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므2552

25므2552
류혜비

 

등장인물

-여자

-남자

-아들

 

<1장>

무대 좌우로 의자가 양쪽에 하나씩 놓여있다. 두 의자엔 여자와 남자가 앉아있다. 둘 모두 아무 표정도 없이 객석을 바라본다. 무대는 가장 밝은 명전 상태에 있다가, 관객 입장이 마무리 되고 객석의 소음이 잦아들면 반쯤 어두워진다.

 

여자 : (의자에서 일어나며)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건번호 25므2552 원고측 변론 시작하겠습니다. 원고와 피고는 결혼을 한지 올해로 22년째 되는 부부입니다. 원고는 현재 변호사로 일하는 중이고 피고는 한 때 철학관을 하다 지금은 가정주부로 있습니다.

 

여자, 무대를 천천히 거닐면서 대사를 계속 한다.

 

여자 : 원고에겐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는 올해 만 20세로 법적 성인입니다. 피고는 원고에게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여자, 말을 잠시 멈추고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도 여자를 바라본다. 둘은 잠시간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관객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여자 :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저 사람과 이혼하고 싶습니다.

 

남자, 무대에서 퇴장하고 여자, 무대 뒤편에 있던 아기 침대를 무대 한 편으로 옮긴다. 여자가 아기를 안아들고 자리에 앉으면 조명이 더 밝게 올라간다.

여자, 사랑스럽다는 듯 아기를 돌보지만 시계를 보는 등 초조한 기색이다.

남자 심각한 등장.

여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이를 침대에 두고 남자에게 다가간다.

 

여자 : 당신, 어디 있다가 이제 들어와! 잠깐 나갔다온다더니 밤새 연락도 안 되고, 애는 울고, 걱정이 돼서 잠을 잘 수 있어야지.

남자 : 아... 미안해. 걱정했어? 그게...

 

여자, 남자의 얼굴을 보다가 한숨을 내쉰다.

아기 울음소리.

 

여자 : 이거 봐, 한시라도 손을 떼면 바로 울음이야. (아기를 안아들며) 이렇게 안아주면 뚝 그치는데. 그래도 애가 순한 편이야, 그치?

남자 : (무심하게 외투를 벗으며) 그러네.

여자 : 당신, 애 얼굴은 제대로 봤어? 그렇게 기대했으면서 정작 낳고나니 너무 무심한데. (아기를 남자에게 보여주며, 이때 남자,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눈을 꾹 감아버린다.) 봐, 우리 애 너무 예쁘지 않아? 날 닮아서 그런가. 어디, 자기도 한 번 안아봐.

남자 : 아니!

 

여자, 남자에게 아기를 건네려 하는데 남자는 화들짝 놀라 피한다.

 

여자 : 뭐야, 당신 왜 이래. 겁낼 것 없어. 당신도 이제 아빤데 아기 안는 법도 배워야지. 자, 이렇게 목을 받치고...

남자 : 괜찮다고 했잖아!

 

남자가 큰 소리를 내자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여자,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남자를 보다가,

 

여자 : 무슨 일 있었어?

남자 : 미안해. 난 그냥...

여자 : 좋아, 아기 안는 건 다음에 해. 어차피 나 나가고 나면 할 수밖에 없을걸... 아참, 출근! 내 정신 좀 봐. (아기를 남자에게 떠안기다시피 하고 정신없이 가방을 챙기기 시작하며) 이러다 진짜 늦겠네. 오늘부터 출근인 거 뻔히 알면서 정말 이러기야? (남자에게 목걸이를 건네며) 나 이것 좀 채워줘.

남자 : (덩달아 허둥지둥 아기를 내려놓고 목걸이를 채워주며) 맞네, 당신 오늘부터 출근이라 그랬지. (한숨) 정말 그러려던 게 아닌데... 저, 여보. 나 할 얘기가...

여자 : 나중에. 나중에 나 퇴근하고 하자. 응? 진짜 늦겠어.

남자 : 중요한 얘기야. 잠깐이라도...

여자 : 나도 중요한 일이야. 이따 나 퇴근하고, 퇴근하고 얘기해. (아이를 다시 남자 품에 안기며) 아기 잘 보고 있을 수 있지? 세상에, 우리가 부모라니. 아직도 어색해.

남자 : (포기한 듯) 그래, 잘 다녀와. 무리하지 말고...

여자 : 아이고 이뻐라! 이래야 내 남편이지.

 

여자, 바삐 퇴장하고 남자, 품 안의 아이를 울상으로 쳐다본다.

여자가 퇴장하자마자 아기 울음소리.

남자, 한숨을 푹 쉬고 아기를 침대에 눕힌다. 잠깐 아기를 바라보고 나서 힘없이 의자에 걸터앉는다. 아기 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남자, 못 견디겠다는 듯 씩씩대며 퇴장.

 

조명, 낮아진다.

아기 침대에 핀 조명이 비친다.

아기 울음소리가 서서히 잦아들면 남자, 여자 등장. 조명 다시 올라간다.

둘 모두 격앙된 목소리로 쿵쾅대며 등장한다. 여자가 앞서고, 남자는 쫓아온다.

 

여자 :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해!

남자 : 좀 들어봐.

여자 : 그만 하라니까?

남자 : 당신이야 말로 내 말을 끝까지 다 들어 보라고.

여자 : 무슨 말을 더 들어?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을 내다 버리잔 얘기?

남자 :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해! 그게 아니잖아.

여자 : 그 소리잖아! 어떻게 애 낳고 방금 일까지 하고 온 와이프한테 고생했다, 고맙다, 이런 말은커녕... 뭐? 애를 내다 버리자고? 아예 나도 내다 버리시지?

남자 : 내다 버리잔 게 아니고... 내 말은...

여자 : 대체 왜 그러는 데 당신? 아까부터 뭐가 문제야, 응?

남자 : 애가!

여자 : 그래, 애가 뭐?

남자 : 애가...

 

남자,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말을 잇지 못하고 무대 구석에 있던 술을 한 잔 따라 마신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의자에 머리를 감싸 쥐며 앉는다.

 

여자 : 말을 해! 뭔데?

남자 : 애가... 애 팔자가. 나를 죽이고 당신이랑 결혼할 팔자야.

여자 : 뭐?

남자 : 저 애가 나를 죽이고, 당신이랑 결혼할 거라고.

여자 : 당신 미쳤니? 무슨 꿈이라도 꿨어? 아님 정말 내가 모르는 다른 심각한 일이라도 있는 거야?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남자 : 저 애 사주, 관상, 하나도 빠짐없이 똑같아. 나도 믿기 싫어, 하지만...

여자 : 사주? 당신이 보는... 그 사주? 지금 이게 다 그거 때문에 하는 말이야? 사주 때문에?

남자 : 그래, 사주. 사주팔자. 내가 지겹도록 보는 그거. 그 사주.

여자 : 잠깐 나 지금 정리가 안 돼. 그러니까 당신 말은 당신이 애 사주를 봤는데, 애 사주가 당신을 죽이고 나랑 결혼할 팔자다, 이 말이지?

남자 : 어.

여자 : 그래서 애를 어디 멀리 보내버리자. 그런 말이지?

남자 : 어. 애를 죽일 순 없잖아.

여자 : 죽이다니, 당신 끝까지! (숨 한 번 내쉬고) 들어봐, 나 당신 용한 거 알아. 당신 얼굴 한 번 보려고 지금도 사람들 줄서 기다리는 것도 알고, 당신 무시하는 거 절대 아니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냥 당신도 요새... 좀 힘들고 기도 허하고, 그래서... 그래서 그런 거야. 세상 어디에 그런 팔자가 있어. 아빠는 죽이고, 엄마랑은 결혼하고. 그런 것 때문에 자식을 버리자고? 말도 안 돼.

남자 : 나라고 이런 말 하는 거 속 편한 줄 알아? 나도 아니었으면 좋겠어. 당신만 부모 아냐, 나도 아빠야. 내 자식인 건 마찬가지라고. 근데, 몇 번을 봐도 똑같아. 애 얼굴만 봐도 날 죽이고 당신이랑 결혼한다고 떡하니 쓰여 있다고! 나도 정말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맞아. 다른 건 몰라도 이번은 맞아. 어쩔 수 없어.

여자 :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 팔자가 어디 있냐구. 난 못 들은 걸로 할 거야.

남자 : 못 들은 걸로 할 수가 없어. 이건 운명이야. 그냥 그렇게 타고나는 거라고.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최선은, 애를 그냥 멀리 보내버리는 거야. 우리랑 평생 만날 일 없게. 우리도 평생 조심하면서 살아야겠지. 혹시라도 마주치는 일 없게 말이야.

여자 : 그만.

남자 : 여보, 애는 또 낳으면 돼. 우리는 그렇다 쳐도, 애를 그렇게 살게 할 순 없잖아. 당신, 애를 아빠는 죽이고, 엄마랑은 결혼하는, 그런 인생을 살게 하고 싶어?

여자 : 말을 어쩜 그렇게 잔인하게 해?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애를 멀리 보내는 일도 없고, 애가 당신을 죽일 일도 없고, 나랑 결혼할 일도 없어!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니? 당신이 잘못 생각하는 거라니까?

 

여자, 남자를 한참을 노려보다가 뒤돌아선다.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면서 무대를 걷는다. 점점 진정이 되어 간다.

남자, 비참한 표정.

 

남자 : 나도 고민 많이 했어.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야. 애가 나왔다고 해서 달려갔는데, 내 자식 얼굴 처음 보는 기쁨보다도 먼저더라. 애 얼굴 보는데, 숨이 탁 막히고, 그냥... 무섭더라. 그길로 돌아와서 바로 내가 아는 책, 뭐, 다 뒤지고 그랬는데, 인정해야 해. 맞아. 애 팔자가 그래.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여자 : 상식적으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니까 그렇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상식적으로... 그래, 여보. 상식. 상식 말이야.

남자 : 세상엔 상식 밖의 일들도 있는 법이야.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아.

여자 : 여보, 우리 애 키워야 해. 응? 저 애, 키워야 돼.

남자 : 그만 하자. 이제 그만 받아들여.

여자 : 그게 아니고, 여보. 만약, 아주 만약에. 만에 하나 저 애가 당신 말대로 진짜 그런 팔자라면. 그럼 우리가 키워야지. 더더욱 키워야지, 여보.

남자 :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래, 대체.

여자 : 당신, 당신 아버지 죽이고 당신 어머니랑 결혼할 수 있어?

남자 : 그 무슨...

여자 : 봐, 아니잖아. 나도 못 그래. 아마 제대로 된 사람이면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고 할 거야. 그치? 너무... 무서운 얘기잖아.

남자 : 그래서.

여자 : 그래서, 우리가 애를 키워야지. 아주 제대로 된, 올바른 사람으로. 내가 엄마로, 당신이 아빠로, 애를 제대로 된 사람으로 키우면, 우리 애는 절대 당신이랑 나한테 그런 짓 못할 거야. 그럼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남자 : 여보.

여자 : 당신 말대로 애를 멀리 보내면? 당신 말대로 평생 안 보려고 우리가 애쓰면서 그렇게 살아도. 당신 말대로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이루어지는 거라며. 그럼 애를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도 언젠간 우리랑 마주칠 수 있는 거 아냐? 그 때 애가 당신이 아빤 줄 모르고 당신을 죽이면 어떡해? 내가 엄만지도 모르고 사랑에 빠지면 어떡하고. 애를 키워야지. 애를 키워서 우리가 그걸 막아야지.

남자 : 우린 막을 수 없어.

여자 : 아니, 우린 할 수 있어. 내가 애를 그렇게 키울 거야. 애한테 가르칠 거야. 당신이랑 나랑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으로 애를 키우면, 그렇게 해서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면 돼. 우린 할 수 있어. 응? 우린 할 수 있을 거야, 여보... 제발...

 

남자, 한숨을 내쉰다.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다.

 

여자 : (무릎을 꿇고 매달리며) 여보. 나 저 애 못 버려. 당신이랑 나랑 저 애를 낳았어. 우리 애라고! 우리가 진짜 부모면 그런 짓 못해. 나는 못해. 내 말대로 하자... 이제껏 당신 말 틀리는 거 본 적 없지만, 당신도 내 말 들어서 잘못된 적 없잖아. 응? 여보...

 

남자, 깊게 고민하다, 결심한 듯 엎드려 있는 여자의 어깨를 잡는다.

 

남자 : 그렇게 하자. 당신 말이 맞아. 애를 키워야 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키우자.

여자 : 여보...

 

남자와 여자, 서로 와락 안고 일순간 멈췄다가, 여자, 남자에게서 떨어져 나와 바로 선다.

조명 내려간다.

 

여자 : 원고와 피고는 결국 아이를 키우기로 했습니다. 피고도 끝내 동의한 부분입니다. 원고와 피고는 아이를 책임지고 사랑으로 키우기로 했습니다.

 

여자가 관객을 향해 대사를 하는 동안 남자, 아기 침대를 치우고 무대를 정리한다.

아들, 무대로 나와 자리를 잡는다. 턱받이에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다.

여자, 대사가 끝나면 자리를 잡는다. 아들은 관객을 등지고 바닥에 앉고, 여자와 남자는 아들을 향한 채로 의자에 앉아있다.

조명 올라간다.

 

여자 : 아들! 오늘은 엄마 아빠가 선물을 준비했어요. 짜잔!

아빠 : 짜잔!

 

아들, 여자 쪽을 보며 꺄르르 웃는다.

 

여자 : (선물을 내밀며) 이건 엄마 거구.

남자 : (선물을 내밀며) 이건 아빠 거란다.

여자 : 어떤 것부터 먼저 볼까?

 

아들, 망설임 없이 여자의 것을 잡는다. 남자, 머쓱해한다.

 

여자 : (어색하게 웃으며) 내 게 더 커서 좋아보였나봐. 다시 해보자. (아들에게서 장난감을 뺏어서 남자에게 주고, 남자의 것을 자신이 들며) 자! 이번엔 뭘 갖고 놀아 볼까, 우리 아들?

 

남자, 기대에 찬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지만 아들, 망설임 없이 여자의 것을 잡는다.

 

남자 : (장난스럽게 꿀밤을 때리며) 요놈! (한숨을 쉬며) 기대를 말지.

여자 : 에이, 새로운 걸 갖고 놀고 싶어서 그랬을 거야. 그건 아까 한 번 가지고 놀았던 거니까. 다시 해보면...

남자 : 몇 번을 해도 똑같아. 관두자.

여자 : 그러지 말고...

남자 : 됐어. 쟨 늘 당신만 찾잖아. (여자한테 가까이 다가가서) 여보, 아무래도 이상해. 아기 때부터 나랑 있으면 울기만 하고, 당신이 있어야 웃고. 오늘 뿐만이 아니라 계속 그러는 거 당신도 느끼고 있지?

여자 :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남자 : 아냐, 확실해. 내 생각엔 지금에라도...

여자 : 또 그 소리야? 안 그러기로 약속 했으면서. 그냥 원래 아기들은 엄마를 좀 더 좋아하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당신이 너무 그것 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같은데.

남자 : 그게 아니라니까! 내 말은...

 

아들이 갑자기 갖고 놀던 장난감을 내팽겨치고 울기 시작한다.

여자, 황급히 아들을 살핀다.

 

여자 : 아이구, 우리 왕자님이 또 왜 그러실까! 어디 다쳤나? 아님 장난감이 맘에 안 드나? 그럼 이번엔 이걸 가지고 놀아볼래? 그렇지, 잘 하네 우리 아들!

 

아들,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방긋 웃는다. 여자의 어깨 너머로 마치 남자가 보란 듯이 웃음을 지어 보인다.

 

여자 : (남자 쪽으로 돌아보며) 뭐해, 당신도 이리 와서 애랑 같이 놀아줘. 응?

 

남자, 여자와 애를 애매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남자와 여자가 잠시 그렇게 멈춰있는 동안, 아들은 턱받이와 공갈젖꼭지를 떼고 ‘1학년 1반’이라는 명찰을 붙이고 자리를 고쳐 앉는다.

 

아들 : 엄마!

여자 : (고개 돌려서) 응, 우리 아들! 학교는 잘 갔다 왔어? 오늘은 뭘 배웠을까.

남자 : (억지웃음) 그래, 뭘 배웠니?

아들 : 응, 오늘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이렇게 물어봤어. 그래서 나는 엄마라고 했어! 잘했지?

여자 : 아이고, 우리 아들!

 

여자, 아들을 얼싸 안는다. 아들, 여자의 어깨 너머로 남자에게 메롱을 한다.

 

남자 : (크고 화난 목소리로) 뭐 임마? (꿀밤을 때리며) 요 녀석이!

아들 : 우아앙! 아빠 미워! 엄마, 아빠 혼내줘!

 

아들 퇴장.

 

남자 : 나 원!

여자 : 당신도 애한테 좀 살갑게 대해봐. 만날 인상만 찌푸리지 말구.

남자 : 내가 언제? 저놈의 자식이 먼저 속을 살살 긁잖아.

여자 : 왜 매번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래. 애가 그냥 하는 말을. 얘는 애구 당신은 어른이야. 당신이 어른답게, 응? 말끝마다 무슨 자식 하는 것도 좀 그만 하고. (전화 벨소리) 여보, 잠시만. 여보세요? 네, 그 서류 어제 처리해서 넘겼구요...

 

여자, 전화 받으며 퇴장하다,

조명 내려가고,

 

여자 : (객석을 보며) 원고의 가족은 남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가정처럼 보였습니다.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피고의 우려와는 다르게 어떠한 이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피고는 여전히 자신의 사주를 머리에서 떨쳐내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여자 퇴장.

남자, 한숨을 내쉬며 무대에 두 개와 하나가 비스듬히 마주본 형태로 의자 세 개를 설치한다. 의자를 설치하고 의자 두 개 쪽 중 하나에 앉는다. 초조한 듯 기다리는 모습.

조명 올라가고,

여자와 가운을 입은 아들 등장.

 

여자 : 여보, 인사드려. 의사 선생님이셔. 나 학교 선배.

남자 :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 예, 안녕하십니까.

아들 : (악수를 권하며)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앉으세요.

 

여자와 남자, 의자 두 개인 쪽에 앉고, 아들, 한 개인 쪽에 앉는다.

 

아들 : 아내 분께 자초지종은 들었습니다. 아들 때문에 고민이시라고요.

여자 : (끼어들며)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이이가 걱정이 많아서요. 마침 선배 생각도 나고,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고.

남자 : 예, 이거 참 뭐라고 말씀드려야할지. 우선 제가 직업이 그 사주를 보는 거다 보니...

여자 : (남자의 옆구리를 찌르며, 목소리를 낮춰서) 당신 무슨 그런 얘기를 꺼내려 그래. 여기 점집 아니고 병원이야. 괜히 그런 얘긴 해서 좋을 거 없잖아. 이상하게 보일 거라고. (아들에게) 우리 애가 지금 유치원생인데, 5살이에요, 근데 애가 어릴 때부터 유난히 나를 따르는 경향이 있어서요.

남자 : 나는 쳐다도 안봅니다.

여자 : 뭘 또 그렇게까지... 그냥 아빠는 조금 어려워하는 거 같아. 그래서 이이가 뭐랄까 조금 질투를 느끼는지. 이이 정말 귀엽지 않아요, 선배?

남자 : 그렇게 가벼운 투로 얘기하지 마. 나는 진지하다니까. 애가 정말 말 그대로 나를 쳐다도 안 본다고. 내가 아빠가 맞나 싶을 때도 있고...

아들 : (말을 막으며) 예, 잘 알겠습니다. 흠... 이런 일은.

남자 : 아무래도 정상은 아니지요?

아들 : (딱 잘라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남자 : 네?

여자 : 그렇지? 내가 뭐랬어, 여보.

아들 : 그 나이 때, 즉 3세에서 5세 사이의 남근기에 있는 아이들은 엄마를 더 따르는 경향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애착관계도 엄마랑 가장 먼저 형성되고, 접하는 시간도 엄마들이 많다 보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네요.

남자 : 애 엄마는 일하느라 바쁘고 주로 시간을 보내는 건 접니다만.

아들 : (무시하며) 아이 땐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가족 간의 시간을 차차 가지면서 아빠와의 친밀도를 높일만한 사건들이 생기다 보면 어느새 해결돼있을 겁니다. 잘 생각해보시면 남편분도 아이 땐 아마 엄마를 더 가깝게 여기셨을 걸요?

여자 : (작은 목소리로) 이이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아들 : 이런, 제가 본의 아니게 실례를... 죄송합니다. 하여튼 그렇게 심각하거나 특별한 일은 절대로 아니라는 겁니다. 아이는 조금만 잘해줘도 금방 친해질 수 있어요.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이런 문제는 시간이 약입니다. 아이가 자라고 점점 독립할수록 부부만의 시간도 다시 돌아올 거구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자 : 고마워요, 선배. 이렇게 들으니까 한결 마음이 편해지네. (남자 쪽으로 돌아보며) 들었지, 여보?

 

남자,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이다.

암전.

 

<2장>

남자, 무대 한 가운데 아무렇게나 앉아있다. 주변엔 술병들이 널브러져 있고, 남자는 술을 마시고 있다. 취한 상태다.

여자 등장.

 

남자 : 여보, 우리 여보 왔어? 별로 안 마셨, (딸꾹) 어. 그냥 한 잔 (딸꾹) 한 거야.

여자 : 피고는 본인의 사업 사정이 여의치 않아짐에 따라 알코올 의존 증세가 심화되었습니다. 갑 제5호증 참조 부탁드립니다.

남자 : 일은 무슨. 그냥 술이야 좀 마실 수도 있는 거지. 근데 지금 당신 일할 시간 아니야?

여자 : 피고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고, 그 정도는 결국 원고의 직장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남자 : 일 없대도.

여자 : 피고는 종사하는 직업의 특성상 고객과 사소한 분쟁에 휘말리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 때마다 피고는 원고와 의논하고 협력하여 해결하려는 모습보다는 독단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는 원고로 하여금 부부 관계에 무력감을 느끼고 신뢰를 잃게 했습니다.

남자 : 진석이, 이 놈 자식. 입 싸기는... 그런 것까지 다 얘기했어? 내가 다신 그놈한테 돈을 빌리나 봐라. 어련히 별 일 아니니까 그랬겠지. 너무 야단피우지마.

여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피고에게 배우자로서 아낌없는 조언과...

남자 : 사주팔자 놀음?

여자 : 애정 어린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지만...

남자 : 뭔 소리야. 일이 안 풀리긴 뭐가 안 풀려. 어쩌다 이번 한 번 문제 생긴 거 가지고...

여자 : 피고는 피고를 위한 원고의 제안을 모두 무시하고...

남자 : 지금 나더러 애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살라는 거야?

여자 : 개선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자 : (큰 소리 내며) 좀! 왜 매번 당신 멋대로야? 왜 사람이 그렇게 제멋대로냐고! 당신 일만 일이야? 내 일은 무슨 돌팔이 사주팔자 놀음이고? 내 일도 어엿한 일이라고. 당신이 그렇게 얘기하면, 뭐, 내가 얼씨구나 좋다 하고 그만둘 줄 알았어?

여자 : 육아에 있어서는 특히 소홀했으며 가정을 등한시하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남자 : 말끝마다 애, 애, 애! 지겨우니까 그만 좀 해.

여자 : 이상입니다.

 

아들 등장.

 

아들 : 학교 다녀왔습니다... 어, 엄마!

여자 : 응, 우리 아들. 학교 잘 다녀왔어?

아들 : 네! 엄마 오늘 일찍 오셨네요?

여자 : 우리 아들 학교 다녀오는 거 보려고 들렀지! 다시 일 가봐야 되지만... 우리 아들 너무 좋아하네. 엄마 매일 집에 있을까?

아들 : 네!

남자 : (빈정대며) 그럼 당신이 일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 되겠네.

여자 : 여보...

아들 : 엄마, 이것 보세요.

여자 : 어머!

아들 : 백 점이에요. 전부!

여자 : 잘했네! 누굴 닮아서 이렇게 똑똑해?

아들 : 당연히 엄마 닮았죠. 엄마, 저도 공부 열심히 해서 엄마처럼 멋진 변호사가 될 거에요.

여자 : 아이구 이뻐라! 이래야 내 아들이지. 아들, 뭐 먹고 싶어? 오늘 엄마가 쏜다. 말만 해.

아들 : 정말요? 근데... 엄마 일 가셔야 한다면서요.

여자 : 오늘 같은 날은 아들이랑 저녁 한 끼 먹어야지. 금방 먹고 가면 돼.

남자 : (꿀밤을 때리며) 사내자식이 별 것도 아닌 걸로 야단이야. 오늘 엄마랑 아빤 할 얘기가 있으니까 집에서 먹어. 여보, 일 안 가면 오늘 우리 얘기나 마저...

아들 : 엄마...

엄마 : 아니야, 오늘 외식하자. 얼른 가서 가방 두고 와.

아들 : (남자의 눈치를 보다가) 네! 신난다. 저 얼른 가방 두고 올게요.

 

아들 퇴장.

 

여자 : 애 기죽게 왜 그래. 기특하지 않아? 저렇게 혼자서 척척 다 잘하는 애가 또 어디 있담.

남자 : 그건 그런데 오늘은 나랑 당신이랑 얘기하던 중이었으니까...

여자 : 아까 하던 얘기는 다음에 마저 하자. 애가 저렇게 좋아하잖아. 오늘 같은 날엔 애 기분을 맞춰줘야지.

남자 : 내가 보기엔 당신이 더 신난 거 같은데. 어련하겠어. 그래, 남편은 무능력하고, 아들이 최고지. 아들이 잘나셨지.

여자 : 무슨 말을 또 그렇게... 당신이 한 번만 양보하자, 응?

남자 : 한 번이 아니고 늘 이런 식이잖아. 당신은 늘 애가 우선이야.

여자 : 셋이 즐겁게 시간 보내면 되지.

남자 : 둘이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와. 난 집에서 축구나 볼래. (여자를 등지고 앉는다.)

여자 : 당신 정말 이럴 거야?

 

아들 등장.

 

아들 : 엄마, 가요! 나 고기 먹고 싶어요, 고기!

여자 : 준비 다 했어? 그래, 고기 먹으러 가자. (남자에게) 당신 정말 안가?

남자 : (뒤돌아보지 않고) 잘 다녀와.

아들 : (여자를 잡아 끌며) 엄마, 배고파요. 얼른 가요.

여자 : (난처해하다가) 그래, 당신 맘대로 해. 그래도 끼니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어. 또 인스턴트 같은 거, 배달음식 그런 거 먹지 말구. (아들에게) 어디로 갈까? (퇴장하며) 네 아빠는 도대체 왜 저런다니...

 

아들 퇴장.

여자, 퇴장하다 무대 한 가운데에 멈춰선다.

 

여자 :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는 일을 그만 두고 전업주부로 생활하면서 극심한 우울 증세를 보였습니다. 성기능에도 문제가 생겼고, 피고의 폭력성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여자 퇴장.

남자, 허탈한 표정.

조명, 반쯤 내려간다.

여자와 아들, 깔깔 웃으며 등장. 발랄한 발걸음으로 등장해서 남자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대사를 한다.

 

남자 : 여보, 잠깐 얘기 좀...

여자 : (남자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아들, 엄마가 선물을 준비했어!

아들 : 엄마 배고파요. 젖 주세요!

여자 :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들 : 이번 시험도 백 점이에요!

여자 : 오늘도 둘이서 오붓하게 외식할까?

아들 : 엄마, 추워요. 오늘 엄마랑 같이 잘래요!

여자 : 우리 아들 이리 온!

남자 : 그만!

 

남자가 소리를 치면 여자와, 아들은 제자리에 멈춘다.

 

아들 : 아빠보다 엄마가 훨씬 좋아요!

여자 : 나도 너희 아빠보다 아들이 훨씬 좋아! 세상에 어떤 여자가 네 아버지를 사랑하겠니? 술 때문에 얼굴도 몸도 진즉 망가진 그런 늙은이를!

아들 : 맞아요. 엄마, 사랑해요!

여자 : 나도 사랑해, 아들!

아들 : 아빠는 멍청이에요.

여자 :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들 : 어른이 되면 엄마랑 결혼하고 싶어요.

여자 : 우리 아들 같은 남자랑 결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젊고, 잘생기고, 상냥한!

아들 : 엄마랑 결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여자 : 너희 아버지가 없어야 해.

아들 :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들, 뒤돌아서 위협적으로 남자에게 다가선다.

 

남자 : 뭐, 뭐야! 이게 다 뭐하는 짓들이야!

 

아들, 남자에게 팔을 휘두르고 남자, 아들의 팔을 잡아서 꺾는다.

조명, 올라간다.

 

아들 : 아야!

여자 : 여보!

남자 : 이놈 자식이, 덤비긴! 뭐가 어쩌고 저째?

여자 : 뭐하는 거야, 빨리 놔줘.

아들 : 아버지, 왜 그러세요!

남자 : 왜 그러긴, 네가 날 죽이려 드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아예 싹을 잘랐어야 했는데...

아들 : 저는 그냥 천장에 있는 그릇을 꺼내려고 했던 거예요! 아파요!

남자 : 요놈이 그래도 거짓말을, 아프다고? 아주 그냥...

여자 : 당신 정말 왜 그래! (가까스로 아들과 남자를 떼어놓고 아들에게) 얼른 방으로 들어가! 아니, 친구 집에 가 있어!

 

아들, 아연실색하여 퇴장.

남자, 씩씩거리며 여자도 뿌리친다. 두리번거리다 환상이었다는 걸 점차 깨닫는다. 하지만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남자 : 저 놈이 날 죽이려고 든다고! 당신은 그걸 왜 보고만 있어. 당신도 한통속이야?

여자 : 미쳤어? 멀쩡히 저녁 준비하던 애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무슨 짓이야. 왜 애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구. 죽이긴 누가 누굴 죽인다 그래? 당신이 애를 죽이겠어.

남자 : 그래, 내가 죽이지 않으면 저놈이 날 죽이겠지! 내가 맞았어. 사주가 맞다고. 그런 건 틀리는 법이 없다니까. 저놈은 날 무슨 닭 보듯 하잖아. 앞으로도 당신을 졸졸 따라다닐 거고, 당신이랑 저놈이랑 언젠간 붙어먹고 날 죽이고 말거야!

여자 :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 애초에 당신이 저 애한테 아버지 노릇이나 제대로 했어? 그저 애만 보면 도끼눈을 뜨고 큰소리만 내는데 어떻게 당신이랑 친해지겠냐고. 엄마가 좋다는 건 그냥 하는 얘기고, 실은 애한테도 아빠가 필요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제발 그 멍청한 소리 좀 집어 치우고...

남자 : 당신한테나 그냥 하는 말이겠지. 내 머릿속에선 아직도 그 사주가 웽웽 울린다고! 얼굴만 봐도 나는 당신을 죽일 거다, 하고 쓰여 있는데 그 얼굴을 보고 어떻게 내가 잘해줄 수 있겠어. 저놈의 자식이 저러다 날 언제 죽이려들지 알 수가 있어야지!

 

남자, 성질을 내며 퇴장.

 

여자 : (퇴장하는 남자의 등에 대고) 바보 같은 소리 좀 제발 그만해! 그냥, 당신이 조금만 더 애한테... 만날 성질만 내면서... 애도 다 안다구.

 

아들 등장. 교복차림이다.

 

아들 : 다녀왔습니다.

여자 : 왔니? 배고프지, 뭐라도 줄까?

아들 : 아니에요, 야자 끝나고 친구들이랑 뭐 사먹고 들어오는 길이에요.

여자 : 그래? 잘했네. 공부하느라 힘들지.

아들 :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요, 뭐. 일하시던 중이셨어요? 요새 일이 많으시네요.

여자 : 늘 그렇지 뭐. 엄마가 바쁘다고 잘 못 챙겨서 큰일이야.

아들 : 제 걱정은 마세요. 늘 알아서 잘 하잖아요.

여자 : 그럼, 엄만 늘 우리 아들 믿지. 그런데 아들...

아들 : 네?

여자 : 혹시 여자 친구 생겼니?

아들 :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여자 : 오랜만에 아들 방을 청소하다가 이런 걸 봤지 뭐야.

 

여자, 식탁에서 피임기구를 들어 아들에게 흔들어 보인다.

 

아들 : 엄마, 그건...

여자 : 중요한 때잖아. 무슨 말인지 알 거야. 엄만 아들 믿는다고 했지?

아들 : 네.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게요.

여자 : 엄마가 복도 많아. 이리와, 오랜만에 한 번 안아보자.

 

아들, 여자에게 다가가 포옹한다.

 

여자 : 어떻게 이런 아들을 낳았을까?

아들 : 뭘요. 아버진 오늘도 안 들어오세요?

여자 : 그러네...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건지. 피곤하겠다. 얼른 씻고 쉬렴.

아들 : 엄마도 너무 늦게까지 일하시진 마시구요. 그러다 병나세요.

여자 : 그래, 고맙다.

아들 : 저, 엄마!

여자 : 응?

아들 : 제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아시죠?

 

여자, 멈칫하지만, 이내 다시 미소 짓는다.

 

여자 : 그럼. 엄마도 우리 아들 많이 사랑해.

아들 : (해맑게 웃으며) 전 늘 엄마 편이에요. 힘내세요.

여자 : 그래. 먼저 들어갈게.

 

여자, 퇴장.

남자, 술병을 들고 비틀대며 만취상태로 등장.

 

아들 : 아버지 오셨어요.

남자 : 내가 왜 네 아버지냐.

아들 : (남자를 부축하며) 아버지가 아무리 절 싫어하셔도, 제 아버지이신 건 안 변해요.

남자 : 그놈의 아버지 소리 좀 관둬. 지긋지긋하다.

아들 : 취하셨어요, 아버지.

남자 : 그만두라니까.

아들 : 싫어요.

남자 : 뭐라고?

아들 : 싫다구요. 아버지.

남자 : 닥치지 못해! 싫으면 내 집에서 나가.

아들 : 싫어요, 아버지. 제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남자 : 내 집이야. 나랑 내 아내가 사는 내 집이고, 누구든지 내 집에서 살려면 내 말을 따라야 해. 그게 싫으면 내 집에서 꺼져.

아들 : 그리고 전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남자 : 난 너 같은 아들 필요 없다.

아들 : 필요 없다구요?

남자 : 그래! 그러니까 그 아버지 소리 좀 제발 집어 치워. 듣기 싫으니까.

아들 : 아버진 정말 제가 없으면 좋으시겠어요?

남자 : 아버지 소리 집어치우랬지!

 

남자, 습관적으로 아들에게 손찌검을 하려고 하는데, 아들, 남자를 밀쳐낸다.

남자, 나동그라진다.

 

남자 : 이놈이!

아들 : 이놈 저놈 소리 그만 하세요. 손 함부로 휘두르는 것도 그만 하시구요.

남자 : 나가! 내 집에서 썩 나가!

아들 : 싫어요! 아버지가 나가세요. 여긴 아버지 집이 아니라 저랑 엄마 집이에요. 제가 싫으면 아버지가 나가요.

남자 : 이 자식이...

 

남자, 아들에게 달려들지만, 아들, 남자를 힘으로 무대 밖으로 끌고 나간다.

아들, 헉헉대며 금방 무대로 돌아온다. 혼란스러워 하다가 자기 두 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본다. 이내 의자에 무너지듯 앉는다.

여자 등장.

 

여자 : 뭐가 이렇게 소란스러워. 아버지 오셨었니?

아들 :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암전.

 

<3장>

명전.

조명 반쯤 올라와 있다.

무대 위에 탁자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여자와 남자가 각각 의자에 앉아 있다.

 

여자 : (자리에서 일어나며)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제 가정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남자 : 그 애는 나를 죽이고 당신이랑 결혼할 거야.

여자 : (귀를 막으며)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정말로 제 가정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남자 : (점점 크게) 그 애는 나를 죽이고 당신이랑 결혼한다고!

여자 : 제발 그만 좀 해!

남자 : 저희는 그 애를 버렸어야 했습니다. 아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애초에 애를 낳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여자 : 애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 : 우리 가정엔 제 자리가 없었습니다.

여자 : 남편은 툭하면 손찌검에, 계속 아이에게 못되게 굴었습니다.

남자 : (자리에 앉으며) 아이도, 아내도, 저에게 냉담했습니다.

여자 : (자리에 앉으며) 저는 저희도 충분히 좋은 가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 : 제 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자 : 저는...

남자 : 내 말 좀 들어봐!

 

조명 최대로 올라간다.

 

여자 : (출근 준비를 하며) 대체 또 무슨 말?

남자 : 애가 나를 패대기쳤다니까?

여자 : 말도 안 되는 소리 자꾸 할래?

남자 : 왜 나를 못 믿어. 애가 나를 집어 던지고 내쫓았다고!

여자 : 이젠 하다하다...

 

아들 등장.

 

남자 : (아들에게) 너 잘 왔다. 어디, 네가 한 번 말해봐라. 어제 네가 나한테 한 짓 말이야!

아들 : 무슨 짓이요? 아버지 어제도 안 들어오셨잖아요. 안 그래도 엄마랑 많이 걱정했어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시죠?

남자 : 집에 안 들어오긴, 네가 날 집 밖으로 쫓아냈으면서! 자꾸 잡아뗄 거냐?

여자 : (아들에게) 정말 그랬니?

아들 : 아니요. 그럴 리가요.

여자 : (아들을 잠깐 보다가)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남자에게 목걸이를 내밀며) 여보, 그 얘긴 그만하고 이것 좀...

아들 : (목걸이를 받아서) 제가 해 드릴게요.

남자 : 당신, 지금 나 말고 쟤 말을 믿는 거야?

아들 : 아버지가 절 아무리 싫어하셔도 그런 말까지 지어내실 줄은 몰랐어요...

여자 : (남자에게) 그만 좀 해. 애 앞에서 창피하지도 않니? 미안해, 아들. 엄마도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아들 :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엄만 오늘도 예쁘시네요. 목걸이 잘 어울려요.

여자 : 고맙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가봐야겠다. 둘이 싸우지 말고. (남자에게) 제발 그만 좀 해.

아들 : 다녀오세요.

 

여자 퇴장.

 

아들 : 정말 멋진 여자예요, 엄마는.

남자 :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네 엄마 앞에서만 시치미 뚝 떼고 말이야.

아들 : (여자가 퇴장한 쪽을 계속 바라보며) 아저씨 같은 사람한텐 정말 아까워요. 아저씨도 알고 있죠?

남자 : 뭐라고? 아저씨?

아들 : 누가 뭐래도 엄만 제 편이에요. 그러니까 헛수고 그만 하세요. 질투 나시죠? 얼굴만 봐도 쓰여 있네요. 아저씨 그 표정,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얼굴이에요. 이제 이 집은 더 이상 아저씨집이 아닌 것 같은데... 그만 나가시는 게 어때요?

 

남자, 아들을 위협하려는 듯 손을 들다가, 아들과 눈이 마주치고, 머뭇거리고, 내린다.

 

남자 : 에잇!

 

남자, 분에 못 이겨하며 퇴장.

아들, 남자가 퇴장한 쪽을 한참 바라보다 무대를 엉망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한쪽 뺨을 스스로 때려서 붉게 만든다. 뺨을 때리는 행동은 일정한 박자를 띤다.

여자, 등장.

 

여자 : 아들, 엄마 왔어... (어질러진 무대를 보고) 집이 이게 무슨 꼴이야.

아들 : 오셨어요.

여자 : 무슨 일 있었니? 응? (아들을 보고) 너, 얼굴이 이게 뭐야.

아들 : 아무 것도 아니에요...

여자 : 아무 것도 아니긴! 빨갛게 부은 것 봐... 설마 아버지가 그랬니?

 

아들, 잠시 여자를 바라보다가, 지친 모습으로 퇴장.

여자, 괴로운 심정으로 무대를 정리하다 결심한 듯 자리에 앉는다.

남자 등장.

 

남자 : (들떠서) 웬일이야? 이런 데서 다 보자고 하고. 이야, 당신이랑 이런 데 온지도 정말 오랜만이네.

여자 : 왔어? 할 말이 있어서 보자고 했어.

남자 : 할 말, 그래 나도 할 말 있어. 여보, 돌이켜보니까 요새 난 정말 빵점짜리 남편이었더라구. 여기 오니까 연애하던 시절 생각도 나고, 정신이 확 드네. 앞으론 내가 정말 잘할게. 우리 사이도 예전처럼 다시...

여자 : 이혼하자.

 

남자, 일순간 정적.

조명 내려간다.

 

남자 : 원고, 원고는 2015년 10월 12일 저녁 9시경 피고를 만난 사실을 기억합니까?

여자 : 네.

남자 : 그 날 원고와 피고가 나눈 대화의 내용도 기억합니까?

여자 : 네.

남자 : 무슨 내용이었죠?

여자 : 아이가 피고의 친자가 아니라는 이야길 했습니다.

남자 : 원고, 원고는 피고에게 왜 그 얘기를 했습니까?

여자 : 그 지긋지긋한 사주에서 우리 모두를 해방시키고 싶었습니다.

 

조명 올라간다.

 

남자 : 말이면 다야? 그럼. (크게) 그럼 애는 누구 앤데?

여자 : 그건... 당신이 모르는 사람이야. 말해도 몰라.

남자 : 그럼 그걸 대체 왜 이제야 얘기하는 거고?

여자 : 당신이 너무 힘들어 하잖아. 애가 당신 죽인다고. 그리고, 이젠 나도 지쳤어. 툭하면 술 마시고 들어와서 난리 피우고 애한테 손대고, 못 참아.

남자 :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뭐가 어쩌고 어째?

여자 : 진작 말 못해서 미안해. 당신을 사랑해서 그랬어. 당신이랑 헤어지기 싫어서.

 

조명 내려간다.

 

남자 : 피고?

여자 : 나 당신 정말 사랑했어.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 아이를 낳았고,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을 닮은 그 아이도 사랑하게 됐어. 그래서 그 애를 살리고 싶었어. 나는 내가 현명한 결정을 내린 줄 알았어. 그 결정이 당신을 이렇게 만들 줄은 몰랐어. 당신은 정말 멋졌고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했는데.

 

조명 올라간다.

 

여자 : 더는 아니야. 안 될 것 같아. 확실히 하자. 똑똑히 알아둬. 당신은 애 아버지 아니고 그러니까 당신이 그렇게 무서워하는 일도 없을 거야. 친아들이 아니니까. 이혼하자. 위자료도 잘 챙겨서 줄게. 당신도 술 좀 그만 마시고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려.

남자 : 그걸 말이라고...

 

남자,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려고 할 때, 아들 등장.

아들, 남자를 발견하고 달려들어 막는다.

 

아들 :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남자 : 이거 놔!

아들 : 엄마한테 무슨 짓이에요. 저로 모자라서 이젠 엄마한테까지 손을 대세요?

남자 : 끼어들지 말랬지! (아들의 멱살을 잡으며) 남의 새끼를 20년이나 키웠다니!

아들 : 남의 새끼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남자 : 내가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이놈이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여자 : 그만 해, 여보!

아들 : 그만 좀 하세요!

 

아들, 남자를 내동댕이친다.

 

아들 : 아버지한테 갚아야 할 은혜 같은 거 없어요!

남자 : 너...

아들 : (위협하며) 한 번만 더 이래보세요. 다음엔 이 정도로 안 끝날 테니까.

 

남자, 겁먹은 얼굴로 아들을 쳐다보다 도망치듯 퇴장.

 

아들 : (남자가 퇴장한 쪽을 멍하니 보다가) 엄마, 괜찮으세요?

 

여자, 놀라서 아들의 뺨을 때린다.

 

여자 : 아버지께 무슨 짓이야!

아들 : (당황해서) 엄마...

여자 :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어떻게 아버지에게 손을 댈 수 있어!

아들 : 그럼 아버지는요!

여자 : 뭐?

아들 : 아버지가 아들을 때리는 건 괜찮고,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는 건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 방금은 엄마가 부당하셨어요. 저는 엄마를 위해 아버지께 대들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술주정뱅이 남편 때문에 저를 때리셨죠. 어머니는 저보다 그 작자를 더 사랑하시는 거예요!

여자 : 그런 문제가 아니야.

아들 : 그런 문제가 아니면요!

여자 : (아들을 바라보다 조용히) 우리 아들, 엄마를 사랑하니?

아들 : 세상 무엇보다요. 왜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세요.

여자 : (머뭇대다 아들의 뺨을 어루만지며 횡설수설하듯) 그런 것처럼 아버지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이해해줄 순, 사랑할 순 없을까? 네 아버지잖니. 어렵겠지만 너는 그래야 해. 왜냐하면... 네 아버지니까... 엄마를 봐서라도...

아들 : (여자의 손을 잡고 얼굴에서 떼어내며) 저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건 엄마가 엄마라서가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저는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사랑할 순 없어요.

여자 : (흐느끼며) 미안하다... 이젠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 아빠가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냥 너무... 이젠 엄마도 지친 거 같아. 미안해 아들, 엄마도 아빠도 밉겠지만 너무 원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이것도 다 욕심이겠지.

아들 : 제가 엄마를 왜 미워해요.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뭐든 간에 전 엄마가 더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그거면 돼요.

여자 : 고맙다, (눈물을 닦으며) 이게 무슨 꼴이야...

아들 : (여자의 손을 막으며) 아니에요, 예뻐요.

여자 : 눈물범벅인데 무슨...

아들 : 정말 예뻐요.

여자 : 말이라도...

아들 : 사랑해요.

 

아들, 여자에게 키스한다.

 

여자 : (놀라서) 무슨...

아들 : (소리 내어 웃으며) 그래서 결국엔, 저 친아들 아닌 거 맞죠?

여자 : 무슨 소리야, 그게.

아들 : 남의 자식, 친아들처럼 키워주신 거 감사드려요. 네, 아버지도 이해할게요. 친아들이 아니니까 그랬겠죠. 오히려 전 친아버지가 아닌 게 기뻐요.

여자 : 네가 왜 우리 아들이 아니야. 혹시, 방금 네 아빠가 한 말 때문에 그래? 그건 그냥...

아들 : 좀 놀라긴 했어요. 계부도 이것보단 잘해주겠다 싶긴 했지만, 진짜 친자식이 아니었을 줄이야. 이런 식으로 알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해서 그렇지... 괜찮아요.

여자 : 오해라니까. 엄마 말 좀 들어봐.

아들 : 전 정말 괜찮아요. 그냥 좀 놀라서 그래요, 놀라서. 그런데... 전 왜 친엄마가 아니란 얘길 들으니까 더 마음이 놓이죠? 오래 전부터 아버지가 엄말 힘들게 할 때마다 지켜주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저런 사람보단 내가 엄마를 기쁘게 해줄 수 있다, 늘 그런 마음이 들었단 말이에요.

여자 :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아들 : 자꾸 그런 마음이 자꾸 들어서 곤란했었는데, 애써 억눌렀는데, 그럴 필요 없는 거죠. 이젠 됐어요. 이혼하세요. 그리고...

여자 : 뭐?

아들 : 어떻게 생각하실지 저도 잘 알아요. 미친놈 같을 거 안다구요. 그래도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나도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로 태어나길 선택하지 않았어요. 수백 번 바랐어요. 그리고 마침내 제 소원이 이루어진 거예요.

여자 : (아들을 밀쳐내며) 그런 게 아니라니까!

아들 : 그 사람은 엄마를 외롭게 만들기만 했어요!

여자 :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니!

아들 : 뭐가 문제죠? 지난 20년 동안 모자사이였다고 앞으로도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미 다 알게 된 지금 와서.

여자 :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들 : 숨길 생각 마세요. 저를 보던 엄마 눈빛, 제가 모를 거 같으셨어요? 제 착각이라곤 하지 마세요. 저를 보는 엄마 시선, 아들 이상이라는 거, 저도 그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어요. 저에게 점점 더 확신을 줬던 건 다름 아닌 바로 그거니까.

 

남자 등장. 무대 한 편에 서서 여자와 아들을 바라본다.

 

남자 : 그 애는 당신이랑 결혼할 거야.

여자 : (남자에게) 당신도 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남자 : (점점 크게) 그 애는 당신이랑 결혼할 애라고.

여자 : (남자에게) 또 이상한 소리 한다. 그 앤 내 아들이야. 어떻게...

 

여자, 점차 묘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게 된다.

 

아들 : 우리 조금만 더 솔직해져요. 정말 날 남자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남자 : 그 애는 당신이랑 결혼할 거라니까.

여자 : (뒤돌아 외면하며) 그 얘기 좀 그만해!

아들 : 엄마도 행복해지셔야죠. 그럴 자격 있으세요. 지금 놀라고 혼란스러우실 거예요. 아마 시간이 필요하겠죠. 그래도 전 진심이에요. 저는 아버지가 엄마께 줄 수 없었던 것들, 다 줄 수 있어요.

남자 : 그 애는 당신이랑 결혼한다고.

 

아들, 여자에게 다가가고, 여자, 고개를 돌리는데 미소를 머금고 있다.

 

남자 : 그 애는 당신이랑 결혼한다고.

 

암전.

 

<4장>

명전.

무대엔 아들과 남자가 마주보고 앉아있다.

 

아들 :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남자 : 아 예, 집사람이 조금 바빠서.

아들 : 네, 그렇겠죠. 학창시절부터 워낙 욕심이 많은 친구였으니까요. (차트를 보며)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죠?

남자 : 저... 이런 말씀 드리는 게 민망하지만. 혹시 친자 검사를... 좀 해볼 수 있을까 하고.

아들 : (고개를 들고) 친자 검사요?

남자 : 예, 뭐 별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확인을 해보고 싶어서요.

아들 : 아내분이랑은 상의가 된 겁니까?

남자 : 뭐, 네. 그런 셈입니다.

아들 : 결국엔 친아들이 아닐 거라는 생각까지 하신 거군요.

남자 :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아들 : 솔직히 말씀드리면 친자 검사를 해드려야 하나 싶습니다. 친자면 어떻고, 친자가 아니면 어떻게 하실 거죠?

남자 :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들 : 이미 마음속에서 결론을 내려놓고 계신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남자 :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저는 아이가...

아들 : 아이가요. 어느 쪽이길 바라십니까?

남자 : 그거야... (말문이 막힌다.)

아들 : 일전에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애는 조금만 잘해줘도 금방 친해질 수 있다구요. 이제라도 마음을 여시고...

남자 : (일어나며) 제기랄, 설교는 됐고 친자 검사나 해줘요! 그 놈이 나를 쳐죽일 놈인지, 내가 정말 남의 새끼를 20년이나 키운 건지, 도대체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뭘 한 건지, 어쩌다,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 (다시 앉으며)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을...

아들 : 지금 남편 분께선 친자 검사보다 다른 게 더 필요해보입니다만... 네. 사정은 몰라도 필요하다면 해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결과 받아보시길 바라겠습니다.

남자 : 감사합니다. 집사람한텐 비밀로 해주십시오.

아들 : 아무렴요.

 

남자, 도망치듯 퇴장.

아들, 가운을 벗어 한 곳에 치워둔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

여자 등장.

 

여자 : 설마 벌써 저녁 한 거 아니지? 먹을 거 사왔는데.

아들 : 왔어. 늦었네.

여자 : 요새 일이 많아. 점심도 못 먹었다니까. 요리하기가 어찌나 싫던지, 그냥 요 앞에서 오면서 사버렸어. 식기 전에 먹자. 내가 상 차릴게.

아들 : 괜찮아. 난 안 먹을래.

여자 :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들 : (일어나며) 먼저 들어갈게.

여자 : (아들을 잡으며) 표정이 왜 그래. 응? 얘기 해봐.

아들 : 아니라니까.

여자 : 아들...

아들 : (여자의 손을 뿌리치며) 아들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여자, 놀라서 한 걸음 물러선다.

 

여자 : 미안...

아들 : 대체 이혼은 언제 하려고 그래?

여자 :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니.

아들 : 맨날 말뿐이잖아. 대체 언제 이혼하시냐구.

여자 : 곧 할 거야. 해야지. 이혼이란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호적만 그렇고 실제론 이제 남이잖아. 그런 건 그냥... 형식적인 거야. 신경 쓰지 말자, 응?

아들 : 나는 그 인간이 싫어. 네가 그 인간이랑 조금이라도 연결돼 있다는 게 싫어.

여자 :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얘기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

아들 : 나는 그 사람이 미워.

여자 : 그만.

아들 : 나는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그 인간이 나한테 했던 짓들, 우리 힘들게 만들었던 거, 그것들만 생각하면 지금 당장 목이라도 졸라 죽이고 싶다고.

여자 :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아들 : 그러니까 네가 빨리 이혼을 하라고! 솔직히 말해봐, 아직 마음 남아있는 거 아니야? 이러다 그 새끼한테 또 가버리려고 그러는 거잖아.

여자 : 아니래도. 몇 번을 말해.

아들 : 맞아.

여자 : 아니라니까.

아들 : 맞아.

여자 : 넌 지금 내가 얼마나 큰 용기를 내고 있는 건지 정말 이해 못하겠어?

아들 : 날 사랑해?

여자 : 당연한 소리를...

아들 : 아들로서 말고, 애 보듯 하는 거 말고, 진짜 남자로 사랑해?

여자 : 왜 그렇게 불안해 해. 사랑해. 사랑하지. 누구도 나만큼 널 사랑할 순 없을 거야. 수백 번 고민해봤어. 나 이래도 되는 걸까? 잘 하고 있는 걸까? 우리 다 괜찮은 걸까? 그렇게 고민해서 하는 말이야... 사랑한다구.

아들 : 증명해.

 

아들과 여자, 키스한다.

 

조명 낮아진다.

남자 등장.

남자 :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대체 뭘 잘못했습니까. 저는 단지... 무서웠을 뿐입니다. 한시도 그 사주가 머리를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여자 :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아이를 타일렀고, 남편을 달랬고, 이이가 아무리 술을 마시고, 매일 밤을 혼자 지새우게 했어도 참았습니다. 제 선택이 옳았다고 믿었고, 옳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요. 그동안 이 사람은 뭘 했죠?

남자 : 사주는 틀리는 법이 없으니까요, 암요... 사주라는 건 말입니다, 사주라는 건...

여자 : 존경하는 재판장님, 증인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아들, 무대 한 가운데로 걸어나온다.

 

아들 : 선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여자 : 증인은 피고를 알고 있나요?

아들 : 네. 알고 있습니다.

여자 : 증인과 피고는 어떤 사이죠?

아들 :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여자 : (서류를 보며) 친자 검사 결과엔 유전자가 100프로 일치한다고 되어 있는데요.

아들 : 부자 관계가 아닙니다.

여자 : 증인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있나요?

아들 :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엄마가 더 잘 아시잖아요.

 

아들 퇴장.

남자, 의자에서 일어나 여자에게 다가와 매달린다.

 

남자 : 여보, 우리 이혼하지 말자.

여자 : 그 얘기 하려고 불렀어? 오늘은 도장 찍어주려는 건 줄 알았는데.

남자 :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어. 나 당신이랑 이혼 못 해. 당신이랑 나랑 어떻게 헤어져.

여자 : 나 때문에 당신 자식도 아닌 애를 20년이나 키우고 고통 받았어. 내가 나쁜 년이야. 그러니까 나 실컷 욕하고 미워하라고.

남자 : 안 미워. (품에서 종이를 꺼내며) 유전자 검사 했어. 내 친자식 맞잖아. 당신 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해. 나 이제 사주 신경 안 쓸게. 상관없어. 나 당신 없인 못 살아...

여자 : 아무리 그래봤자 이미 늦었어. 솔직히 당신, 내가 당신 애 아니라고 했을 때 기뻤잖아. 배신감보다 안도감이 컸잖아. 그게 당신 솔직한 마음이고, 이러는 게 우리 모두한테 나아. 당신은 애 얼굴도 보기 싫어하는데 어떻게 더 한 집에서 살겠어.

남자 : 애 말고, 우리 둘만 살자. 어차피 애도 다 커서 성인이고. 애는 독립하라고 하고, 우리 둘이 잘 살면 되잖아. 예전처럼. 우리 좋았잖아. 눈앞에서 안 보이면 나랑 애랑 부딪혀서 문제 일으킬 것도 없을 거야.

여자 : 내가 지쳤다니까. 왜 이렇게 못 알아들어, 우린 끝난 거야.

남자 : 아니라니까, 끝나긴 뭘 끝나. 나 당신 없이 못살아. 나 죽어.

여자 : 늦었다고 몇 번을 말해. 그만 하자. 갈게. 당신도 당신 인생 잘 살아.

남자 : 너 남자 생겼니?

여자 : 대체 어디까지 구질구질하게 굴래?

남자 : (여자를 가로막으며) 나랑 산다고 하기 전까진 못 가.

여자 : 비켜, 당신 정말 왜 이래!

남자 : (무릎 꿇고 빌며) 내가 잘 할게. 누군진 몰라도 그놈 말고 나한테 와. 지난 20년 동안 당신 내 편 들어준 적 없었잖아. 한 번만 나 선택해. 응?

여자 : 기억 안나? 우린 20년 전에 이미 한 번 서롤 선택했었어. 그리고 함께 또 많은 선택을 했지. 그 중 어떤 게 우리 둘을 갈라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 20년 전에 나한테 그 애를 다시 안겨줬던 건 고마워. 여기서 그만 정리하자. 우린 여기까지야.

남자 : 내가 다 잘못했다니까!

여자 : (무시하고 지나치려다)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했어. 당신이 말이야, 당신 그 잘난 능력이 없었으면. 그럼 우린 어떻게 됐을까 하고. 당신이 애 사주를 안 봤으면 어떻게 됐을까. (혼잣말하듯) 있잖아, 우리 애. 결국 고아가 되어버렸네. 참 웃겨. 부모도 없을 애한테 너무 과분한 사주였지 뭐야.

 

여자, 퇴장하다 무대 중앙에 멈춰 서서,

조명 낮아지고,

 

여자 :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확실하게 이 사람이랑 이혼하고 싶습니다.

 

여자 퇴장.

아들 등장, 남자에게 다가간다. 한쪽 무릎을 꿇고 남자를 보며 대사를 친다.

 

아들 : 피고, 피고는 증인을 알고 있습니까?

남자 : 네.

아들 : 피고는 원고가 제시한 이혼 사유가 합당하다고 생각합니까?

남자 : 아니요.

아들 : (남자를 일으켜 의자에 앉히며) 피고는 아직도 원고를 사랑합니까?

남자 : 네.

아들 : 피고, 피고는 아침에는 다리가 네 개, 점심에는 다리가 두 개, 저녁에는 다리가 세 개인 동물을 알고 있습니까?

남자 : 사람... 말입니까?

 

조명 올라간다.

 

아들 : 와, 역시 아저씬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남자 : (어색하게 웃으며) 그거야, 뭐...

아들 : 웬일로 아저씨가 저를 보자고 다 하시고.

남자 : 아버지를 자꾸 아저씨라고 부르니 불편하구나.

아들 : 아버지? 누가요? 저 같은 아들 필요 없다면서요. 무슨 얘기 하려고 절 부르셨어요.

남자 : 네가 네 엄마 좀 설득해다오. 내가 말하는 건 통 듣지를 않아. 이혼이라니! 이번엔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야.

아들 : 엄마는 정말 이혼할 작정이에요.

남자 : 네 엄마가 화를 무섭게 내서 그렇지, 정말 그럴 마음은 없을 거야. 내가 잘 알지.

아들 : 제가 더 잘 알아요. 엄마는 정말 이혼할 작정이에요.

남자 : (버럭 화를 내며) 너는 네 아빠랑 엄마가 이혼했으면 좋겠니?

아들 : 저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저씨랑 있으면 엄만 안 행복해요. 그냥 빨리 이혼이나 해주세요.

남자 : 그놈의 아저씨 소리 좀 그만 해라.

아들 : 그럼 아저씨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저씨.

남자 : 아버지라고 부르면 되잖아!

아들 : 아버지요? 당신이? 사실 저는 아버지가 뭔지도 잘 모르겠어서요. 있어본 적이 있어야죠. 낳아준 사람? 키워준 사람? 구박하던 사람? 제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기 이전에도 사실 저한테 아버지 같은 건 없었거든요.

남자 : 친아들이 아니라니?

아들 : (코웃음치며) 남의 새끼 20년 키웠다고 소리 지를 땐 언제시고. 벌써 까먹으셨어요?

남자 : 네 엄마가 너한테도 그렇게 얘기하디? 네가 내 아들 아니라고?

아들 :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저씨랑 더 할 얘기 없어요.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것도 불쾌하네요. 도장이나 빨리 찍어주세요. 더 질척대지 말고. 안 그러면 제가 어떻게 나올지 저도 몰라요... 어차피 아버지도 아닌 마당에. 그쵸?

남자 : 뭐라고?

아들 : (남자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예전엔 그렇게 집에 안 들어오시더니, 왜 이제 와서 결혼생활에 미련을 두세요. 물론 매일 술 드신다고 집 비워주신 건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명, 내려간다.

 

아들 : (관객 쪽을 바라보고) 선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피고는 수년 간 저와 원고인 저희 어머니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으며, 가장으로서의 의무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수행한 적 없습니다. 그동안 저와 어머니는 피고로 인해 고통 받았고, 어머니의 이혼에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혼 청구를 받아들여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남자 : (아들의 멱살을 잡으며) 이놈! (객석을 향해) 거짓말입니다, 죄다 거짓말이에요! 오히려 저를 죽이려 든 건 이놈이에요. 이놈이 문제라구요! 네가 어떻게 아버지한테 이럴 수가 있어! 기어이 나를 죽일 셈이냐? 아버지 좀 살려다오...

아들 : 아저씨,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아침에는 다리가 네 개, 점심에는 다리가 두 개, 저녁에는 다리가 세 개인 동물이 뭔지 아세요?

남자 : 수수께끼 놀음은 집어 치워!

여자 : (목소리만) 그것도 몰라? 그건 사람이잖아.

 

여자 등장.

 

남자 : 여보! 여보, 잘 왔어. 이리 와서 이 자식 좀 말려봐. 우리 정말 이혼하는 거 아니잖아. 응? 이놈이 기어이 다 망치려 들고 있어.

여자 : 우리 아들! 맘마 먹어야지!

 

아들, 기어서 여자에게 간다.

 

아들 : 엄마!

여자 : 어머나, 우리 아들이 말을 했어! 어쩜 이렇게 똑똑할까.

 

아들,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자 : 우리 아들이 벌써 이렇게 다 컸네!

 

아들, 한쪽 무릎을 꿇고 품에서 반지를 꺼내 한 손으로 여자에게 바친다.

 

남자 : 설마... 설마 너희들...

 

아들,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남자에게 다가간다.

아들, 남자에게 귓속말을 하려는 듯 얼굴을 가까이 댄다.

 

아들 : 짜잔, 사실 정답은 정확하게 말하면 남자 사람예요. (놀리듯이) 그렇다면 저녁에만 생기는 세 번째 다리는 어디 있을까요?

여자 : 아이 참. 짓궂기도 해라.

남자 : 뭐라고? 지금 둘이 뭣들 하는 거야! 제정신이야?

아들 : 안타깝게도 아저씨는 정답에 포함이 안 되는 거 같네요. 저녁에도 다리가 두 개잖아요. (여자를 보며) 그쵸?

여자 : (웃으며) 그러게나 말이니.

남자 :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남자, 아들의 멱살을 잡으려 하지만, 아들, 빠르게 몸을 일으키고, 남자, 허공에서 허우적댄다.

 

여자 :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이 사람과 이혼하고 싶습니다. 빨리 처리해주세요!

아들 : 부탁드립니다, 재판장님!

남자 :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저 사람은 뻔뻔하게 부정을 저지르고 있고, 그것도 저 놈이었어, 어떻게, 자식이랑... 저는 저 사람에게 한 점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저 사람뿐입니다. 이혼 못합니다. 제가 바랐던 건 이런 게 아닙니다. 저는... (여자와 아들에게) 어떻게 엄마랑 아들이! 창피하지도 않아?

아들 : 누가 자꾸 엄마랑 아들이라는 거야?

남자 :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며) 누가 엄마랑 아들이냐고? 이 더러운 자식... 내가 네 애비고 저 여자가 네 애미다!

여자 : (남자에게 다가가 검지 손가락을 남자의 입에 대고) 쉿! 그만. 우린 결혼할 거야.

남자 : (아연실색하여) 뭐? 결혼 한다고?

여자 : 그래. 당신 사주 기억나?

남자 : (겁에 질려서) 저 애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여자 : 저 애 아버지가 누구야? 혹시 당신은 알아?

남자 : 어머니와 결혼하고, 아버지를...

여자 : 나는 저 애 아버지가 누군지 도통 모르겠어서.

 

여자, 남자의 손에서 종이를 뺏어서 갈기갈기 찢어 날려버린다.

조명, 내려간다.

 

여자 : 피고, 피고가 제출한 서류가 뭔가요? 증인이 피고의 친자임을 증명하는 문서인가요?

남자 : 그게 말입니다... 저...

여자 : 증인은 피고의 친자가 아니라는 원고의 주장은 거짓입니까?

남자 : 잠시 생각할 시간을...

 

조명, 올라간다.

 

아들 : 자기야, 저 사람이 뭐라는 거야? 도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여자 : (찢겨진 종이를 발로 차며) 글쎄, 알고 싶지 않아. 모르는 게 나을 거 같아. 뭐, 세상엔 상식 밖의 일들도 있는 법이잖아?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아.

아들 :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 말이 맞겠지.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갈까? 배고프다.

 

아들과 여자, 돌아서서 유유히 퇴장하려 한다.

 

남자 : 어떻게 엄마랑 아들이! 창피하지도 않아?

아들 : (돌아보며) 그러게요.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한테! 창피하지도 않으셨어요?

 

암전.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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