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 문학의 현대성을 찾아서

안톤 체호프는 누구인가?

19C 러시아의 소설가ㆍ극작가. 인간의 평범한 일상생활에 주목해 인간 존재의 해답을 구하려고 했던 작가 중 한명이다. 체호프의 문체와 그의 심리주의, 뽀드 텍스트(책 아래 숨겨진 뜻)기법은 현대 러시아 산문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11일 한국노어노문학회는 「체호프 문학과 예술의 총체적 조명좩이라는 제목의 체호프 서거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외국인 초청학자 5명과 국내학자 6명이 참여한 이 학술대회에서 체호프라는 프리즘을 통해, ‘삶과 인간’, ‘현실과 문학’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체호프와 그의 예술세계가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체호프의 문학과 예술을 논하면서 그 동안 행해진 ‘의사소통의 단절과 상호이해의 부재’, ‘엇갈리는 사랑과 고립된 인간관계’, ‘진정한 영혼의 자유 추구’라는 주제와 그 모티프들에 대한 해석은 이제 진부하게 들릴 정도다. 따라서 ‘체호프의 현대성’을 화두로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보도록 한다.

체호프의 텍스트는 여러 차원에서 ‘예술의 자율성’을 획득하고 있고,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독자와 자유롭게 만나면서 ‘적극적인 여백의 미학’을 만들어내고 있다. 따라서 체호프의 시학은 늘 끝없는 운동의 과정에 있으며, 변화하는 다양한 현실 상황에 맞추어 매번 새롭게 적용과 해석이 가능한 현대성을 담보한다. 이 사실을 전제하고, 국내외 학자들의 발표문들(「체호프 창작의 기본으로서의 부정시학(V. A. 까쩨르니꼬프)」, 「체호프의 중편소설 「6호실」에 나타난 서술과 주인공의 죽음에 관한 연구(강명수)」, 「체호프의 기호학 : 기호의 낡음/세탁(A. 스쩨빠노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까쩨르니꼬프에 따르면 「등불」, 「지루한 이야기」, 「6호실」 등의 작품들에서는 체호프의 세계 인식이 현실세계에 대한 ‘부정시학’을 기반으로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는 체호프의 ‘부정시학’을 작가의 부정적 세계관을 나타내는 것에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단지 그것이 하나의 예술적 원칙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만 말한다. 왜 결론이 이런 식으로 정리됐을까? 이에 대한 일말의 단서를 체호프 작품의 서술 구조에 나타난 말과 관념의 특성, 그리고 기호학적 차원에서 포착할 수 있다. 

 

체호프 문학의 '여백'과 '개방성'이 현대성 담보

 

위에 언급된 체호프의 작품들에서는 개인적인, 현실에 비판적인, 그리고 철학적인 뉘앙스를 지닌 ‘두 방향을 가지는 패러디의 말’(미하일 바흐찐의 「말의 유형학」에서 나온 용어)이 우세하다. 그리고 ‘패러디의 말의 적극적 유형’인 내부에 은닉된 논쟁이나 대화, 그에 따른 항변이 중요한 자리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말에서 나타나는 관념은 저자 입장이 완결되지 않는 것과 저자의 목소리로 많은 것들이 조정되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체호프 관념의 비독단성과 연결되면서 종국에는 체호프 작품이 가지는 대화성과 양면성, 미완결성, 열린 체계와 열린 결말, 다의미성과 애매성으로까지 연결된다.

다른 한편으로, 체호프의 작품들에는 낡고 지워지는 기호(sign)가 많이 내장돼 있다. 의미로 가득 찬 기호가 빈번하게 텅 빈 껍데기로 변하면서, 기호의 기호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호는 다시 일말의 의미를 보존하면서, 주인공에게 도달하기는 어렵지만, 독자와 독자의 작품 해석에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텍스트와 기저텍스트 차원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특성들이 우리가 체호프의 작품들을 늘 새롭게 인식하는 예술적 차원에서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의 다양한 현실에 매번 새롭게 적용돼

푸쉬낀이 짜 놓은 러시아 문학이라는 외투를 고골이 조각을 대어 때우거나 꿰매었다면, 체호프는 깁고 누비기도 하면서, 세탁까지 해버렸다. 그 같은 체호프의 문학에는 전통과 혁신, 계승과 단절이 항상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체호프의 현대성은 예술 텍스트의 내부로부터 우리의 앎과 삶에 늘 걸쳐져있는 ‘그 무엇’이자, 새롭게 엄습해오는 ‘그 무엇’이다.    

 

 

 강명수

(고려대ㆍ노어노문학과 강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