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서점계, 각자의 자리에서 생존을 모색하다
출판·서점계, 각자의 자리에서 생존을 모색하다
  • 이설 기자
  • 승인 2015.11.15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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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도서정가제 개정 1주년, 출판생태계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다

모든 도서의 가격 할인을 정가의 15% 내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이 만 1년을 맞는다. 일각에서는 법안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출판사들의 매출액은 감소하고 오히려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수익이 늘어났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반면 정가제의 수혜자로 여겨졌던 지역서점들은 영업이익의 변화는 미미하다고 입을 모은다. 독자들은 책값 부담은 늘어난 반면 콘텐츠의 질적 개선 등 기대했던 혜택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모두가 불만을 제기하는 현 상황, 과연 도서정가제는 정말 실패한 것일까. 책을 만드는 주체인 출판사와 책을 공급하는 주체인 지역서점은 각자가 처한 환경과 현행 도서정가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그들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들어봤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

대개 출판사들은 ‘출판계’라는 한 묶음으로 여겨지지만 규모나 전문 분야에 따라 도서정가제가 끼친 영향은 각기 다르다. ‘한울아카데미’ 시리즈로 유명한 중견 출판사 ‘한울’은 도서정가제 시행 전부터 할인을 적용하지 않은 가격에 책을 출고했기 때문에 정가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반면 어린이책을 포함한 역사분야 도서를 주로 출간하는 중소출판사 ‘책과함께’는 구간 도서의 할인이 제한되면서 전체 매출액이 하락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1인 출판사 ‘울력’의 경우 워낙 영세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자와 책을 위주로 소개해온 터라 사실상 정가제의 영향 바깥에 있다.

각자의 처지가 다르지만 출판사들은 나름의 전문분야와 지향을 갖고 꾸준히 자신들이 생각하는 ‘좋은 책’을 내려고 노력해왔다. 한울은 쪽수나 가격과 관계없이 사회적 의미를 갖는 책을 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도서를 주로 출간해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울력 또한 상대적으로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연극치료 등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출판하고 있다. 이처럼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 소수의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만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책 등이 작은 출판사의 힘으로 조용히 출판되고 있다.

많은 독자들이 높아진 책값에 불만을 표시하지만 도서정가제는 ‘좋은 책’의 지속 가능한 출판을 위한 제도적 장치다. 책이 가격으로 경쟁하고 더 값싼 책이 선택받는 상황은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출판사들은 말한다. 한울 김종수 대표는 모든 상품 중에 책에만 정가제를 적용하는 것에는 책이 가격이 아니라 콘텐츠의 질로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드커버에 640여쪽에 이르는 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책을 5만8천원 가격으로 얼마 전 출간했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책과함께 김연일 영업부장도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는 무제한 할인 경쟁이 붙으면서 출판사의 수익이 크게 떨어지고 새 책을 펴낼 수 있는 자금 마련도 어려웠다”며 “매출 감소는 일시적인 현상이고 장기적으로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출판 관계자들은 현행 도서정가제가 불완전한 법이라는 점에서 한 목소리를 낸다. 여전히 15%의 할인을 허용해 가격 경쟁의 여지를 남겨뒀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편법 할인이나 사은품 행사 같은 정가제를 위반하는 행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완전도서정가제가 아닌 이상 가격이 아닌 가치를 중심으로 경쟁하게 하고 출판생태계를 보호한다는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김연일 영업부장은 “현행 도서정가제는 출판업계와 유통업계의 협의에 의해 만들어진 과도기적 제도”라며 “출판 산업의 건강한 토대 마련을 위해 완전도서정가제가 실시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출판 다양성을 지키는 든든한 기반 돼야

건전한 출판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선 도서정가제 시행과 함께 기존의 공공도서관 입지를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우선 도서정가제 이후 책값이 예전에 비해 전반적으로 상승했음에도 도서관은 예전과 동일한 예산으로 책을 구입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해있다. 책값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의 희망도서 신청도 늘어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서관은 자료구입예산을 충분히 늘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충북 괴산의 ‘솔멩이골 작은 도서관’처럼 소규모 도서관들은 구입할 수 있는 도서가 크게 줄었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책과함께 김연일 영업부장은 “출판산업진흥을 위해 공공도서관에 대한 지원이 지금보다 최소 5배는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출판 다양성을 살리기 위해 공공도서관이 다양한 분야의 도서 선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공공도서관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책값이 비싸다는 독자의 불만을 해결하면서도 출판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돕는 가장 현실적 방안이기 때문이다.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문화가 정착되면 도서관이 폭넓은 분야의 책을 구입함으로써 출판의 다양성을 보호할 수 있다. 독자들도 지금만큼 ‘가격 저항’을 심하게 느끼지도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울력 강동호 대표는 “수요자 중심으로 책을 구매한다는 취지도 좋지만 도서관은 다양한 책을 갖춰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도서관이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사는 경향에서 탈피해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한 책까지 좀 더 폭넓게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와 책을 연결하는 모세혈관이 전국에 퍼져나가길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전부터 지역서점은 이 법으로 상당한 수혜를 받을 것이라 예상됐다. 공공도서관의 도서납품업체 입찰 과정에도 할인율 제한이 적용돼 지역서점이 입찰에 참여할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지자체에서 여전히 지역서점들이 도서납품입찰에서 소외되고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공개입찰이 추첨방식으로 입찰자를 선정해 실제 서점을 운영하지 않은 유령업체들이 대거 응찰하는 일이 잦아졌다. 낙찰을 받을 경우 유령서점이 입찰권을 다른 업체에 넘기는 대신 수수료를 챙기는 식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서점들은 유령업체를 걸러내는 ‘서점인증제’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역서점들은 도서관이나 학교에 도서를 납품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을 도서정가제의 긍정적 영향으로 꼽는다. 예컨대 관악구의 경우는 전국에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이전에는 공공기관에서 도서를 구입할 때 최저가 입찰 방식을 적용해 납품업체를 선정했지만, 정가제 시행 후에는 정가의 10%까지만 할인이 가능해져 최저가 입찰제가 무의미해졌다. 이는 곧 지역서점들이 공공도서관 혹은 학교에 책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뜻이었다. 신림동 고시촌에 위치한 서점 ‘북션’ 정성훈 대표는 법 개정에 발맞춰 관악구 내 공공도서관들이 지역서점으로부터 도서를 납품받을 것을 구청에 건의했다.

그 결과 올해부터 관악구와 구내 도서관들은 지역서점과 납품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관악구청은 동주민센터 안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 20개의 도서를 모두 지역서점으로부터 구입했다. 구내 공공도서관의 도서 구입을 총괄하는 관악도서관의 경우 전체 도서구입 예산의 20% 정도를 지역서점에 배정했다. 세간의 우려와 달리 지역서점은 지금까지 문제없이 일자에 맞춰 책을 납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서관에서 신청한 도서를 바꿔달라고 할 경우 신속하게 바꿔줄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도서구입 담당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역서점조합을 중심으로 지역서점 활성화와 저변 확대를 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관악구의 경우 공공도서관과 납품 계약을 할 때 북션을 포함한 구내 6개 지역서점이 함께 참여한다. 중소서점 연합단체인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관악·동작서점조합에 소속된 이 서점들은 수익을 규모에 관계없이 똑같이 나누기로 합의했다. 지역서점조합의 총무를 맡고 있는 정 대표는 서울의 모든 동네서점을 통해 책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모바일 서비스 ‘서울 동네서점 네트워크’를 추진할 계획이다. 그는 동네서점 네트워크의 취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동네서점은 도서출판환경에서 모세혈관 같은 존재예요. 모세혈관이 하나둘 없다고 해도 신체기능에 이상이 없지만 전체적인 조직체계 상에는 꼭 필요한 거잖아요.”

한편 서점조합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는 지역서점도 있다. 인문사회과학 서점으로 지역 내에서 유명한 ‘그날이 오면’이 대표적이다. 그날이 오면은 관악구의 지역서점조합에 참여하지 않고 단독으로 공공기관과 도서납품계약을 맺고 있다. 서점 대표인 김동운 씨는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겠다는 차원에서 서점을 운영해왔다”며 “일반 서점과 성격이 많이 다르니 따로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의는 어떤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책을 상품으로 볼 것이냐, 상품으로 보는 것을 거부할 것이냐.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냐, 책의 가치를 보호할 것이냐. 현행 도서정가제는 사실상 두 입장의 어정쩡한 합의의 결과였다. 온라인 서점의 편법 할인, 지나친 판촉 활동 등은 현행 정가제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출판사는 여전히 좋은 책을 만드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 없고 지역서점은 주민들이 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했다. 공공도서관도 ‘공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출판문화의 다양성을 보호하는 역할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좀더 다양한 책들이 세상과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기 위해, 출판생태계의 각 주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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