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키우다 보니 똑같이 생긴 유충을 보고도 구체적인 종을 구별할 수 있게 됐다”며 자랑스레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경북 군위의 파브르’라 불리는 고종빈 씨(산림과학부·16)는 “내 삶의 반은 사슴벌레”라며 휴대전화에 저장된 수천 장의 사슴벌레 사진을 자랑했다. 사진첩에는 현재 키우고 있는 사슴벌레는 물론 도마뱀, 장수풍뎅이, 박제된 여러 곤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진들이 있었다.

고 씨가 곤충에 처음 눈을 뜬 것은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그는 “파브르가 곤충을 직접 키우며 쓴 일지를 보고 ‘나도 직접 키우면서 관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여러 곤충 중에서도 사슴벌레에 대한 애착이 유별난 고 씨. 4학년 때 사슴벌레를 처음 접했다는 그는 “지금까지 키운 사슴벌레만 족히 수백 마리는 된다”고 말했다. 사슴벌레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선 “사슴벌레는 키우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형질을 바꿀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며 “턱이 짧은 종끼리 교배하면 턱이 점점 짧아지는 식”이라고 답했다.

고 씨가 본격적으로 사슴벌레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중고등학생 때부터였다. 그는 “중학생 시절 사슴벌레와 관련된 인터넷 글의 90% 이상은 다 봤을 것”이라며 “하루에 기본 10시간씩은 인터넷 검색을 하며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생이 된 후 단순한 검색을 넘어 자신만의 관찰 기록을 인터넷상에 남기기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생 때 블로그에 관찰 결과를 직접 쓰기 시작했다”며 “사슴벌레에 대한 소개나 에피소드, 성장과정 등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 고종빈(산림과학부 16)

고 씨에게 사슴벌레는 연구를 위해 키우는 대상의 의미를 넘어 가족과 같은 의미가 있다. 그는 “일반인이 보기엔 사슴벌레가 다 똑같겠지만 사슴벌레에게도 각각의 성격이 있다”며 “먹이를 먹는 패턴도 다르고 좋아하는 장소들도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한 사슴벌레에게 애칭을 붙이며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는 “싸움에 능한 사슴벌레에게는 ‘대장’이라는 칭호를, 사슴벌레와 함께 키우던 장수풍뎅이 유충은 ‘이쟁똥’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며 “장수풍뎅이 유충이 똥을 많이 싸기 때문에 ‘똥쟁이’를 거꾸로 한 이쟁똥이라는 애칭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대학에 입학해 “기타와 사진을 배우고 싶고 연애도 해봐야 한다”는 고 씨의 모습은 여느 대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방학 때 여행을 가고 싶다”는 고 씨의 여행 계획은 다른 대학생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는 “외국의 다양한 사슴벌레들을 직접 관찰하고 싶다”며 “필리핀으로 곤충채집 여행을 가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이어 그는 해외 곤충채집에 앞서 관악산으로 곤충채집을 갈 계획임을 전했다. 그는 “서울대 안에서 사슴벌레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이번 여름에는 관악산으로 사슴벌레 채집을 갈 생각”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곤충만 깊게 공부하는 것을 넘어서 자연 생태계에 대해 전반적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는 희귀종이나 멸종위기종, 특히 제주도에 사는 ‘두점박이사슴벌레’와 같은 종을 연구하고 싶다”며 “곤충 박물관, 수목원, 산림청 등에서 진행하는 종복원 사업에도 참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슴벌레가 1년 주기로 우화(번데기가 변태해 성충이 되는 것)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 연구할 수 있는 사슴벌레가 50세대밖에 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는 고 씨. “톱밥을 갈아줄 힘이 다 떨어질 때까지 사슴벌레를 키우겠다”는 그의 열정을 막을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같은 분야를 연구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는 겸손한 소망을 밝힌 그가 ‘경북 군위의 파브르’를 넘어 파브르 그 이상의 연구자가 되길 응원한다.

 

사진: 장유진 기자 jinyoogang03@snu.kr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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