 개체를 구별할 수 있도록 번호표가 붙어 있다. 각각의 소들은 개별적으로 맞춤 관리를 받는다.

평창캠퍼스의 동쪽 끝에 위치한 실험목장은 신발 소독과 에어샤워로 온몸의 먼지를 털어내는 방역작업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다. 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10여채의 말끔한 계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계사 멀찍이 대형 우사와 착유장이 있다. 복작대던 닭들과는 달리 소들은 평온히 햇볕을 쬐고 있었다. 현재 실험목장에선 한우·젖소 등 대동물 약200마리, 닭·오골계 등 가금류 약 1만5,000마리가 교육연구지원을 위한 소중한 자원으로 관리되고 있다.
 

가축연구의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

실험목장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국제농업기술대학원에선 실험목장에서 제공된 동물들을 이용한 실험과 연구가 한창이었다. 박태섭 교수(국제농업기술학과)의 가금유전체제어연구실은 문 앞부터 ‘삐약삐약’ 소리로 가득했다. 이 연구실의 주된 과제는 가금류의 유전자를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교정하는 것이다. 실험실 한 구석에는 커다란 부화기가, 그 반대편 구석의 철제 상자에는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병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부화기에 들어있는 1,000개가량의 알에는 실험 날짜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고, 아장아장 걷는 병아리들의 날개엔 ‘주민등록번호’가 새겨진 띠가 둘러져 있었다. 이 병아리들은 품종 개량을 목적으로 ‘유전자 가위’ 기술을 통해 ‘유전자 교정’을 받은 뒤 실험실에서 태어났다.

▲ 가금유전체제어연구실에 있는 부화기 내부, 유전자 가위를 주입한 날짜나 실험에 대한 정보들이 알의 표면에 간단하게 표시돼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세포의 정보를 교정해 원하는 세포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세포는 생명활동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다. 세포는 이 방대한 정보를 DNA라는 책에 기록해 두는데, 이 책을 보며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가 담긴 부분을 찾아 활용해 생명활동을 지속한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이 책을 고쳐 쓰는 기술이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DNA에서 원하지 않는 부분을 지우고 새로 써넣는 교정 작업을 할 수 있다. 교정된 DNA를 기반으로 세포는 다른 방식으로 생명활동을 하기 때문에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로 원하는 세포를 만들 수 있다.

유전자 교정은 전통 육종법을 이을 차세대 품종 개량법으로 대두하고 있다. 전통 육종법은 알을 많이 낳거나 빨리 자라는 개체들을 선별해 교배시키는 작업을 반복하는 방법이다.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며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와 달리 유전자 교정은 교정하고 싶은 유전자를 연구자가 직접 선정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교정할 수 있어 품종을 보다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박 교수의 연구진은 계란 흰자 유전자를 대상으로 유전자 교정에 성공한 바 있다. 이 기술을 발전시키면 유전자 교정을 통해 흰자의 영양소 비율을 조절해 양질의 단백질이 다량 포함된 기능성 계란을 낳는 닭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가금유전체제어연구실의 한 연구원이 바늘을 갈고 있다. 날카롭게 갈린 바늘을 통해 닭의 배아에 주입된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를 교정한다.

유전자 가위로 교정한 생명체에는 유전자 조작에 대한 우려가 따르기도 한다. 그러나 유전자 교정과 유전자 조작은 다르다. 기존의 유전자 조작은 DNA에 정보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조작을 일으켜 외부에서 주입된 유전자가 남아 있지만, 유전자 교정은 정보를 지우고 새로 채우는 방식으로 이뤄져 주입된 유전자가 세포에 융합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유전자 교정 기술을 사용해 품종을 개량한 것과 전통적인 육종법을 통해 만들어낸 것은 이론적으로 구별할 수 없다”며 유전자 교정에 대한 막연한 우려는 거둬도 좋다고 밝혔다.

실험목장과 같은 전문 관리시설이 있어 연구진은 한정된 공간에서 체계적으로 유전자 교정 실험을 지속할 수 있다. 제한된 공간 때문에 연구실에서 보관할 수 있는 병아리 개체 수는 정해져 있어, 새로운 계란이 2주가 지나 부화하면 기존의 병아리는 실험목장으로 옮겨간다. 박 교수는 “실험목장 시설이 없었다면 유전자 교정된 병아리를 2~3주 키운 뒤 손쓸 수가 없게 됐을 것”이라 말했다. 실험목장은 이처럼 든든한 교육연구지원 기관으로서 양질의 연구가 이뤄지도록 연구자들을 돕고 있다.


받은 대로 돌려주는 사회공헌의 장

실험목장은 학내 교육연구지원을 넘어 학외 연구지원도 시행 중이다. 올해부터 국립축산과학원(축과원)의 토종닭 복원사업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임정묵 교수는 “작년 조류독감의 여파로 축과원에서 보유하고 있던 토종 종계를 모두 폐사시켰으나 방역에 철저했던 실험목장은 그 여파를 피해 종계를 보존했다”고 전했다. 종계는 병아리가 깨어날 수 있는 건강한 알을 낳는 품종으로, 종계 폐사는 곧 토종닭의 대가 끊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험목장 가금관리팀 박경제 선임연구원은 “병아리부터 성체까지 한 자리에서 키우지 않고 7주, 14주, 16주를 기점으로 계사를 옮기고 소독을 한 것이 일반 농가와 차별화되는 질병 관리 시스템”이라 전했다. 실험목장은 현재 종계 11종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기관이다. 임 교수는 이에 “대학이 역으로 국가의 토종닭 복원사업을 지원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실험목장은 지역사회공헌 프로그램도 병행한다. 임 교수는 “낙후됐던 실험목장의 확장 이전에 강원도와 평창군의 도움이 컸다”며 실험목장이 평창군 지역사회 발전에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실험목장은 평창군 내 두 곳의 목장과 협력해 수익사업을 지원한다. 지역의 협력목장에서 실험목장에 필요한 제품을 공급해주면 실험목장은 협력목장을 대상으로 가축 관리 서비스나 품질 관리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식이다. 더불어 실험목장에서는 자체적으로 진행한 연구를 통해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사업도 구상 중이다. 이를 통해 가까운 미래에 실험목장이 자체적으로 농가에 보급할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허철성 교수(국제농업기술학과)는 실험목장이 있기에 비로소 “연구와 실무를 함께 할 수 있는 장”이 펼쳐졌다고 전했다.

지난달 평창캠퍼스를 더러 유명무실한 곳이라고 지적한 기사가 논란이 됐다. 그러나 직접 찾아가 본 평창캠퍼스와 실험목장은 기초과학연구와 지역사회공헌의 든든한 인프라로 그 역할을 충실히 다지고 있었다. 앞으로 평창캠퍼스 실험목장이 유명‘유’실한 서울대의 부속기관으로 더욱더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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