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벌레

이가은

 

나는 이야기할 것이다. 이야기의 끝에 내가 정확히 닿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말은 나를 몰아간다. 아, 이렇게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이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나의 집에 벌레가 산다. 비록 사람들이 사는 거리에서 동떨어진 한적한 교외에 서있긴 하지만 작고 아담하며 아늑한, 혹은 이전까지는 그랬을 나의 집에 오래 전부터 벌레가 산다. 오래 전이라고는 하지만 언제부터인지는 알 길이 없다. 벌레라는 것은 항상 보이다가도 보이지 않는, 그러다가도 이젠 없겠거니 하고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는 바로 그 때에 냉장고 밑에서 슬그머니 기어 나오는 그런 종류이기에.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한참을 벌레와 싸워왔던 것이다.

그것이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인류의 역사는 혐오스러운 벌레들과의 전쟁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도무지, 이렇게나 크고 자신을 숨기지 않는 벌레는 본 일이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역사에서는 그렇다. 혹은 나의 집 곳곳을 다니며 아늑하고도 텁텁한 많은 것들을 먹어치워 몸집을 불려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나도 모르게? 나는 모든 것에 확신이 없다. 더 이상은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조차 어렵다. 벌레가 또 다시 쿵쿵대며 바닥을 차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온다.

나의 집에서 가장 따스하고 편안했던 나의 공간인 나의 다락방은 이제 벌레의 서식처가 됐다. 나는 벌레가 한 자리에 머물러있기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일이 없다. 내 생각에 벌레는 항상 집안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집 주인의 눈에 띄어 그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데 사명을 두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짐과 나타남을 반복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벌레가 나의 다락방을 둥지로 삼은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고 뻔뻔하게 말이다.

벌레는 비대하고 딱딱한 몸뚱이쯤은 나의 침대 위에 얹어 놓고 배가 고프거나 불쾌할 때, 혹은 기분이 좋을 때면 기다란 다리를 휘둘러 바닥을 쳐서 쿵쿵 소리를 내곤 했다. 나는 그 소리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 발소리들과 그 의미 사이에 어떤 미묘한 체계가 있는 것인지 분간해보려고 애썼으나 아직까지도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배가 고프단 뜻이라면 먹을 것을 챙겨서 올라가봐야 했으며, 불쾌할 때에 올라갔다가는 벌레가 집어던지는 물건들에 머리를 맞게 될 것이다. 나의 머리에 와 부딪치는 그 물건들이 모두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 이를테면 나의 완성된 혹은 미완성 상태의 그림들이나 갖가지 화구와 같은 것들이라는 점이 더욱 마음 아프다.

그러나 그중 최악은 벌레가 기분이 좋을 때다. 이때 벌레는 먼저 나를 그 자신의 옆에 앉혀 놓는다. 비대한 몸집과 상반되게 가늘고 기다란 다리로 내게 어깨동무라도 해올 때면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혐오스러움과 그보다도 더 큰 두려움에 치가 떨린다. 벌레는 나를 향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달에 한 번 나는 번화가로 간다. 아담하고 투박한 나의 붉은 벽돌집 옆에 기대어 쉬고 있는 오래된 나의 자동차는 한 달에 딱 한 번만 몸을 일으킨다. 나는 자동차의 시동을 거는 데도 매번 애를 먹는다. 언젠가는 정비소에 차를 가져가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차의 문제가 가벼운 것이 아니라서 이를 단 하루라도 정비소에 맡겨둬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나는 나의 집으로 돌아올 방도가 없다. 걸어오기에는 너무 먼 길이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집을 둘러싼 거대한 들판은 그저 적막하니 텅 비어있고 간혹 나무만 수풀처럼 무더기로 자라나 있을 뿐 다른 집이나 어떤 종류의 건물도 보이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적한 곳이다. 나는 차가 아니고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주유소에 들러 차에 기름을 채운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고른다. 나는 항상 한 사람 치의 일주일분 재료만을 카트에 담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식재료라는 단어에서 연상하기 쉬운 신선하거나 푸릇푸릇한 종류의 것들은 아니다. 대부분 통조림과 레토르트식품류로 이루어진 이 식단에서 푸른 것이라고는 그것들을 담는 비닐봉투가 전부인 것이다.

주유소와 마트까지가 보통의 매 주말마다의 일정이다. 오늘은 흔치 않게도 한 가지 일정이 더 남아있다. 나는 카페 문밖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약속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카페 안을 들여다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어쩌면 그 사람은 오지 않는 게 아닐까. 시간이 되기 전에 이 자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울렸다. 숨이 찼다.

처음으로 머리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온 건 그날이었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신경을 긁어 왔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 나의 말을 좀 들어 봐, 하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계속 머리를 맴돌며 나를 괴롭히는 그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 나의 다락방임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나는 다락방에 살아왔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 옛날 이 붉은 벽돌집을 처음 세웠던 그 사람으로부터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이 집을 거쳐 간 모든 이들은 다락방에 살아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의 집이었다. 도시와는 다른 시간의 축을 가진 듯 이 들판은 어느 계절에나 선선했고, 그 선선함이란 집의 내부에 이르러서는 싸늘함으로 해석돼버리고 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집에서 난방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벽난로 하나뿐이었다. 일 년 내내 벽난로에 항상 주홍빛 불을 지펴 놓아야 했다. 그렇게 해도 벽난로의 온기는 손바닥만한 거실에나 겨우 미칠 뿐이었고, 하나 있는 방은 언제나 손발이 덜덜 떨리도록 추웠으므로 창고로 사용하는 밖에는 다른 용도가 있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항상 따뜻하고 아늑한 곳이 나의 다락방이었다. 벽난로에서 데워진 공기가 직접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구조인 것으로 보아, 아마 나의 집은 첫 설계에서부터 다락방을 생활의 기본 터로 잡을 구체적 구상이 있었던 것이리라.

괜찮습니다. 별로 많이 기다린 것은 아니에요. 이런 만남은 사실 처음이라 조금 긴장해있습니다. 우선 들어가지요.

저는 아무것이나 괜찮습니다. 그냥 가장 보통 커피로 한 잔, 시원한 것으로. 아, 그렇습니까? 겨울에는 아이스커피가 없는 거군요.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신기하군요. 이 카페 안은 무척 따뜻한데, 왜 모두들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거죠?

이층도 있습니까? 다락방인가요? 아니군요. 이층으로 올라가도 될까요? 일층에는 사람이 좀 많네요. 제가 사람 만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닙니다, 연락 주신 것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오해받는 것을 싫어할 뿐입니다. 예전에 많은 오해와 몰이해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던 탓입니다. 저는 단지 민감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예, 올라가서 이야기하죠.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길은 창고 방 문 옆에 비스듬히 설치된 사다리가 유일했다. 내가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땐 사다리가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다락방으로 올라갈 땐 사다리를 다락방에 걸쳐지도록 옮겨서 사용해야 했다. 다락방에서 내려오면 다시 사다리를 떼어 벽에 기대어 놓았다. 왜 그런 번거롭고 불필요한 행동을 매번 해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건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의 상태로 유지해둬야 할 것 같은 어떤 강박과도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다락방에서 내려오려다가 사다리를 넘어뜨린 일이 있었다. 사다리는 바닥에 쓰러져버렸고 나는 여전히 다락방에 있었으므로 그 날 나는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고생을 좀 해야 했다. 여러 방도를 고민했지만 결국 택한 것은 침대 시트와 이불, 베개를 바닥에 던져 놓고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그 날 새하얀 이불 속으로 뛰어내리며 나는 반드시 사다리를 손봐놓아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창고 방을 뒤져 망치와 못통을 꺼내 왔다. 손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로 완전히 얼어 있었다. 내가 구매하거나 사용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전 집주인이 두고 간 물건일 것이다. 못통 안에는 못이 열 개가량 남아있었는데, 그 중에 휘거나 녹이 슬지 않은 것은 대여섯 개 뿐이었다.

못을 삼킨 날이 있었다. 말을 할 수 없었던 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길었다. 나의 말은 절뚝대며 혀끝에서 흘러내리기만 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누군가의 귀를 나에게로 붙잡아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이 힘든 일이었다. 축축한 나의 혀를 비틀어버리고 싶은 날들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말하려 했다.

혀마저 뻣뻣하고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날이면 나는 그림을 그렸다. 혀를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나는 펜을 다루는 것에도 서툴렀다. 빨간 볼펜 하나가 전부였지만 어떻게든 그려나갔다. 그림을 그릴수록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아졌다. 나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긁어대고 있었다. 나조차 이해하고 싶지 않은 그림들이 종이마다 쌓여갔다.

마침내 펜과 종이마저 빼앗기고 나는 맨몸으로 남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구석에 처박혀 입만 뻐끔뻐끔하다가 못을 하나 주웠다. 바닥을 긁어도 벽을 긁어도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못의 머리를 손에 움켜쥐고 나의 팔에 그어보았다. 삐쩍 마른 팔을 타고 붉은 선이 지나갔다. 선명한 붉음이 너무 아름다웠다. 혀처럼 빨간 볼펜처럼 붉음이란 언제나 그 자체로 말이었다. 나는 온 몸이 저릴 때까지 긋고 또 그었다. 붉음은 나를 민감하게 했다. 나는 그 붉은 빛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흐르듯 내 눈 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눈동자 한 구석을 욱신거리도록 시큰하게 만드는 그 빛깔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번에는 나에게 못을 달라 했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입 속에 넣었다. 못이 딱딱한 나의 혀를 몇 번이고 할퀴었다. 언제나 나의 입을 다물게 했던 그들이 이번에는 나의 입을 벌리려 들었다. 그래서 나는 못을 삼켰다. 나의 혀와 입천장과 후두를 찢으며 못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서툰 손으로나마 못질해 사다리를 다락방에 고정시켜놓고 보니, 원래 사다리를 기대어 놓았던 벽이 텅 비어 보였다.

거울이 떠올랐다. 다락방은 지붕에 맞게 사각뿔 형태로 벽이 기울어 있었으므로 거울을 달아놓을 곳이 없었다. 나는 또 다시 창고에서 거울을 찾아 왔다. 먼지가 텁텁하니 가득 쌓여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으나 다행히 깨진 데는 없었다. 그 날 남은 반나절을 온통 거울 닦는 데에 쏟고 나서야 그나마 얼굴이라 할 만한 형상이 비쳐 보이기 시작했다. 거울의 오른쪽 아래 모서리 부분이 갈색으로 바래서 오른쪽 볼과 턱에 그늘이 지는 것쯤이야 무시할 만했다. 그 이후 나는 다락방에 올라갈 때마다 한 번씩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고서야 사다리를 오르게 됐다.

지금도 기분이 얼떨떨합니다. 제 그림을 좋아하는 분이 있으실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아직껏 변변찮은 전시회 한 번 해본 적 없으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단독 전시회라니, 정말 꿈만 같네요.

질문이요? 예, 마음껏.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인다니, 그림에서 그게 느껴졌습니까? 전달됐다니 기쁩니다. 저는 정말 말을 하고 싶습니다. 혹은 말이 저를 하고 싶어 한다고 할까요? 언제나 저를 먼저 끌고 가는 것은 말이니까요. 제가 그림 속에서 항상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나의 집에 사는 벌레 이야기였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 나의 말을 좀 들어 봐. 다락방에 벌레가 있었다. 반들반들한 갈색 각피로 둘러싸인 몸은 거대해 나와 맞먹을 정도였고, 가늘고 긴 여섯 개의 다리는 쭉 뻗어 허공에서 흔들고 있었다. 등판에는 갈색 날개 같은 것도 두 장 있었으나 비대한 몸뚱이를 지탱하기에는 너무 작아 보였다. 아마 오랜 옛날에는 날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퇴화돼 마치 장식처럼만 남아버린 것이리라. 머리 또한 몸체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작았다. 벌레가 검은 눈과 검은 입ㅡ아니 그것이 입일까, 혹은 부리나 주둥이가 아닐까ㅡ을 나를 향해 끊임없이 끔쩍끔쩍대고 있었다.

처음의 느낌은 분명한 이질감이었다. 그 크기 때문이었을까. 벌레는 정말이지 나와 비슷할 정도로 컸으니까. 사람과 너무 닮은 인형을 볼 때 목 뒤가 서늘하도록 소름끼치는 것처럼, 그 이질감이란 유사성과 본질적으로 함께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벌레를 응시하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서로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벌레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검은 입을 끔쩍대며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의 집에는 벌레가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그 벌레가 참 싫습니다. 그 벌레가 눈에 띌 때마다 아주 짓밟아 죽여 버리고 싶어집니다. 아뇨, 그런 종류의 벌레가 아닙니다. 아주 끈질기고, 기분 나쁜 녀석입니다. 아마 내가 나의 집에 들어가 살기 오래 전부터 벌레는 그곳에 쭉 살아왔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을요.

나는 알고 있다. 벌레는 언젠가 나를 죽이고 말 것이다. 나의 다락방을 빼앗은 것으로 부족해, 언젠가는 나의 집을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 나를 죽일 것이다. 그 거대하고 딱딱한 몸뚱이로 나를 짓누를 것이다. 검은 입으로 나를 빨아먹을 것이다. 빨아먹다가 끝내는 내 발꿈치까지 모두 집어삼켜버릴 것이다. 소화될 때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나는 한동안 침대에 누워서 지냈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 내내 가장 큰 고문은 시간이었다. 시간에는 경계선이 없었고, 모든 시간은 내 침대 옆으로 쭉 늘어서 있었다. 일렬종대로 서서 시간은 차례차례 아주 천천히 나를 훑고 지나갔다. 시간은 결코 나의 친구가 될 수 없었다. 특히 해가 질 무렵엔 더욱 그랬다. 여섯 시 무렵이 되면 간호사가 와서 창문에 블라인드를 내렸다.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창밖을 덮을 때까지 간호사는 절대 블라인드를 올려주지 않았다.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단지 조금 민감했을 뿐인데, 누구도 그것을 몰랐다. 타는 불꽃, 토마토 스프, 손끝에 맺힌 핏방울, 혓바닥을 구르는 석류알까지도, 아, 나는 조금 민감했을 뿐이다. 누구도 그것을 비난해서는 안 됐다. 누구도 나에게서 그것을 빼앗지는 말아야 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벌레를 죽이고 말 겁니다. 그러기 위해 나는 그림을 그립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나를 그림 그리게 하는 그 벌레를 결국 죽일 것입니다. 그게 나의 그림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전시회 제목은 벌레로 하면 좋을 듯하군요.

창밖을 볼 수 없는 시간에는 천장을 보고 있어야 했다. 아무 무늬도 없는 크림색의 벽지는 늘어서있는 시간만큼이나 끔찍한 것이었다.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날이 많았다. 그러나 약을 먹고 싶지 않아 참았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나는 본다거나 모두 보고 있는 것을 나만 볼 수 없다는 것은 어느 때에나 괴로운 일이었다.

그날 천장에서 벌레를 발견한 것은 참 다행한 일이었다. 크림색 벽지가 자꾸만 저만치까지 반복되어 증식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무렵이었으니까. 천장 한 구석에서 벌레는 아주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느린 몸짓이었지만 분명히 보였다. 나는 많은 것을 아주 잘 봤다. 식사와 약을 가지고 온 간호사에게 말했다. 저기 벌레가 있어요. 간호사는 힐끗 보더니 내게 말했다. 아뇨, 저건 그냥 자국입니다. 나는 또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그들을 그대로 둬야 한다. 그들은 아무런 진실도 받아들이려하지 않는다. 오직 나 혼자서 아주 서서히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벌레를 직시하고 있었다.

벌레는 항상 나의 것을 빼앗아갑니다. 어느 날엔가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먹고 있는 벌레를 보았습니다. 벌레가 또 나의 것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더군요. 나는 아무 것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 벌레에게 집어던졌습니다. 벌레는 머리에 그 물건들을 맞으며 삐쩍 마른 다리를 휘적휘적 움직여 도망치려 했습니다. 안쓰러울 정도로 벌레는 허둥대고 있었습니다. 부엌에서 거실로 달아나는 벌레를 나는 계속 뒤쫓으며 물건을 던졌습니다.

벌레가 거실 한 가운데 멈춰 서서 나를 향해 입을 벌렸습니다. 안타깝게도 벌레의 입은 너무 작았고 그 속은 너무 어두웠습니다. 그 작고 검은 입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뻣뻣한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없었습니다. 벌레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계속 입을 우물댔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나는 다시 벌레에게 물건들을 던졌고, 벌레는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습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벌레를 뒤쫓으며, 벌레를 때리며 아주 상쾌한 마음으로 기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벌레에게 던진 물건들이란 전부 나의 그림들과 붓, 물감통, 이젤이나 두상 따위의 것들이었더군요. 거실 바닥에 온통 나의 그림들이 부서지고 구겨진 채로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다락방에 올라가기 위해 사다리에 손을 얹고 보니 어느 때엔가 거울도 깨져있었습니다. 거울 앞에는 자잘한 유리 파편들과 함께 소형의 석고 두상이 구르고 있었지요.

나는 종종 정글 한복판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이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에 더 잘 알고 있다. 하늘마저도 빽빽하게 채워내는 녹색이 나의 눈 속으로까지 뻗쳐든다. 녹색은 나의 안구를 휘돌아 감는다.

대기는 축축해, 숨을 들이 쉴 때마다 물방울이 콧속으로 굴러 들어간다. 질식할 듯한 습도와 더위 속에서 나는 걷고 있다. 검지손가락처럼 굴곡진 나무뿌리들이 땅을 뚫고 올라와 있어 나는 몇 번이고 걸려 넘어질 뻔 한다. 넓고 반들반들한 나뭇잎이 자꾸 볼을 스친다. 질퍽한 땅이 나의 발을 잡아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 이런 곳에서 신발이니 옷이니 다 무슨 소용이겠나. 나는 신발과 옷을 벗어 땅에 내려놓는다. 땅은 질척질척 나의 신발과 옷을 삼켜버린다. 이젠 후회도 소용이 없다.

녹색 눈의 나는 거대한 호수에 닿는다. 찰랑임도 없는 호수는 그 자체로 고요하다. 간혹 물거품이 터지는 것 같은 퍽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호수 한 복판에는 백조 같은 자세로 벌레가 떠 있다. 유영하며 벌레는 반기듯 나에게 기다란 다리를 흔든다. 나도 인사를 하려고 손을 드는데, 벌레가 날개를 편다.

두 장의 갈색 날개는 어느덧 벌레의 몸보다도 커져 있다. 날개가 두어 번 퍼덕이는가 싶더니 벌레가 나에게로 날아오기 시작한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급히 쭈그려 앉아 팔로 머리를 감싼다. 금방 나에게 부딪쳐올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본다. 고요한 호수, 녹색 세상, 하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 나와 벌레만 혼자 남아 버렸을 뿐이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시 연락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벌레요? 나는 벌레를 반드시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벌레의 죽음에 대해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마땅하겠습니까? 그때에도 내가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그림은 줄곧 벌레이지 않았습니까?

작고 아담하며 아늑한 나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스산한 들판에 어둠이 가라앉아 있다. 오늘따라 바람이 불지 않는다. 들판 한가운데 나의 집은 성냥갑처럼 자그마하고 사랑스럽게 놓여있다. 이곳은 나의 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거실은 어둑한 가운데 벽난로에서 퍼져 나오는 주홍빛 불빛만 어스름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다. 벽난로 앞에 벌레가 쪼그리고 앉아 불을 쬐고 있다. 작은 머리를 돌려 나를 본다. 벌레의 검고 눈이 퀭하게도 움푹 꺼져 있다. 벌레는 나를 보는 채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가엾게도 벌레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벌레에게 조금은 잘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겁먹지 않도록 나는 조심스레 벌레에게 다가선다. 벌레도 쪼그린 채로 주춤대며 나에게 다가온다. 벌레의 작고 검은 눈이 나를 가만히 보고 있다.

나는 포용의 의미에서 벌레에게 악수를 청한다. 벌레는 망설이지도 않고 왼쪽 다리를 내어놓는다. 벌레이기 때문에 인간들의 악수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그 부분까지도 용납하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는 벌레를 가만히 끌어안는다. 벌레도 그 가느다란 다리들을 나의 등에 얹는다.

자, 이젠 됐다. 나는 오늘부터 나의 집을 벌레와 공유할 것이다. 다락방에는 내가 살고, 1층에는 벌레가 살도록 할 것이다. 벌레는 자유롭게 1층만을 누릴 것이다. 지금처럼 벽난로의 불을 가만히 쬐고 있어도 누구도 벌레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벌레는 1층의 어디든, 창고이든 부엌이든 혹은 천장이든, 어디라도 기어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배가 고프면 냉장고 밑 어두운 곳에서 얼마든지 음식 찌꺼기를 찾아 먹을 수 있을 것이며, 목이 마르면 싱크대에서 떨어져 내린 물로 목구멍을 적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잠이 오면 다시 벽난로 앞으로 돌아와 따뜻한 온기 속에서 잠을 청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벌레에게 그 정도의 공간은 얼마든지 제공해줄 수 있다. 이 집은 나의 집이니까. 오늘부터 나와 벌레는 평화로운 날을 누릴 것이다. 벌레가 감히 나의 다락방을 침범하려 하지 않는 한.

그 다음 순간 나의 등을 감싸고 있던 가느다란 다리에 갑자기 힘이 들어오더니 나의 몸이 공중에서 휙 돌려지는 게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 나의 몸은 허공을 세차게 날아가고 있었다. 눈앞에서 주홍빛이 따스하게 일렁였고, 나는 그 짧은 마지막 비행의 시간을 자유로이 만끽했다.

 

그래도 나는 이야기할 것이다. 이곳은 이야기의 끝인가? 그 끝에 정확히 내가 닿았는가? 휘몰아쳐 온 말의 가장자리에서 나는 여전히 모든 것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늘 아침 욕실에서 벌레의 시체가 한 구 발견됐으며, 이는 얼마 전에 이곳을 다녀간 소독차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잠시간 벌레를 추모하며 그의 시신을 변기 속에 고이 넣어주었다. 물속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며 벌레는 갔다. 그래도 나는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말할 수밖에 없는 날은 또 다가올 것이고, 말은 또다시 나를 몰아갈 것이다.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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