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악과 정대석 교수

‘거문고의 1인자’라는 수식어에 어울리게 정대석 교수의 연구실엔 거문고가 두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연구실의 한 쪽엔 동료 교수 20명이 그에게 거문고를 배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지음회’에서 증정한 감사패가 놓여 있었다. 정 교수는 “9년 동안 훌륭한 학생들, 그리고 훌륭한 교수진들과 함께 해 영광이었다”며 “하나를 가르치면 스스로 열을 깨우치는 학생들 덕에 가르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감사했다”고 퇴임소감을 전했다.

정 교수는 중학교 1학년 때 국악을 배우기 시작해 거문고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접했다. 당시 국립국악고등학교를 장학생으로 다닐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가정형편으로 인해 문리과로 진학했다는 정 교수. 그러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 그 또한 거문고를 떠나서는 살 수 없었다. 정 교수는 “당시 거문고를 하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며 “거문고라는 우리의 귀한 악기를 널리 전파해 여러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악기로 만들어야겠다는 사명을 갖고 있었다”고 거문고를 다시 잡게 된 계기를 밝혔다.

당시 자신의 꿈이 무대에 서는 것이었다고 밝힌 정 교수는 30여 년간 KBS국악관현악단 악장으로 활동하면서 그 꿈을 이뤘다. 그는 “매일 연주에 몰두하던 시기였고 연주를 하면서 큰 만족을 느꼈다”며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였을 정도”라고 전했다.

정 교수는 거문고를 독학으로 공부해 거문고 명인에 올랐으며, 최초로 비(非)음대 출신의 음대 교수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9년 동안의 교직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국악과 학위수여식 때 국악으로 행사를 전부 치렀던 일을 꼽았다. 그는 “당시 식전후 행사와 더불어 애국가 또한 모두 국악으로 진행했는데 이는 서울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며 “1959년에 국악과가 창설되고 60여 년이 지났는데 그러한 행사에서 국악으로 연주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우리 겨레의 얼이 담긴 국악을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면서 차근차근 세계화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를 사로잡은 거문고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거문고(玄琴)의 ‘검다’는 ‘아득하고 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며 “이는 우리가 잡을 수 없는 먼 곳의 우주적인 악기라는 것을 내포하며 그만큼 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손으로 현을 뜯어 연주하는 가야금에 비해 거문고는 술대를 사용해 줄을 치는데, 이렇게 소리 내는 악기는 세계에서 거문고 하나뿐”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다시 무대로 돌아가 독주회도 하고 작곡도 계속하고 싶다”고 웃어보였다. 9년간 관악에 울려 퍼지던 그의 거문고 소리가 앞으로는 더 넓은 세상에 울려 퍼지길 바란다.

사진: 김여경 기자 kimyk37@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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