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A씨는 부족한 생활비와 학자금 때문에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연 금리 34.9%의 살인적인 고금리였지만 급한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빌리고 말았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이자를 내기에도 빠듯했다. 이자 상환일 5일 전부터 매일 오는 문자 때문에 괴로워하던 A씨는 졸업 후 빚을 갚아나갔지만, 생활비와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대출을 연체하게 됐다. 해결방안을 찾던 A씨는 고금리를 저금리로 전환해주는 대학생·청년 햇살론을 이용하려 했지만 연체 이력이 있어 이용할 수 없었다.

‘헬조선’을 외치며 미래를 자조적으로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립대·국립대 등록금은 OECD 국가 중 각각 2, 3위를 기록했다. 또 국토부의 2012년 주거실태조사 결과 서울 청년 1인가구 약 70%가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취업난도 지속돼 지난 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체감실업률은 11.6%에 달했다. 일자리의 질 또한 나빠져 청년 비정규직이 지난해 3월 기준 117만 1천 명으로 1년 전보다 3만 4천 명이나 늘었다. 지난 몇 년간 개선되지 않은 채 계속 곪아가던 청년문제의 결과는 청년부채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빚더미에 신음하는 청년들
 

청년부채에 대한 모든 지표는 청년부채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에서 시행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20, 30대의 금융부채 보유가구 비율은 각각 약 50%, 70%에 달해 상당수의 청년층 가구가 부채를 가진 것으로 파악됐다. 또 20, 30대 모두 2014년에 비해 가구당 금융부채 보유액이 3.3%, 8.5% 증가했다.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청년들도 늘어났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분석한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06년 말 대비 지난해 말 20대의 대부업체 신용대출 이용 증가율이 220.8%로 시중은행의 2배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과도한 채무부담으로 인해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되는 청년들도 증가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에는 20대만 유일하게 전년 대비 개인 워크아웃* 신청자가 9.4% 증가했으며 지난해에도 전년 대비 약 26% 증가했다.

청년부채의 악순환은 청년의 미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대졸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학자금 대출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약 88%가 본인의 대출경험이 빨리 취업하기 위해 눈높이를 낮추거나, 비용이 드는 일부 스펙을 포기하거나, 경제조건을 고려해 진로를 변경하는 등 구직활동에 영향을 끼쳤다고 응답했다. 사회를 이끌어나갈 청년들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부채로 인해 자신의 가능성을 낮추게 되는 것이다.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빚만 키우던 청년들은 상환부담으로 조건을 따지지 않고 취업해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기 쉽다. 또한 취업 후에도 부채를 완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결국 청년부채는 가계부채로 이어져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폭탄돌리기에 급급한 정부 대책

 

하지만 청년부채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층이 정부의 도움을 받으려면 저금리 전환이나 저금리 대출을 제공해주는 서민금융제도를 찾거나 금융복지센터를 이용해야 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서민금융제도 중에 청년층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대학생·청년 햇살론과 일반 햇살론, '새희망홀씨'다. 하지만 일반 햇살론보다 금리가 낮은 대학생·청년 햇살론의 경우 만 29세(군필자 만 31세) 이하로 나이 제한이 있어 30대인 청년들은 이용할 수 없다. 일반 햇살론과 새희망홀씨의 경우엔 연 소득과 연체 여부를 조건으로 내걸어 소득이 없거나 연체가 있는 청년들은 이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현재 운영 중인 금융복지상담센터도 청년층의 이용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2014년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 발표한 사례집에 따르면 2014년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를 이용한 사람 중 20대는 3%, 30대는 13%에 불과했다. 금융정의연대 강홍구 사무국장은 “지자체에서 운영해 예산 제약의 문제로 청년층에 홍보가 잘 안돼 중장년층의 개인회생 문제를 일반적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 대상 고금리 대출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제2금융권이 고금리 대출상품을 대학생과 청년 위주로 영업한다는 점이 지적된 바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축은행에 청년을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제도를 의무적으로 알리고 상환 능력이 있는 대학생에게만 제한적으로 대출하라는 내용이 담긴 행정지도 공문을 내리는 조치를 취했다.

이후 통계상의 제2금융권 청년대출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대출 중개인·대출 중개법인을 통한 대출은 여전히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더군다나 대출 중개인·대출 중개법인이 편법과 불법수단을 이용하더라도 증명하기 어려워 단속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기자가 인터넷으로 대출 중개인을 검색해 나온 번호로 연락을 취해 소득이 없는 대학생임을 밝히며 500만원을 대출하고 싶다고 말하자, 상담원은 고등학교 졸업자 대출을 소개하며 가까운 가게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소득 증빙을 부탁하라고 말했다. 이어 등본과 같은 간단한 서류만 제출한다면 대출할 수 있다는 안내가 이어졌다. 이처럼 전화 하나만으로도 손쉽게 고금리 대출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정부의 대책이 청년들의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졸업 후 늦어지는 취직과 취직 후 낮은 임금으로 인해 청년들은 정부가 제시하는 저금리 대출마저도 갚기 버거운 상태다. 지난해 기준 학자금 대출 금리는 2.7%로 대학생·청년 햇살론의 금리에 비해 두 배가량 낮은 금리지만 연체율은 더 높았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한국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 연체율은 은행 가계대출 연체율의 3.8배에 달했고, 2013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 결과 학자금 대출 경험이 있는 대졸자의 30% 이상이 원리금을 제대로 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출로 대출을 막는 형태의 땜질 처방이 아닌 청년부채 부담을 낮추고 규칙적인 소득을 마련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홍구 사무국장은 “정부의 대책은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며 “단기적으로는 저금리 대출을 유지하되 적극적으로 비용을 경감시켜줄 방안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청년 맞춤형 정책과 부채로 내모는 구조 개선 필요

 

청년들은 경제 활동 경험이 미비한 상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위치에 놓여있다. 때문에 이러한 특성을 반영한 청년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현재 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선 청년부채 경감을 위한 법 개정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일각에선 1년의 채무이행 기간을 주고, 기간 동안 충실히 채무를 이행했다면 나머지 빚을 탕감해주는 초단기 회생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회생절차는 5년 동안 진행돼 청년들의 노동 의욕을 저하하고 미래에 대한 동기를 잃게 하는 측면이 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현근 변호사는 “(회생기간 동안) 최저 생활비를 제외하고 (소득을) 빚을 갚는 데 모두 써야 하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돈을 전혀 저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학자금 대출 중 취업 후 상환 대출인 든든학자금대출의 면책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든든학자금대출의 경우 현재 비면책 대출로 분류돼 있어 파산이나 면책 판정을 받더라도 끝까지 갚아야 한다. 박현근 변호사는 “빚을 갚을 여력이 없는 상황이 졸업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든든학자금대출도 기본적으로 면책 대출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활동 경험이 적은 청년층을 상대로 한 제대로 된 금융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청년들이 빚의 위험성을 알기 위해선 신용카드의 위험성, 금융권의 마케팅 진행 방식, 상환 불능 상태 시 겪을 사회적 불이익 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강홍구 사무국장은 “청년들이 고금리 대출을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체계적인 금융교육이 차단돼 고금리 대출에 대한 경각심이 무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운영 중인 금융복지상담센터의 경우 파산, 회생, 워크아웃의 상담을 위주로 하고 있어 교육을 통한 예방적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한영섭 센터장은 “금융상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르치는 곳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청년부채의 근본적인 원인은 등록금, 주거비, 생활비가 청년층에게 부담이 되는 고비용구조와 청년이 소득을 안정적으로 창출해내지 못하는 구조다. 범죄 처벌보다 범죄 예방이 중요하듯, 부채를 탕감해주는 것보다 부채가 형성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청년정책은 청년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홍보하는 반값 등록금은 여전히 비싼 등록금을 내는 청년들 대부분의 반발을 샀고, 행복주택과 같은 주거 안정화 정책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정책도 저임금의 일자리만 양산해 오히려 청년들에게 불안정한 소득원만을 제공하는 상황이다. 부실한 청년정책으로 인해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한 후에도 부채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워크아웃: 신용카드 대금이나 대출 원리금이 90일 이상 연체된 경우 채무 감면, 상환기간 연장 등을 통해 금융채무불이행 정보 해제 및 안정적 채무 상환을 지원해주는 제도

 

삽화: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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