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정치와 폭력 그리고 믿음에 관한 사이먼 크리츨리와 슬라보예 지젝의 논쟁

정치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였다. 반드시 총과 칼이 오가지 않더라도 정치의 역사에선 한 측이 다른 측을 구속하려는 강제적인 힘으로서의 폭력이 항상 존재했다. 법과 권위를 위시한 사회지도층의 폭력 그리고 그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이의 폭력, 그 충돌 사이에서 사회는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집권세력이든 변혁을 꾀하는 세력이든 폭력의 근원에는 모종의 ‘믿음’이 자리했다. 집권세력엔 그들이 수호하는 법과 가치가 옳다는 강한 믿음이, 반대로 변혁가에겐 집권세력에게서 그 권력을 뺏어 새로운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믿음의 충돌이 반드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인 것만은 아니었다. 종종 믿음의 광기가 극도로 치달으면 역사 속에서 파시즘이나 이슬람 근본주의 등의 형태로 드러나 무자비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반대로 믿음이 사라지면 정치적 냉소주의와 무관심으로 인해 사람들은 현실을 외면하기도 했다. 지금도 파리 테러를 일으킨 IS와 일본 극우세력의 행보에선 광적인 믿음을, 한국의 낮은 투표율에선 믿음을 상실한 시대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인간은 불합리한 권력의 행사에 어떤 힘과 믿음으로 대항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많은 철학자들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정치와 폭력, 믿음에 관한 담론을 제시해왔다.

영미권의 현상학자 사이먼 크리츨리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슬라보예 지젝은 그 답을 고민한 대표적인 철학자다. 2013년 벌어졌던 정치적 저항에 관한 두 사람의 논쟁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치열했다. 앙숙이라 불리는 이들의 논쟁을 크리츨리의 『믿음 없는 믿음의 정치』, 지젝의 『폭력은 무엇인가』를 통해 되돌아봄으로써 광기와 무관심 사이에서 길 잃은 정치를 되찾을 방도를 각기 다른 관점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병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폭력

정치는 힘과 힘이 맞부딪치는 충돌과 폭력의 장이기에, 두 사람의 정치이론을 이해하려면 폭력이론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젝과 크리츨리의 폭력 이론의 배경인 발터 벤야민을 먼저 살펴야 한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나치즘을 몸소 체험했던 벤야민은 국가의 폭력을 집요하게 성찰해 논문 「폭력비판을 위하여」를 집필했다. 이 글에서 벤야민은 부패한 기득권이 그들의 법을 강요하는 상황에선 법이 폭력이 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폭력을, 기존의 법을 유지해 기득권을 정당화하려는 ‘신화적 폭력’과 신화적 폭력에 대립해 기득권의 법을 파괴하려는 ‘신적 폭력’ 두 가지로 구분한다. 신적 폭력은 법이 폭력이 되는 사태를 폐기하기 때문에 비폭력적인 성격을 띠며, 벤야민은 이러한 신적 폭력을 통해 부패한 국가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봤다.

크리츨리는 벤야민의 신적 폭력에서 그것의 비폭력적 면모를 주목한다. 크리츨리가 주장하는 폭력은 ‘비폭력적 폭력’으로, 벤야민이 「폭력비판을 위하여」에서 갈등의 비폭력적 해결을 염원했다는 점에 착안해 그는 폭력 앞에 역설적으로 ‘비폭력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크리츨리의 비폭력적 폭력은 폭력의 상황에 놓여도 끊임없이 비폭력이라는 이상을 바라보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갈등이 비폭력적으로 해결될 방안을 고민하는 데서 비로소 현현한다.

지젝은 크리츨리와 다르게 폭력 그 자체에 방점을 찍는다. 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국가의 폭력을 신적 폭력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벤야민의 논의를 유지하면서 더 급진적인 방향의 폭력을 제시한다. 그는 1990년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빈민가 군중들이 도심의 부유층 거리로 가 약탈과 방화를 일삼은 것을 신적 폭력의 선례로 제시하며, 국가의 폭력에 대항해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자고 주장한다. 이는 크리츨리가 불합리한 폭력에 맞서는 투쟁을 극단적인 방향으로만 좁혀 바라보는 것을 지양한 것과는 다른 시각이다.

믿음 없는 믿음과 믿음에서 벗어난 믿음

크리츨리와 지젝의 차이는 신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근원인 믿음의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크리츨리는 그가 제시했던 비폭력적 폭력이 ‘믿음 없는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믿음 없는 믿음은 ‘믿음 없는 사람들의 믿음’이라고 다시 쓸 수 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실증적인 증거가 없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나 허무맹랑한 낙관에 회의를 던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섣불리 믿음을 가지지 않고, 모든 문제에 의심과 질문을 가진다. 크리츨리는 그래서 믿음 없는 자들의 믿음이 역설적으로 가장 신실한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믿음은 충분한 의심과 검토를 거친 후에도 믿을 만하다고 남은, 견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츨리는 더 나아가 믿음 없는 믿음이 적극적으로 비폭력적 폭력을 향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믿음에는 그것을 믿기로 한 사람들의 기준과 판단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기에, 크리츨리는 여기에 개인의 책임감과 신념이 담겨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그는 믿음 없는 믿음이 비폭력적 폭력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반면 지젝의 폭력 이면에는 ‘믿음을 벗어난 믿음’이 있다. 그는 특유의 마르크스적 분석으로 현 사회에 통용되는 믿음은 대부분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현 체제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저항의 시작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폭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또한 서방사회의 이데올로기라 전하며, 폭력을 더 이상 그 자체로 거부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극단적인 폭력을 경계하는 크리츨리의 태도는 지젝의 시각에선 이데올로기 속에 안주해 사회를 변혁할 수 없는 상태로 여겨진다.

어떤 믿음과 함께 정치로 돌아갈 것인가

그러면 크리츨리와 지젝은 어떻게 이 믿음을 통해 정치에 닿을 수 있다고 본 것일까. 크리츨리는 다름을 포용하는 사랑과 헌신이 믿음 없는 믿음으로 이어져 최종적으로는 올바른 정치활동이 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사랑과 헌신을 매개로 다름을 인정받는 자유로운 개인으로 구성된 ‘아나키즘적’ 집단을 가장 이상적인 정치 집단으로 여긴다. 크리츨리는 아나키즘적 집단이 국가의 폭력에 저항해 적극적으로 연대를 이루고 여러 크고 작은 다양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본다. 지난 2011년의 미국 월가 점령 시위는 부의 불평등이라는 하나의 문제의식 아래 다양한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대규모 집회로, 크리츨리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좋은 사례다.

크리츨리에게 “저항은 투항이다”라고 비판한 지젝은 정치를 변화시킬 방법을 제시할 때도 크리츨리와 다른 곳을 향했다. 앞선 『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지젝은 현 체제를 전복시킬 수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국가에 대한 가장 폭력적인 저항이라고 전하고 있다. 즉 지젝은 국가의 폭력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불합리한 체제에 동조하지 않거나, 리우데자네이루의 폭동처럼 대대적인 집단행동으로 기득권을 전복시키는 것 사이의 선택을 종용한다.

지난 14일(토) 광화문에서 일어난 민중총궐기는 우리 사회에 퍼진 맹목적인 믿음과 믿음의 부재를 동시에 드러냈다. 시위대의 쇠파이프, 경찰의 차벽과 물대포, 시위 이후 민중총궐기를 과잉진압과 폭력시위의 대립으로 일축해버린 정치인들의 뒤엔 그들이 믿는 것만 보고자 하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다. ‘과잉진압-폭력시위’의 프레임 속에서 평정심을 찾지 못하는 정치계에 등을 돌린 시민들에게선 믿음이 사라져 가고 있다.

극단주의와 냉소주의가 만연한 한국 정치를 다시 세우려면 앞서 논의한 믿음-폭력-정치로 이어지는 사유의 맥락에서 연장된 처방이 필요해 보인다. 치열한 검토와 비판 속에서 살아남은 믿음을 이상적인 것으로 보는 크리츨리의 제안은 개인이 스스로의 믿음을 다른 이의 믿음의 시각으로 검토해 볼 여지를 준다. 기존의 믿음에서 벗어나라는 지젝의 제안에선 기득권의 믿음을 포함한 모든 이데올로기에 대한 부정 가능성을 강하게 내포한다는 점에서 현실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정치가 교착상태를 벗어나려면 믿음의 강약 조절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선 담론들이 이 조율의 시작점이 돼 극단주의와 냉소주의의 굴레에서 점차 벗어날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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