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가은(국어국문학과·13)

말에는 듣는 이가 필요하다. 그 당연한 사실을 내가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는 건 조금 놀라운 일이다. 내가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 꾸미기는 줄곧 나 혼자만의 일이었다. 듣는 이가 없었다기보다도 먼저 발화되지도 않은 말이었다.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세계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불안하고 무섭고 또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누구도 보지 못한 예술작품의 예술성에 대해 논한 적이 있었다. 이를테면 작가가 쓰자마자 불태워버린 소설이라든지, 만들어지자마자 깨뜨려진 조각상이라든지. 나는 그 작품에도 예술성이 있다고 답했다. 감상자와는 상관없이 예술작품의 예술성은 그 자체에 내재해있는 것이라고, 그건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그러나 말에는 듣는 이가 필요하다. 사실은 듣는 이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건 말이 아니라 말하는 이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말에는 듣는 이가 필요하다. 그런 생각이 든 이후로 나는 틈만 나면 내 소설을 주변 사람들에게 읽혔다. 듣는 이가 있어 행복했고, 듣지 않는 이가 생각보다 많아 불안했다. 때로는 나의 말하기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배배 꼬며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내가 잘못인가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듣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대학문학상 심사위원들께 너무나도 감사를 드린다. 서투른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하니 죄송스럽기도 하다. 또 항상 믿음직한 듣는 이, 나의 종자기가 되어주는 국어국문학과 창작 소모임 ‘창문’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 지면을 빌려 어색한 감사를 보낸다.

여전히 나는 누구도 보지 못한 예술작품에도 예술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작품은 너무나도 슬픈 것이리라. 나는 행복한 소설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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