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수)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홀로그램 시위를 개최해 자유로운 집회,시위 보장을 촉구했다.

지난 24일(수) 어둠이 드리운 광화문 광장 앞에선 조금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길게 펼쳐진 투명 스크린 위로 입체 형상들의 시위행진이 이어진 것이다. 이번 집회는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앰네스티)에서 준비한 '유령집회'로 홀로그램을 이용한 3D 영상으로 시위행진을 구현해냈다. 스크린에 상영된 시위영상 속에선 피켓을 든 참가자들이 “평화행진 보장하라” “집회·시위의 자유를 요구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홀로그램 집회는 지난해 4월 스페인에서 처음 시도한 집회 방식이다. 당시 스페인 시민단체는 공공장소 근처에서의 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에 항의하기 위해 이와 같은 집회 방식을 고안했다. 앰네스티 역시 청와대 인근과 광화문 등지에서의 자유로운 시위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며 집회를 개최했다.

◇장소 규제 완화의 흐름= 현재 우리나라에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의거해 집회와 시위의 장소를 제한한다. 집시법 제11조에 따르면 대통령 관저, 국회의사당, 외교기관 등으로부터 100m 이내에선 옥외집회와 시위가 금지돼 있다. 집회 장소를 제한하는 이 조항은 제정 당시부터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오래도록 논란이 돼왔다. 이러한 논란을 반영해 이 조항은 몇 차례 개정을 거치며 규제를 완화해갔다.

대표적인 개정 내용은 거리 제한 완화와 일부 기관의 예외 조항 신설이다. 처음 집시법이 제정됐을 당시 거리 제한은 200m였지만 현재는 그보다 짧은 100m로 개정됐다. 2003년엔 헌법재판소(헌재)가 외국 대사관 등 외교기관 인접 100m 내 모든 집회를 금지하던 일부 규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판결 이후 해당 규정은 대규모 집회나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하는 경우 등에 해당하면 집회를 허용하도록 예외 조항이 추가됐다. 당시 헌재는 결정문에서 “집회 장소는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 만큼 국가권력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 의견 표명을 하게 된다면 기본권 보호의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라며 “어떤 장소에서 집회를 할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보장된다”고 밝혔다.

◇집회장소, 어디까지 규제해야 하나=규제 완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집회 장소에 대한 규제가 과도하다는 지적 또한 여전하다. 외교기관 주변에서의 집회 제한에 관해선 예외 조항이 생겼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공공기관 앞에 대해선 예외 없이 집회 장소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헌재는 법원 및 국회의사당 주변 100m 이내에서의 옥외집회 및 시위를 전면 금지한 집시법 제11조의 일부 규정을 합헌이라 결정하며 장소 규제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헌재는 판결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집회 금지 장소를 설정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법원 기능이 갖는 특수성과 특별 보호의 필요를 고려할 때 법원 인근에서 시위 등을 금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 앞에서의 집회를 규제하는 규정에 대한 이의제기도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엔 국회 앞에서 진행된 시민 필리버스터에 참여해 1인 시위를 하던 시민 2명이 집시법 제11조를 근거로 체포됐다. 이는 현행법상의 집회 장소 금지에 대한 논란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이지윤 간사는 “국회는 시민들과 교류가 빈번해야 하는 곳”이라며 “집회와 시위는 가진 것 없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항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데 현행법은 장소 제한을 근거로 집회·시위의 자유까지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기춘 교수(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집회 장소는 집회의 내용 및 효과와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며 외교기관에 예외 조항을 신설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기관의 업무를 마비시키지 않는다면 국회, 대통령 공관 등의 장소 역시 금지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 지적했다.

◇교통 불편을 이유로 좁아진 집회 장소=집시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장소 제한이 더욱 심화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집시법 제12조에 따르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나 시위는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금지할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서울 시내 대부분의 주요 도로에선 집회를 개최할 수 없게 된다. 한상희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집시법 제)12조는 집회 자체를 금지하기 위한 조항이 아니다”라며 “경찰은 집회를 금지하기 이전에 집회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함이 최소한이 되도록 행정력을 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경찰의 행보는 이런 지적에 역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교통 방해와 시민 불편을 이유로 금지한 집회의 비율은 2011년 약 40%에서 지난해(1~10월) 약 82%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조사기간에 집회 금지 비율이 가장 높았던 2014년엔 경찰청이 금지 통고를 한 집회 256건 중 80%가 넘는 212건이 교통 방해와 시민 불편을 이유로 금지됐다. 앰네스티 또한 애초 청운, 효자동 인근에 집회 신고를 냈지만 교통 방해를 이유로 경찰의 금지 통고를 받자 차선책으로 광화문 광장에서의 홀로그램 집회를 진행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송아람 변호사는 “경찰은 집시법 제12조의 교통 소통 제한을 이유로 시위 자체를 금지시키고 있다”며 비판의 칼끝을 겨눴다.

집시법의 목적은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해 집회 및 시위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집시법이 오히려 집회 및 시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법원 앞 100m 내의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제11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집회의 자유와 장소의 규제, 위헌법률심판의 결과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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