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있던 과거의 건축이 현재의 존재들을 만나다
묻혀있던 과거의 건축이 현재의 존재들을 만나다
  • 김지수 기자
  • 승인 2015.11.22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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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삼성미술관 리움 '한국건축예찬 - 땅의 깨달음' 전시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과거의 건축물로부터 특별한 의미를 얻는 건 드문 일이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직장인들은 광화문 광장을 그저 스쳐 지나간다. 숭례문은 밤낮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경적 소리로 가득하고, 연인들은 아름다운 창덕궁을 배경삼아 현재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서로의 사진을 찍기 바쁘다. 지나간 시간 속의 건축물이 현재의 우리에게 스쳐 지나가는 배경 이상의 의미를 건넬 수는 없는 것일까.

지난 19일(목)부터 다음해 2월 6일까지 서울시 한남동에 위치한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전시 ‘한국건축예찬 - 땅의 깨달음’은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전통건축의 의미를 되살리는 전시다. 예술가들이 선보이는 사진, 영상, 건축 프로젝트 등 다양한 분야의 현대적인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는 전통건축에 대한 다채로운 재해석의 공간이 됐다. 종교, 성곽, 민가건축 등 각각의 전통건축 양식에서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시선이 여러 방식으로 만난다.

전시장 아래층에 들어서면 현대의 공간에 파묻힌 과거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김재경 작가의 사진작품 속 수원화성은 현대의 도심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성곽의 남문인 팔달문은 빌라와 상가들이 이룬 빽빽한 분지 속에 쓸쓸하게 서있다. 건물들이 내뿜는 시멘트의 냉기와 화려한 간판들이 쏘아대는 빛은 그야말로 현대사회의 부산물이다. 작품 옆에는 옛 그림 ‘화성능행도’와 ‘화성의궤’가 질서와 체계가 유지된 수원화성의 과거 모습을 보여주면서 혼란스러운 팔달문의 현재 상황을 더욱 부각시킨다.

▲ 박종우 작가의 '장엄한 고요'. 영상이 상영되는 5분 동안 종묘제례가 주는 장엄함이 방을 가득 채운다.

전시장 위층에서 감상할 수 있는 박종우 작가의 작품은 재현된 과거의 공간 안에 현대의 존재들이 들어서도록 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시도한다. ‘장엄한 고요’는 ‘ㄷ’자 벽면 3개에 종묘제례 장면을 비춘 영상작품이다. 담담한 무채색 화면 속엔 비가 하나의 물줄기로 합쳐 흐르고 그 물줄기처럼 제관(祭官)들도 줄지어 걸어간다. 나뭇가지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는 스산한 분위기를 더한다. 울려 퍼지는 제례악의 날카로운 선율은 장엄함을 자아내고 삼차원의 공간에 들어선 관객은 오롯이 그 장엄함에 몰입해 종묘제례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앞선 작품들이 현대 속에 놓인 과거를 조명하거나 재현된 과거로 현재를 끌어들인 반면,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융합한 건축 프로젝트도 있다. 김봉렬 작가는 양동마을의 한옥을 해체한 뒤 일부분을 철재로 대체해 전통의 나무와 현대의 철이 한 건물 안에 결합되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은 ‘첨가한다’는 의미를 지닌 작품명 ‘유첨당’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창문 너머로는 자연의 경치를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선조들이 중시한 건축 요소인 바깥 풍경을 영상기술을 통해 실내로 들여놓았다는 점에서 과거의 정신과 현대 기술의 융합을 보여준다.

예술은 항상 해석의 여지를 남기므로 과거에 멈춘듯한 전통건축도 어떻게 재해석하고 변형하는가에 따라 본래의 모습을 새로이 드러낼 수 있다. 우리는 전시된 전통건축을 통해 현대 속에 나타난 과거를 보거나 과거 속으로 초대받을 수 있으며 과거와 현대의 결합을 마주하기도 했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전시장을 거닐며 우리 곁의 전통건축의 의미를 새로이 마주해보자.

 

사진제공: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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