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는 장래희망을 묻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정작 직업 선택을 앞두고 있을 땐 눈앞에 닥친 일에 치여 그런 질문은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며 마음이 향하는 곳에서 일을 찾으려는 이가 있다. 졸업을 앞둔 손영규 씨(디자인학부·11)다. 그가 자신의 진정한 얼굴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봤다.

▲ 서울대입구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대학 생활을 되새겨보는 손영규 씨.작업실에서 오는 길이라던 그는 손에 새로 구입한 시집을 한가득 들고 있었다.

◇불확실한 도전에 몸을 던지다=그의 장래희망은 여느 대학생처럼 대학 진학 전부터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는 피아노 경연에 나가고 중학교 때는 축구선수를 하는 등 어릴 때부터 다양한 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 장래희망을 영화감독이라 써왔던 것이 은근히 진지한 바람이었다고 깨달은 것은 재수를 할 때였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에 매몰돼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위험 부담이 크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재수학원에 등록한 지 두 달여 만에 미술학원으로 옮겨갔다.

영화감독의 꿈을 안고 영화과에 지원했으나 그를 불러준 곳은 미대 디자인학부였다. 대학에 진학한 그는 자신의 전공이 진로를 결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와 스스로 이끌어가는 학업이 다를 수 있다고 여긴 그는 바깥 활동으로 몸을 던졌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일에 관심이 있던 그는 ‘미대극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1학년 말에 들어가 공연하면서 일에 빠져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방학 때 여행 한 번 안 가고 연극만 할 정도로 극회 일에 애정을 쏟았다.

미대극회는 그에게 직접 연출을 시도할 무대를 제공했다. “영화감독이 꿈이다 보니 당연히 연출 쪽으로 관심이 생겼다”던 그는 “2학년 때 배우를 하면서부터 연출 쪽 일을 기웃거렸다”고 말했다. 그만의 연출 특징은 자신의 색깔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데 있었다. 그는 연출을 맡았을 당시 “연극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창작극을 올릴 때”라는 고집 어린 생각에 “있는 작품을 가져와서 극을 하더라도 각색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 형식의 글을 쓰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세상’과 ‘사회’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그는 작품 활동에서 으레 존재하리라고 믿어왔던 질서가 깨지는 상황과 그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반응을 주목한다. 스물한 살에 완성한 첫 작품도 엽기적인 악행과 부조리를 다룬 것이다. 옴니버스의 두 번째 이야기인 「신입」은 지난 겨울 응모한 대학문학상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재학 중에 수강한 수업도 그가 글을 쓰는 방식에 영향을 줬다. 학교에 큰 기대가 없던 그에게 이수명 시인의 ‘창작의 세계’ 강의는 영감을 줬다. 그는 “피아노를 치고 싶을 때 본질을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면 동요가 아닌 클래식부터 쳐야 한다”던 교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앞으로 글 쓸 때 “재미를 따라 본질에 접근하는 자세”를 유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꿈을 향한 발판 다질 것=졸업을 앞두고 그는 일자리를 구하는 대신 서울대입구역 부근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먹고 쉬고 자는 것이 익숙한 집과 작업 공간을 분리해 적극적으로 일에 임하려는 마음에서다. 그는 성격과 관심은 다르지만 작업 공간의 취지에 공감한 세 명의 다른 동료와 작업실을 함께 쓴다. 애초 계획했던 것처럼 전시회를 열 수 있는 큰 공간은 아니지만 그는 작업 공간이 “허름해도 아늑하다”고 묘사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여느 대학생과 사뭇 다르다. 그는 모두가 취업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직장을 구하지 않은 채 덜컥 졸업해 작업실로 향했다. 소속이 없어지는 졸업 후 시점을 그는 재수생 시절에 빗대 표현했다. “고등학교를 벗어나 어른이 됐는데 직업이 없는 애매한 상황일 때 나는 누구이고 사람과 인생이 뭔지 고민했다”며 그는 당시를 “머리가 많은 것을 갈구해 책을 많이 읽던 시기였다”고 돌이켰다. 그는 다가올 시간 또한 “어떤 순간이 와도 기죽지 않고 뛰어들 수 있게 준비하는 시기”로 정의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가늠해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본인의 기준을 만족하는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보였다. 작품을 가늠하는 눈을 갖고 싶다는 욕심은 연출을 맡은 당시, 걸작이라는 만족감보다는 부끄러움을 느껴서 생겼다. 그는 “수업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그 분야에 탁월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며 “생각만큼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기준이나 직설적으로 평가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평소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자신을 객관화해보고자 하는 이유다. 그는 “(작품을 보는) 안목은 노력해야 생기는 것 같다”며 “대학문학상 수상 즈음 (자신이 쓴) 작품을 두고 여러 사람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자평을 거듭하면서 성장하리라 기대하며, 세상을 담아내는 이야기꾼으로 도약할 그의 미래를 응원해본다.

 

사진: 이문영 기자 dkxman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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