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국내 게임 시장에 뛰어든 인디게임의 움직임

‘인디’하면 흔히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인디 음악가는 그저 노래가 좋아 길거리 버스킹을 하거나 작은 클럽에서 공연을 열고, 인디 영화감독은 화려한 특수효과 없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인디는 이제 게임의 영역까지 파고들었다. 지난 9월 전국 곳곳의 인디 게이머들이 모이는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이 처음 열렸고, 최신 인디게임들을 소개하는 부스가 얼마 전 국제 게임전시회인 ‘지스타 2015’ 한 켠에 자리잡았다. 국내 인디게임이 저들끼리 즐기는 아마추어 영역에서 벗어나 게임 시장에서 고유한 공간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그 게임 그대로

인디게임은 게임 개발자들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개발자가 게임 회사에 속해 있거나 투자를 받는 경우 온전히 자신의 생각대로 게임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회사는 안정적인 수익을 찾기 위해 성공이 보장된 비슷한 형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산배 오범수 대표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회사에서는 상사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연결된 투자자들의 의견도 중요한데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새로운 것보다는 안전한 것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몇몇 게임광들이 돈과 상사에 구애받지 않는 다른 길을 찾게 된 것이다.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회사에서는 그럴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게임 디자이너 임현호 씨는 결국 회사를 나와 작은 게임 개발사 를 차렸다.

많은 인디게임 개발자들은 분업이 이뤄지는 보통의 과정과 달리 게임 제작의 모든 과정을 직접 해낸다. 게임을 만들기까지 기획, 프로그래밍, 디자인 등 기나긴 과정에 필요한 인력을 다 확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버프스튜디오 김도형 대표는 “그래픽을 전혀 할 줄 몰라서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아가며 시작했다”며 개발과정을 밝혔다. 오범수 대표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그래픽을 직접 공부했고 사운드도 업체에 맡기는 대신 수천 개의 효과음을 직접 들어보며 선별했다”며 ‘노가다’식 방법을 설명했다.

이어 개발자들은 자신이 만든 게임을 즐길 대중들에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한다. 연예인을 내세워 광고를 하거나 지하철, TV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할 수는 없지만 나름의 생존 전략이 있다. 게임 플랫폼인 ‘스팀’의 ‘그린라이트’ 제도는 대부분의 인디게임 개발사가 참여할 정도로 대표적인 게임 유통 플랫폼이다. 게임을 스팀 사이트에 올리고 사용자들에게 호평을 많이 받으면 그 게임은 ‘그린릿’이 돼 스팀에서 판매와 유통을 대신 해주게 된다. 더불어 개발자들은 인디게임 전문 웹진이나 개발자 모임 등을 통해 틈틈이 홍보를 이어오며 국내외의 인디게임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자유로운 개발 환경 속에서 찾는 다양한 재미

개발자의 자율성이 실현되는 만큼 인디게임에는 기존 게임들에서 보기 힘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복잡하거나 화려한 효과 없이 지극히 단순한 플레이로 새로운 재미를 주는 것은 인디게임의 흔한 전략이다. 호러게임 ‘딤라이트’는 어두운 병원에서 손전등 하나를 들고 괴물들을 피해 탈출하는 게임이다. 화면에 캐릭터의 머리와 발자국만 나타나지만 발소리나 심장 소리, 빛의 효과를 활용해 오싹함을 자아낸다. 게임 ‘용사는 진행중’은 용사가 괴물과 싸워 공주를 구한다는 간단한 설정을 내세웠다. 유저는 캐릭터가 죽었을 때 패널티를 받지 않고 오히려 능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어 한두 시간 내에 엔딩을 볼 수 있다.

물론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단순한 형태의 게임만 내놓는 것은 아니다. PC게임‘아미 앤 스트레티지 : 십자군’은 개발 과정과 그래픽이 복잡한 전략게임 장르를 높은 완성도로 구현했다. 십자군 전쟁을 소재로 한 이 게임에서 유저들은 트럼프 카드를 연상시키는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함께 국가별로 상세하게 기획된 특성에 따라 전투를 벌일 수 있다. 개발에 참여한 프로그래머 김주명 씨는 “품이 많이 드는 장르인 만큼 할 일이 많아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핸드메이드 게임’의 ‘룸즈’는 세련된 그래픽과 스토리를 내세워 해외 사용자들에게 큰 반응을 얻은 게임이다. 단순한 퍼즐게임에 따라 움직이는 방으로 이뤄진 저택에서 사물을 이용해 주인공을 탈출시킨다는 이야기를 더해 만듦새를 높였다.

장르를 파괴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인디게임도 있다. ‘스튜디오 터틀 크림’의 게임 ‘6180 더 문’은 다른 플랫포머 게임들에서는 캐릭터가 아무리 점프를 높게 해도 게임 화면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해 화면의 위와 아래를 연결해 버렸다. 높이 점프하면 캐릭터가 스크린의 위쪽을 지나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식이다. ‘퀵터틀’의 ‘내꿈은 정규직’은 게임에 현실을 잔인할 정도로 반영해 주목받은 게임이다. ‘상무의 농담에 웃어주기’ ‘과장님 심부름하기’를 수행해 승진하고, ‘일이 너무 없어서’ ‘몸이 아파서’ ‘투잡뛰다 걸렸다’ 등 퇴직사유를 아이템처럼 모으다 보면 씁쓸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인디게임들은 기존 게임에서 보기 힘든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기존 게임시장에 다중 접속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인 MMORPG나 같은 모양의 그림 몇 개를 일렬로 맞춰 깨트리는 매칭타일 아케이드 등이 많다면 인디게임의 장르는 한정할 수 없다. 이정엽 교수(연합전공 정보문화학과)는 “(인디게임은)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돼 거의 나오지 않던 장르까지 살려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인디게임에서는 소설 같은 줄거리에 시각적, 청각적 요소를 추가한 비주얼 노블 장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그래픽 어드벤처 등 다양한 장르가 시도된다.

 

인디게임이 만들어갈 다음 화면은?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인디게임이 설 자리는 충분하지 않다. 넥슨이나 넷마블 등의 게임 개발·유통업체들은 잘 팔리는 게임을 무료로 내놓은 뒤 아이템을 사도록 유도하는 장기적인 전략으로 대중들을 끌어들인다. 이에 비해 지속적으로 자본을 투입하기 어려워 게임을 낮은 가격으로 내놓고 단기에 승부를 봐야 하는 인디게임의 몫은 적다.

게다가 수요는 한정된 채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보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시장은 포화상태에 가까워졌다. 이정엽 교수는 “유저들이 바치는 돈은 그대로지만 개발사는 2012년에 비해 5배 내지 6배로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내수시장이 어렵다 보니 개발자들은 어렵사리 해외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한국어가 지원되지 않는 인디게임이 많은 것이 이를 보여준다.

인디게임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안팎으로 나오고 있다. 게임 시장에 점점 다양해지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작더라도 독립된 게임 개발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특히 비슷한 게임이 쏟아져나오는 현상이 빈번해졌다. ‘쿠키런’의 흥행 이후 모바일 시장에서 캐릭터가 달리고 점프하는 식의 비슷한 게임들이 들끓었던 것이 그 예다.

게임들이 비슷해지면 유저들이 게임에 대해 획일화된 인식을 가지게 되고, 회사는 ‘사람들이 원하니까’ 유사한 게임을 다시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각자 원하는 게임을 만들어가는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어느 정도 게임 시장에 다양성을 더할 수 있는 존재로 주목받는 이유다. 핸드메이드 게임 김종화 대표는 “게임 문화도 음식과 마찬가지로 같은 것만 먹을 수는 없다”며 “차별성을 가진 게임들이 취향을 다양화시키면 게임 산업도 더 건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 시장에 다양성을 더하는 인디게임들이 묻히지 않는 길은 이들이 개발을 지속하고 홍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나아가 이정엽 교수는 “기존 환경이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대중들이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즐길 만한 인디게임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인디게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제안했다. 누구의 간섭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디 개발자들. 그들이 정성껏 만든 세계는 더 많은 게이머들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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